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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붉은 도포
책 읽어 주는 남자
얼굴 없는 시신
가짜 궁녀
청년의 눈물
가귤
침변서
죽은 임금의 나라
임금이 꿈꾼 나라
호랑이 가죽을 쓴 사람
서고의 두 사내
청년의 몸부림
얼어붙은 아버지
하늘의 천주, 땅의 천주
돼지고기
살과 피
쌍룡의 여의주
임금의 유지
약망
한 줌 흙으로 돌아가리라
고해성사

저자 소개 2

마르크 함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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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 Hampsink

1973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7살 때 벨기에로 입양되어 벨기에 루뱅 카톨릭대학 경영학 석사 과정을 이수했따. 영국 런던 정경대학에서 아시아-아프리카학을 전공했다. 중국 하얼빈대학 중의학과에서 수학하고 현재 영국계 보험회사에 근무 중이다. 모국어인 네덜란드어 외에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어 등 현대 언어는 물론 그리스어, 라틴어, 한문 등 총 13개 국어에 능통한 멀티링구어이다. 글쓰기는 부업이라고 말하는 그는 기본적인 정보 외에 자신의 정보를 밝히길 꺼려하는, '그림자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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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미국 인디애나 주 St. Meinrad 가톨릭신학교와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SS Cyril&Methodius 신학교에서 철학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공인회계사로 영국계 보험회사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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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152*224*20mm
ISBN13
9791196219710

책 속으로

만수는 대제학을 삼대에 걸쳐 배출한 경화사족京華士族 출신으로 일가가 모두 한성에 뿌리내린 터줏대감들이었다. 용보 같은 대비전 염탐꾼 정도는 애초부터 맞수가 아니었다. 주상이 쓰러지자 만수의 형 시수는 도제조가 되었다. 임금의 환우를 돌보는 책임은 형이, 죽은 왕과의 작별은 동생 만수가 맡은 셈이었다. 대왕대비는 만수를 이조판서로 옮기고, 예조의 공백은 용보로 메우려 했다. 그때 만수가 사직상소를 올렸다.
“부족한 자질로 이조의 막중한 책임을 맡아 불충을 저지를까 염려되옵니다!”
결국 용보는 보름 만에 예조에서 내의원 제조로 눌러 앉게 됐다. 장안에 감투 바꿔 쓰기, 보름판서란 말이 오가며 망신살이 뻗쳤다. 댕기머리아이들까지도 쌤통이라고 놀려댔다. --- p.109

“참의 어른이 살아서 천주님을 만난다고 하셨다고요?”
“분명 그랬네!”
사영은 목소리에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복잡하게 어찰의 뒤를 쫓느니 청나라에 도움을 청할 것이네. 임금의 숨은 뜻을 덮어 버리려는 자들이 있으니 진상을 밝히자고 요구하면 청나라도 움직일 것이야. 상국의 황제가 그것을 보자고 하면 조정도 버틸 재간이 없겠지.”
명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이건 명백한 모반이었다.
“원규가 남곽 선생을 만나려고 했다지? 침변서에서 단서를 찾은 거야. 만일 조선의 새 임금이 선친의 뜻에 반하는 짓이라도 벌이면 청나라가 개입할 여지가 생겨. 남곽 선생을 통해 이 사실을 천자께 알리려고 했겠지.”
사영은 과연 머리가 비상했다. 잔잔한 파편 몇 조각을 모아 큰 그림을 그려냈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는 것은 자식의 의무였다. 그 뜻을 거스르면 용상에 오를 수 없다. 하지만 명호는 이 천재가 하는 일이 불안하기만 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만을 쫓으면 보통사람과 눈높이를 맞출 수 없는 법. 명호는 황사영의 단호함에 기가 질렸다.
“그게 설사 처숙부일지라도 훼방꾼은 모두 쳐낼 것이네.” --- p.119

홍경래는 가슴에 총을 맞고 꺼꾸러졌다. 나머지 반군 두목들도 사로잡혔다. 성 안은 아비규환이었다. 넉 달간의 항전 끝에 산 자보다 죽은 이가 훨씬 많았다. 그래도 포졸들은 송장 더미에서 숨이 붙어 있는 자를 억척스럽게 솎아냈다. 감히 주상을 능멸하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설친 놈들을 편히 죽게 할 수 없다는 어명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날 잡은 포로는 삼천에 가까웠다. 그중 아녀자와 열두 살 미만 어린것들을 뺀 이천이 하루 새에 목이 달아났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한창 나이의 남정네들이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정주는 한동안 버려진 땅이 되고 말았다. 임금은 만수에게 진노를 풀지 못했다. 만수는 경주로 유배를 떠나라는 하교를 받았다.
“절해고도가 아니라 경주이니 그나마 다행일세.”
정주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위로를 건넸다. 지난 신유년 옥사에서 만난 약용이 이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할까? 다른 이들은 이승을 등지고 천주를 만나려고 목숨을 버렸다. 하지만 약용은 살아남았다. 코흘리개 애들, 노비, 아녀자,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늙은이처럼 낮은 곳에서 뒹구는 인생들과 함께 말이다. 만수는 정주성의 마지막 날에 한 일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글만 읽다가 이천에 이르는 양민이 죽게 내버려 두었다며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만수는 문득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았다. 여태껏 만수는 선대왕이 글로 지은 보금자리에서 뒹굴었을 뿐이었다. 잘못된 글은 멀리하고 성현의 말씀만을 암송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글 모르는 백성에게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백성을 지켜야 할 목민관이 까마득한 옛 글만 붙잡고 늘어졌다. 백성을 몰인정하게 외면하고 성현의 꿈만 좇았다. 글은 안식처가 아니라 소박한 꿈마저 가둔 좁은 울타리였다. 스스로를 글로 된 벽에 가두고 세상을 등진 셈이었다.
“그자는 했지만 나는 할 수 없었네. 소중한 백성과 명예, 가문, 형제를 맞바꿀 엄두도 내지 못했어! 백성을 위해 내 혈육을 내줄 수는 없었네.”
만수는 선혈을 토해내듯 장탄식을 거듭했다. 약용은 천주를 버리고 또 다른 천주를 구했다. 만수는 그 천주를 모른다. --- p.269~270

대화가 힘겨운지 자리에 누운 노인은 한참 뜸을 들였다.
“천주님을 모른다고 부정했습니다.”
노인이 한마디 뗄 때마다 늘그막의 참회가 묻어났다. 힘겨운 대화는 별 말이 없어도 더디기만 하다. 말하는 이가 힘들면 듣는 이도 고통스럽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노인은 자지러지게 기침을 해댔다. 잠시 후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형님을 배반하고 조카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조카사위와 매형을 대역죄로 고발하고 주문모 신부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덧칠하지 않은 적나라한 고백이었다. 젊은이는 이 얘기 끝에 잠시 말을 끊었다. 잠시 후 숨을 고르고 마디마디 혀 밑에 머금은 채 우물거렸다.
“대신 수천 명을 살리셨지요.”
젊은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천주학이란 낙인을 지우고자 애썼건만 약용은 다시 천주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이 죄인의 마지막 뒤안길을 겸허하게 정리해야 한다.
“천주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입니다. 죄를 용서받았으니 행복한 분이십니다.”
용서라는 말에 노인의 눈가가 젖어 든다. 애닮은 고백을 마치자 그간 쌓였던 설움이 눈물로 변해 왈칵 쏟아졌다.
“제 죄 값을 치르려고 애쓴 징표입니다.”
노인은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넌지시 건넸다. 표지에 만천유고蔓川遺稿라고 쓴 제목이 채 마르지도 않았다.
“옛 매형 집에 흩어져 있던 문서와 억울하게 죽은 한 청년의 글귀를 모아 엮었습니다. 아녀자, 노비들도 함께 볼 수 있게 언문기도문도 넣었습니다. 부디 소중히 간직해 주십시오.”
신부는 약용의 메마른 손마디를 따뜻하게 쓰다듬었다.
“이제 곧 뜻이 다르다고 배격하는 이 없고, 참된 글을 짓지 못한다고 비웃는 자 없는 천국의 도읍으로 들어가십니다. 영원한 삶을 누리는 그 도읍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신부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거라며 위로했다. 이 말 끝에 약용도 아픈 몸을 조용히 눕혔다.

--- p.273~274

출판사 리뷰

작가 인터뷰

1. 정약용에 대해서는 목민심서 등 여러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쓴 배교에 등장하는 주인공 정약용은 기존의 스토리와는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가?
조선 명탐정과 같은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모든 창작물은 허구지만 정약용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좀 희화적이고 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각인된 것 같다. 내가 본 정약용은 그렇지만 고뇌하는 지식인에 가깝다. 오해와 비난을 무릅쓰고 대의에 충실한 시대의 거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2. 신유박해를 둘러싼 정약용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소설 집필 동기는 무엇인가?
한국에 있을 때 서울대학교를 자주 방문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캠퍼스 구경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낙성대에 모여 사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마주친 적이 있다. 인생의 황금기를 대부분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전향서를 쓰고 풀려나왔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들 대부분은 아직도 공산주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사상은 자유롭다. 전향서 한 장으로 그것을 버렸다고는 볼 수 없었다.

3. 정약용의 배교도 그렇다면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가짜 전향이라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이 소설은 글 특히 당대 문제시된 청나라 패관문학과 당송시대의 한시가 추리의 열쇠 역할을 한다. 글만이 최고, 글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여기는 예조판서 이만수와 거짓된 글로 자신의 참마음을 감추는 정약용은 대척점에 서 있다. 다만 시대가 진실을 밝히는 것을 억압한다면 글 쓰는 이는 거짓을 고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글의 한계라 하겠다. 다산은 자신이 배교했고 천주학을 고발했다는 치부를 감추지 않았다. 또한 자기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변명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동시대를 살아간 다른 인물, 즉 황사영이나 추사 김정희 등은 다산이 천주를 버리지 않았다고 고발했다. 타인의 시선이 맞는지 자신의 고백이 맞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본다.

4. 종교는 민감한 부분이다. 특히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나를 입양했던 벨기에의 가족들은 독실한 가톨릭신자들이었고 나도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렇다고 매주 미사에 나가는 열성 신자는 아니다. 다만 누가 내 종교를 묻는다면 가톨릭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정도다. 이 작품을 종교소설로 접근한다면 오산이라고 전하고 싶다. 번역가에게 책에 대한 서평을 부탁할 때도 되도록 가톨릭신자가 아닌 사람을 선호한다고 했다. 실제 세 분의 서평을 받았는데 두 사람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라고 들었다. 신앙의 고백보다는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5. 종교를 소재로 추리소설을 썼다면 아마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새로운 시도라 하겠다. 유럽 소설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그렇다. 소설의 장점은 작가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을 들겠다. 사랑, 증오, 질투 같은 감정을 소재로 지은 추리소설은 상당하다고 들었지만 종교 소재의 추리소설은 한국에서는 좀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다빈치코드나 장미의 이름처럼 종교를 신앙이 아닌 문화로 인식하는 유럽에서는 보편화된 장르이다. 나 역시 움베르토 에코 같은 거장들의 영향을 받은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학과 천주학이라는 상반된 가치관 가운데 공통분모를 찾아 추리소설을 썼다는 점이 차이라고 하겠다.

6. 이만수가 쓴 가짜 백서와 황사영의 진짜 백서는 모두 보았는가?
황사영백서는 바티칸도서관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읽은 바 있다. 모든 문화재는 가격 감정에서 두 가지 과정을 거친다. 첫째는 진본인지 여부, 둘째는 현 소장자가 적법한 과정을 통해 입수했는지 여부다. 만일 도난 문화재라면 그 소유권은 소멸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탈된 유태인문화재의 경우 결국 소유권은 원래 소유주의 자손에게 돌아간다. 황사영백서는 진본이며 바티칸으로 간 과정도 적법했다. 1886년 한?불 수교 당시 조선 측은 의금부에 보관 중이던 황사영백서를 한국천주교 측에 넘겼다. 아마도 박해 당시 순교한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들 사건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 같다. 그 후 문서는 교황청으로 보내졌다.
이에 비해 이만수 백서는 아직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해 안타깝다. 외교문서인 관계로 청나라 조정에 보낸 물건인데, 이후 중국 현대사가 격동을 겪으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만난 소장자는 개인으로, 백서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무척 꺼렸다. 따라서 백서의 출처가 불투명하다. 청일전쟁 후 일본이 전쟁배상금으로 청나라 황실 서고의 소장 문서를 받아갔다. 이 문서는 당시 일본이 넘겨받은 문건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도난당한 것이 분명하다. 가짜는 영원한 가짜라는 격언이 떠오르는 부분이라 하겠다.

7. 외부의 시각으로 바라본 조선사의 일면이 흥미롭다. 앞으로도 계속 조선사를 저술할 것인가?
잠시 손에 잡고 있던 문건은 있다. 임진왜란 당시 마지막으로 벌어졌던 대규모 회전인 울산성전투와 관련된 내용이다. 울산성을 쌓은 왜군이 무사히 철수하기 위해 벌인 싸움인데 조선과 일본 양측은 당대 최고의 토목기술을 이용해 상대방을 유린했다. 일본이 난공불락의 성을 쌓았다면 조선은 태화강 줄기를 꺾어 일본군을 말려 죽이려고 했다. 멋진 전투가 상상은 되지만 7년 전쟁동안 강토를 유린한 왜군 측이 판정승한 전투여서 뒷맛이 찜찜하다. 과연 적군이 승리한 전투를 한국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현재는 집필을 중단한 상태다. ‘마지막 전투’라는 제목과 주인공 설정만 해둔 채 원고는 책상서랍에 묵혀두고 있다.

8. 패배한 역사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줄 수도 있는데 아쉽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역사란 상상이 아닌 행간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 배교를 했으니 배신자라는 등식 따위는 잊어주기 바란다. 대신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봐주기 바란다. 인간이란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다. 천주교의 예를 들어보겠다. 순교자를 칭송하고 배교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내 소설은 이와는 다르다. 가톨릭교회는 본디 배신자들이 만든 교회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했지만 결국 초대 교황이 되지 않았나? 모든 죄의 근본은 바로 배신인데도 말이다. 종교소설이 아닌 한편의 인간 드라마, 추리극장으로 보고 음미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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