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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봉학》을 출간하며
책을 내면서 1부 현봉학, 나의 이야기 1장 꿈엔들 잊힐리야 머나먼 평양길 내 고향 함흥 땅 2장 아름다운 청춘시절 세브란스 학창시절 해방된 땅을 뒤로한 미국 유학 3장 전쟁의 포화 속에서 함흥·흥남 철수작전 포화 속에 남은 이야기 4장 의사로 의학자로 산 미국생활 50년 필라델피아 시절 뉴저지에 살면서 나에게 은퇴는 없다 5장 내 삶의 귀한 조각들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과의 교류활동 윤동주와 기념사업 정들었던 만남들 나의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 책을 마치며 헌시: 영원한 청년 현봉학 선배 2부 현봉학, 그를 그리다 1장 전쟁영웅에 선정되다 현추모의 탄생과 전쟁영웅 선정 현봉학 박사 기념 강연회 2장 동상을 세우다 동상 건립과 기념사업회 발족 3장 현봉학을 회고하며 현봉학 씨의 전공(戰功) 현봉학 선생님을 회고하며 현봉학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추억 사랑의 화신 평화의 사절, 현봉학 선생을 그리며 추모기념 강연회에 삼가 올립니다 현봉학 선생을 그리워하며 위대한 영웅과의 잊지 못할 인터뷰 자랑스러운 의사 현봉학 선생님 Memoris of Dr. Hyun 맺는말 현봉학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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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의 실존인물, 청년 현봉학
“장군, 부탁드립니다. 제발 우리 국민들을 도와주세요.우리가 그냥 떠나버리면 저기 있는 피란민들은 중공군에 몰살당하고 말 겁니다.” 1,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흥남철수작전’의 한 장면이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 도입부에서 항구에 모인 피난민 철수를 미군 장군에게 간청하는 한 청년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며 화제에 올랐지만, 이 청년의 실존인물이 故 현봉학 의학박사임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1950년 12월의 흥남. 영하 30℃를 넘나드는 추위와 중공군의 포위망이 조여오는 급박한 상황에서 열세에 몰린 유엔군이 바닷가를 가득 메운 피란민을 두고 철수하려 하자 젊은 한국인 통역관이 미군 장성의 팔을 붙잡고 절박하게 호소하였다. 당시 의사 출신의 젊은 통역관이었던 현봉학(玄鳳學, 1922-2007) 박사는 포니 대령과 함께 에드워드 알몬드 미군 제10군단장에게 피란민들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눈물겹게 설득했다. 그의 호소에 마음이 움직인 알몬드는 결국 군수물자를 버리고 피란민을 수송선에 태웠다. 1950년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도 불리는 이 작전으로 10만여 명에 이르는 피란민이 흥남 항구를 통해 남한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나는 알몬드 소장을 찾아가 함흥 사람들의 사정을 설명하고 민간인 철수를 고려해달라고 간절히 청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함흥 기독교인은 아무 힘도 없는 나를 찾아와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그때마다 나는 알몬드를 찾아갔다. …… 나는 그대로 물러설 수 없어서 함흥과 흥남의 20만 민간인이 어디로 피난을 갈 수 있겠느냐고, 적들이 사방에서 쳐들어오고 있는 마당에 갈 곳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미국에서 중도에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서두르게 한 하느님의 뜻에 매달려 계속 간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 본문 중에서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 국가보훈처 6.25전쟁영웅에 선정되다 현봉학 박사는 ‘한국의 쉰들러’로 추앙되며, 2014년 국가보훈처가 발표하는 6.25전쟁영웅에 선정되었다. 국가보훈처는 매년 이달의 6.25전쟁영웅을 선정하여, 6.25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운 국·내외 전쟁영웅들의 공적을 기리고 전후세대에게 알림으로써 이들의 올바른 국가관 확립에 기여하고자 선정해왔다. 국가보훈처는 2013년부터 6.25전쟁영웅을 선정하는 데 군인 이외에 민간인을 포함시키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현봉학 박사는 2014년 12월의 한국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는데, 현봉학 박사가 12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것은 흥남철수작전, 일명 ‘크리스마스 작전’이 12월 24일에 완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학자 현봉학, ‘이스라엘 데이비슨 상’을 수상하다 미국 임상병리학회(ASCP)가 주는 세계적 권위의 ‘이스라엘 데이비슨 상’을 수상했으며, 오랫동안 근무한 뉴저지 뮐렌버그 병원은 현봉학 박사의 업적을 기려 병원 병리학 연구실을 ‘현봉학 임상병리교실’로 명명하기도 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현대 임상병리학의 개념과 교육, 그리고 체계화된 검사실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외에도 북한 의료시설 지원, 윤동주 비 건립, 서재필 재단, 중국 동포를 위한 봉사 활동을 펼치며 나눔을 실천하는데 힘썼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휴머니즘을 가능하게 한 분. 한평생 실천한 희생과 봉사, 그리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늘 감사하며 살아온 故현 봉학 박사의 높은 뜻을 이제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본받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