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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정조가 만든 조선의 최강 군대 장용영
『무예도보통지』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판 EPUB
김준혁
더봄 201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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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5

프롤로그 15

1부 『무예신보』를 편찬한 사도세자의 꿈 29

1. 사도세자는 무인세자인가? 31
2. 사도세자는 담대한 무인 기질이었다 38
3. 사도세자, 효종의 북벌론을 계승하다 47
4. 조선 최초의 무예서, 『무예제보』의 발견 63
5. 『무예신보』를 편찬한 사도세자의 꿈 73

2부 정조, 장용영에서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다 81

1. 정조가 사도세자 현양 사업을 추진한 목적 83
2. 『무예도보통지』 편찬과 사도세자 추숭 91
3.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사람들 96
4. 『무예도보통지』의 시연자, 조선 최고의 협객 백동수 103
5. 『무예도보통지』의 24기 무예 112
■무예도보통지˙서武藝圖譜通志˙序 121
■ 진설進說(경과보고서) 123
3부 정조, 호위부대를 만들다 129

1. 정조의 즉위와 반대세력들의 견제 131
2. 정조의 군제개혁 의지 141
3. 정조 시해 음모와 숙위소 설치 151
4. 홍국영의 역모와 숙위소 혁파 159
5. 『정감록』을 신봉하는 홍국영 추종세력 역모사건 166
6. 새로운 호위기구 장용위 설치 175

4부 정조, 마침내 장용영을 설치하다 181

1. 성호의 친위군병론親衛軍兵論과 장용영 183
2. 구선복의 역모와 장용영 설치 188
3. 장용영 창설 목적?1 -친위군 강화 197
4. 장용영 창설 목적?2 -균역법 혁파를 통한 민생안정 205
5. 장용영 창설 목적?3 -북벌을 위한 군사력 증강 213
6. 장용영 대장의 지위와 성향 223

5부 장용영, 조선의 최정예 군대 237

1. 장용영의 직제 개편 239
2. 장용영의 직제 구성 247
3. 장용영의 확대와 수어청, 총융청의 합병 258
4. 백성과 함께하는 장용영 마을 265
5. 장용영에 대한 특혜 274
6. 장용영의 훈련 - 바람으로 머리 빗고, 빗물로 목욕하라! 281

6부 화성에 장용영외영을 설치하라! 291

1. 장용영외영은 왜 만들었는가? 293
2. 장용영외영의 정비 303
3. 정조의 만석거 축조와 대유둔 조성 311
4. 만년제?축만제 축조와 축만둔[서둔] 조성 319
5. 장용영외영의 화성 방어와 어가 호위 325
6. 장용영외영 협수군 체제 333
7. 1795년 윤2월 화성행차와 백성들과 함께한 군사훈련 340

에필로그 355

참고문헌 364

저자 소개1

수원에서 자란 수원인이다. 수원에서 초, 중, 고교를 나오고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다녔다. 돌아가신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하여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 백령도로 전학을 갔을 때 학교 안에 있는 우리나라 설화집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삶에 대해 어렴풋이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듯하다. 대학을 다니며 그 당시 대학생들의 고민과 실천에 참여했다. 학생운동의 지도부에 있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누구 못지않게 싸웠다. 6월 항쟁 당시 오랫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대학 졸업 후 통일운동 단체에
수원에서 자란 수원인이다. 수원에서 초, 중, 고교를 나오고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다녔다. 돌아가신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하여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 백령도로 전학을 갔을 때 학교 안에 있는 우리나라 설화집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삶에 대해 어렴풋이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듯하다. 대학을 다니며 그 당시 대학생들의 고민과 실천에 참여했다. 학생운동의 지도부에 있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누구 못지않게 싸웠다. 6월 항쟁 당시 오랫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대학 졸업 후 통일운동 단체에서 일하다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29살의 늦은 나이에 중앙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운명적으로 정조(正祖)를 만났다. 박사학위 취득 후 강단에 서면서 학계와 대중들에게 인정받아 정조의 개혁사상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출연하였고, 저서 《리더라면 정조처럼》이 2020년 문재인 대통령 추천도서로 선정되는 영광도 얻었다.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를 통해 이재명의 지도자론을 세상에 알렸다.
수원화성박물관 학예팀장과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한신대학교 교수이다. 학자로서의 활동과 함께 거리에서 시민들과 촛불을 들어 올리는 일에도 열심이다. 시민들이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남북화해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평등과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한 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얻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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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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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6.8만자, 약 5만 단어, A4 약 106쪽 ?
ISBN13
9791188522057

출판사 리뷰

무예를 발전시키기 위해 장용영을 만든 정조는 진정한 무인군주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조를 ‘학자군주(學子君主)’라고 부른다. 반면에 정조가 갖고 있는 무인의 기질과 능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 정조는 규장각(奎章閣)을 통해 국가의 국정 이념을 정립하였고, 각종 연구와 출판사업을 통해 조선의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며 문예부흥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정조는 무(武)에 대한 문(文)의 차별은 외세가 침략할 때 나라를 지킬 방어력을 약화시킨다는 경각심을 갖고 문무(文武)가 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조는 학문을 육성하기 위해 규장각을 만들고, 무예를 발전시키기 위해 장용영(壯勇營)을 창설했다. 즉 ‘문치규장 무설장용(文治奎章 武設壯勇)’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문무를 병행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정조는 무의 발전을 통한 조선 국방개혁의 중심기관으로 장용영을 설치하였다. 그러므로 정조는 진정 ‘무인군주(武人君主)’이기도 했다.

정조는 조선의 국왕으로 단 하루도 편한 날 없이 날마다 치열하게 살았다. 당파로 갈라져 싸우지 않고 신분으로 인하여 차별받지 않는 세상, 힘이 없어 외세에 침략당해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재위 24년 내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1800년 6월 28일,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정조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죽기 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이다.

정조가 쓰러지니 조선은 흔들렸다. 세상의 권력은 바뀌고 바뀐 권력의 주체들은 그의 개혁을 지우기 시작했다. 정순대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이 장용영의 혁파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장용영에 있는 엄청난 재원 때문이었지만, 정순대비를 비롯한 벽파에서는 정조와 연관된 정치세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조의 친위군영인 장용영을 없애야 했을 것이다. 장용영 혁파는 철저한 정치적 논리에 의해 강제되었고, 장용영 창설을 통해 조선후기 군제개혁과 민생안정을 추구하고자 했던 정조의 개혁정책은 좌절되었다.

정조의 개혁정책이 완성되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

만약 정조가 그렇게 빨리 급서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일관되게 추진하던 노비제도는 혁파되었을까? 1786년 박제가가 올린 상소 내용대로 서양 선교사들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서양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을까? 혹은 그가 만든 장용영으로 국방을 강화시키고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대한제국 말기에 이르러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까? 결론을 말하라면, 아마 정조가 좀 더 오래 조선의 국왕으로 있었다면, 그래서 그의 개혁을 완성하였더라면 이후에 누가 왕이 되었더라도 안전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을 것이다.

비록 민주주의 시대가 아닌 왕조사회였지만 정조의 개혁사상은 시대를 초월하여 계승해야 할 사상이고, 그의 인간존중과 소통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또한 정조가 추진했던 지역, 신분, 경제력으로 인한 차별없이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사회 만들기는 우리가 반드시 계승하고 실현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잘못된 반민주주의를 없애고 새로운 민주사회를 만드는 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상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분단국가에서 하나된 통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사도세자와 정조가 꿈꾸었던 자주국가 건설이 실현될 것이다.
“조선의 백성들은 선대왕의 백성으로 살았던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조가 죽고 난 후 『정조실록』에 사관이 쓴 글이다. 이런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일 것이다. 이제는 군주시대가 아니니 거꾸로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고 기뻐할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조의 국방개혁의 보루였던 ‘장용영’을 대중적인 관점에서 처음으로 연구한 이 책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만주 벌판을 달리던 조상들의 기개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주적 국가 건설을 추구하던 사도세자와 정조에 대해 아는 것은 곧 남북의 평화시대를 여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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