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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역동적인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삶을 만들어간다. 삶이 담긴 공간 또한 그 삶의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갖추어 간다. 해질 무렵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화려한 모습은 절대 멈추지 않을 거대한 현대 문명의 상징처럼 다가오지만, 달빛도 어두운 밤 아스라한 불빛 아래 어둠을 벗삼아 걸어 돌아가는 서울의 좁은 뒷골목은 또 다른 도시의 모습을 전한다. 나는 세계적인 규모의 대도시 서울의 주거 형태를 십수년간 기록하면서 낮은 곳에서 쉼 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고단한 삶이 깃든 사실적 공간들이 내게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우연히 마주치는 담벼락, 무심히 세워져 있는 도구, 금방 벗어놓은 듯 뒷축이구겨진 신발, 일을 마치고 가지런히 널어 놓은 지저분한 장갑, 차가운 회색 벽, 우리 시야에서 오래 전에 이미 멀어진 난 낡고 오래된 사물들이 내게 무언가 또 다른 새로움으로 반전되어 다가왔다. 세월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빛바랜 벽, 누덕하게 덧칠한 페인트 사이로 배어 나오는 미묘한 명암, 다양한 삶의 오브제 등 그 거칠한 질감에서 오는 색들의 정겨운 맛을 가장 사실적인 매체, 사진의 틀 속에 담았다. 내가 느낀 그 아련한 아름다움을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중략)… 그 동안 그가 ‘일’로 기록해 왔던 도시의 모습에는 대상에 대한 사진가 고유의 관점이나 감성이 상당부분 배제되어 있었다. 정보가치를 중시하는 공적기록은 대상에 충실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료’로 남겨두기 위해 그가 찍었던 사진들은 냉정한 관찰의 결과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엄정함과 객관주의적 시각이 배어있었다. 물론 그 사진들에도 작가의 개인적인 감성과 주관이 바탕에 깔려있을 테지만 기계 종속성이 강한 사진에서 그것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대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한계,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대상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 카메라 워크에 대한 제한 등이 굴레로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사진들은 이런 제약으로부터 거의 자유로워 보인다. 공적기록에서 벗어난 사적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시각적으로만 보면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록의 주체에게 그 차이는 너무도 큰 것이어서 사진 한 장이 불러일으키는 의미의 파장과 감흥의 밀도는 측정하기 어렵다. 거기에는 개인의 내밀한 기억과 세계관, 감성, 취향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공적 기록에는 그런 것들이 빠져 있으며, 어떤 점에서는 마땅히 배제되어야만 한다. 반대로 사적 기록에서는 그것들이 곧 작업의 추동력이 된다. 그런 것들을 읽어내어 우리가 작가와 교감할 수 있다면 이 사진들은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이 된다. …(중략)… 버려진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기이하지만 그런 감성이 그 사물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들의 질긴 삶에 대한 애정에서 온 것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아름다운 대상이란 본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대상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감성에 따라 이 사물들을 아름답게 보았다. 그런 감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안타까움 때문일 수도, 연민 때문일 수도, 혹은 애정 때문일 수도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것들을 기록해 오면서 몸에 밴 본능적인 집착일 수도 있다. 어쨌든 관건은 그가 버려진 사물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 따뜻한 심미안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칙칙한 리얼리즘’의 심미적 차원이 여기에 있다.
--- 「작업노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