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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정운천의 7번째 도전
정운천
올림 201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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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_ 위기는 기회다
화보_ 정운천의 도전하는 삶

도전 1_ 고교는 재수, 대학은 삼수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절망의 바닥에서 본 황금물결
합격, 또 다른 시련의 시작

도전 2_ 땅끝에서 농업에 투신하다

젊은 날의 방황과 시련
가장 낙후된 곳으로 가라
비닐하우스 생활 5년 5개월
형님, 저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전라도 노총각과 경상도 처녀의 만남
신뢰를 얻기 위한 7년간의 투자

도전 3_ 위기는 새로운 기회

마른하늘의 날벼락
새로운 인생의 멘토, 이순신 장군
3천 농민의 뜻을 하나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개방의 위기를 창조의 기회로

도전 4_ 거북선농업으로 한계를 극복하다

새로운 가치의 창출, 거북선농업
땅끝에서 칼 들고 왔습니다
천대받던 고구마를 최고의 명품으로
농업인에서 장관으로
한밤의 취임식
소금이 식품입니까, 광물입니까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도전 5_ 촛불의 광풍을 넘어

뜨거운 감자, 한·미 쇠고기 협상
〈PD수첩〉과 촛불의 광풍
촛불정국의 격랑 속에서
매국노 정운천은 물러가라
광화문 촛불광장에 나가겠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법이 먼저입니까, 국민이 먼저입니까
대화와 소통의 상징, 달걀

도전 6_ 250 대 0의 황무지에서

다시 벽 앞에 서다
여보, 미안하오
쌍발통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LH공사를 전북으로 가져오겠습니다
꼬끼오! 꼬끼오!
떨어졌어도 공약은 지켜야
한나라당 최고위원 4개월
함거에 올라 석고대죄하다

도전 7_ 성숙한 세계국가를 위해

한식을 세계로
지역장벽을 넘어서
대망의 동북아시대를 향하여

맺음말_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정운천이 걸어온 길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74g | 152*225*20mm
ISBN13
9788993027273

책 속으로

그때였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비쳤다. 순간 바다는 금빛 물결로 출렁거렸다. 눈부신 햇살과 바닷물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거대한 황금물결. 온 바다가 황금물결로 요동쳤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바로 저거다! 나도 저렇게 살 것이다!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만 언젠가는 저 황금물결처럼 약동하는 삶을 살 것이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이루어낸 합격. 그러나 기쁨의 순간은 너무 짧았다. 합격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순간 또 다른 시련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등록금이 없었던 것이다.
314,740원. 쌀 한 가마가 15,000원 하던 시절이었다. 끼니조차 거르기 일쑤인 집안에 그런 큰돈이 있을 리 없었다. 지금처럼 학자금 융자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등록일까지 남은 기간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3년 동안 고생고생해서 합격했는데, 막상 합격하고 나니 또 다른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키위와 직접적인 인연을 맺어준 사람은 바로 둘째 형이었다. 형은 당시 T농산이라는 무역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회사에서도 키위 묘목을 수입 판매하고 있었다.
T농산의 영업부장으로 묘목 판매를 위해 남해안 지역에 내려와 있던 형은 내게 농학도로서 농촌 실정도 파악할 겸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농민들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했다. 내가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이질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농장 한쪽에 100여 평 크기의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그중 50평은 농민교육장을 만들고 나머지 50평을 활용해 숙소와 사무실을 만들었다. 비닐하우스 천막 안에서 먹고 자며 농민들과 동고동락하는 ‘하우스 인생’을 시작한 것이었다.

“형님! 저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일부러 큰소리를 치고 주머니에서 봉투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빌린 돈 3,000만 원이고, 또 하나는 3년 동안의 이자 2,700만 원이었다.
내가 봉투를 드리자 선배 부인이 낚아채듯 집어들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이내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선배의 뜨거운 눈물이 가슴으로 전해져왔다.

나는 전라도 남자요, 그녀는 선산이 고향인 경상도 여자였다. 나이는 많고 직업은 시원찮아 보이는 데다가 출신 지역까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집안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극구 반대였다.

내가 먼저 사과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도 내 손을 마주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나는 명 사장과 화해했다. 악연이 시작된 지 7년이 지난 뒤였다.
그날부터 명 사장은 내 지지자가 되었다.
“7년 동안 내가 그렇게 괴롭혔는데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한 사람이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시장이 개방되면 농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며 결사항전을 외치는 것이 농민운동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개방 철회’라는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농민 스스로 품질을 높이고 유통을 개선해 맞서 싸우겠다며, 그런 노력을 지원하고 뒷받침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정부를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지원군이자 서포터로 인식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물밀듯 들어올 미국 키위, 뉴질랜드 키위를 어떻게 막아낸단 말인가. 우리 키위도 경쟁력이 있다고, 품질만 향상시키면 외국 키위를 이겨낼 수 있다고 농민들을 설득했는데…, 우리가 힘을 합쳐 이겨낼 테니 뒷받침이나 잘해달라고 정부에 큰소리쳤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한 뉴질랜드와 미국의 키위산업은 너무나 거대한 골리앗이었다. 그 골리앗과 맞서 싸워야 하는 현실이 바위처럼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눌렀다.

새로운 브랜드의 필요성을 절감한 나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참여 농민들과 이 문제를 협의했다.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 ‘참다래’였다. 키위의 원종에 해당하는 ‘다래’에 어감이 좋고 의미도 좋은 ‘참’이라는 접두사를 결합한 것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도입된 키위가 10여 년 만에 순수 우리말 브랜드 ‘참다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8가지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맛젤 고구마’는 더 이상 천대받는 열등재가 아니었다. 버려진 구황식품이 아니었다. 기존의 고구마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우등상품이었다.
목선에 덮개를 부착한 거북선이 전투에서 상상할 수 없는 전과를 올렸듯 새로운 가치로 무장한 맛젤 고구마는 고구마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관행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축하드립니다. 농림수산식품부장관으로 내정되셨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농업 CEO로 바쁘게 생활하던 2008년 2월 9일, 나는 생각지도 못한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직 인수?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세상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가고 싶은 길’과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30년에 걸친 두터운 지역장벽을 허물고
모두가 함께하는 소통의 길을 내는 것은 누군가 가야만 하는 길이다.
누군가는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내가 가자.
언제나 ‘가고 싶은 길’보다는 ‘가야만 하는 길’을 걸어온 내 인생이 아닌가.”

바보 정운천이 걸어온 고난의 길, 도전의 길


스티브 잡스는 대학생들에게 “갈망하라. 우직하게 살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던졌다. 스스로도 자신의 삶 속에서 이 말을 실천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도전하며 살았다. 정운천의 인생은 그런 스티브 잡스와 여러모로 닮았다. 고1 때 아버지를 여의고 끼니조차 잇기 힘든 가정형편 속에서도 세 번의 도전 끝에 원하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는 모두가 떠나려는 농촌으로 내려가 모두가 마다하는 농업을 선택해 25년 외길을 걸었다. “가장 첨단을 달리는 곳이나 아니면 가장 낙후된 곳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라”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말씀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가장 첨단을 달리는 곳으로 갔고, 정운천은 가장 낙후된 곳으로 간 것이다.

정운천은 비닐하우스 안에 벽돌집을 짓고 5년 5개월을 살면서 농민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 덕분에 키위보다 먼저 도입되었던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시장개방과 더불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상황에서도 키위는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아 오늘날의 참다래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되었을 때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로 촉발된 촛불의 광풍에 휩싸였다. 졸지에 ‘국민 건강을 팔아먹은 매국노’가 되었지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통을 위해 광화문 촛불광장을 찾아갔다. 농산물품질관리원 대전지원을 방문해서는 시위대에 가로막혀 양복이 찢기고 안경알이 깨지는 수모를 당했지만, 끝내 대화를 제의해 ‘소통의 달걀’을 선물받기도 했다.

2010년 지방선거 때에는 27년간 봉직한 교사직을 버린 아내의 희생까지 감수하며 전북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후보로서는 전례 없는 18.2%의 ‘경이로운’ 득표율을 기록했다. 비록 낙선은 했지만 그는 지역장벽이 결코 넘지 못할 벽은 아니라는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큰 소득을 거두었다. 2011년 5월에는 전북지사 선거 공약이었던 LH공사 전북 일괄 유치를 이루어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함거에 올라 석고대죄했다. 선거에서 졌으면서도 공약을 지키지 못한 죄를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는 말한다. “실직이든 전쟁이든 금융위기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결국 우리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의식과 자세에 따라 우리는 그것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그것을 극복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이 책 《바보 정운천의 7번째 도전》은 제목이 말해주듯 때로 무모하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한 정운천의 인생역정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시시때때로 닥치는 인생의 시련과 시대적 과제에 언제나 우직하게 맞서 정면으로 돌파해온 한 인간의 도전사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에게는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정운천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전북 도지사 출마를 결심하기 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이미 한나라당으로부터 정식 출마를 권유받은 상태였지만, 그로서는 내키지 않았다. 평생 농업의 외길을 걸어온 사람으로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다. 농식품부장관을 역임했지만 그것도 역시 농업의 연장선상에서였다. 광우병 파동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에도 전국을 순회하며 농정 경험과 노하우를 전파하는 일에 매진했던 그에게 선거 출마는 전혀 새로운 모험이었다. 그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전북은 한나라당에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네 번의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받아든 성적표는 당선은 고사하고 득표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처참했다. 후보조차 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어설프게 나섰다가는 망신만 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거듭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고사했다.
뜻을 굽히지 않던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대통령과의 면담 직후였다. 대통령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새만금에 세 번이나 갔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찾지 않은 새만금에 세 번이나 갔어. 그런데 정 장관은 전북이 고향이라면서 그냥 버려두겠다는 것인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혁명이 일어나야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말뚝만 박으면 된다는 식의 지역주의는 이제 더 이상 명분도 없고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 지역주의 극복이야말로 선진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요, 성숙한 세계 국가로 가는 길이다.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이 철퇴를 내려야 한다. 그래야 지역주의의 장벽을 넘어 소통과 화합의 정치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제도적으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석패율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석패율제를 도입해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래야만 영호남 모두에 여야가 공존하는 상생과 화합의 시대가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라

정운천에게는 두 명의 멘토가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과 고통의 나날 속에서도 모질고도 아름다운 선택의 길을 뚜벅뚜벅 걸을 수 있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은 그의 진로를 정해주었다.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에는 가장 첨단을 달리는 곳이나 아니면 가장 낙후된 곳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라. 그만큼 성공의 여지가 많고 개발의 잠재력이 크다.”
그는 젊은 날의 방황과 시련을 딛고 가장 낙후되어 있는 농업의 세계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낙후된 곳이 발전 가능성도 크다는 사실을 깨닫고 땅끝마을로 내려가 25년간 농업인으로 살면서 인촌 선생의 말씀을 몸소 입증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그가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마다 길을 열어주었다. 장군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신뢰, 통합의 리더십에서 자극을 받아 예기치 못했던 시장개방의 위기를 이겨내고, 과거의 목선과는 차원이 다른 거북선에서 얻은 지혜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농사를 지을 때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참다래 아저씨’로 소개된 성공한 농업CEO가 되었을 때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되었을 때도, 촛불정국으로 공직에서 물러났을 때도 그는 늘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했다. 선공후사(先公後私)는 그가 평생의 멘토로 모시는 인촌과 충무공의 신조이자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그의 7번째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진면목은 그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운천은 일신의 안락을 구하지 않았다. 시대가 원하고 ‘우리’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위험과 반대에도 굴하지 않으며 도전을 통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그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저는 지금 다시 링에 오르고자 합니다. 지난 선거에서 뿌린 소통의 씨앗, 그 씨앗을 가꿔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한 번 굳세게 도전하겠습니다.”
그의 7번째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결코 멈출 줄 모르는 클라이머처럼 계속해서 그가 ‘벽’을 오르리라는 사실이다. 벽을 넘어 ‘소통과 상생의 새 시대를 여는 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시대적 소명이자 기필코 가야만 할 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기회를 찾고자 노력해온 저자의 인생드라마를 읽다 보면, 어느새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에너지와 희망의 정체를 발견하게 된다.

정운천은 누구인가
1981년 대학 졸업 후 땅끝마을로 내려가 25년간 농업인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뜻을 하나로 모아 정부가 부적합 판정을 내린 키위산업을 살려냈다.
2008년 2월 농림수산식품부의 초대 장관이 되어서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농업인답게 ‘현장 속으로’ 운동을 전개하여 살맛 나는 농어촌을 만들기 위해 분투했으며, 같은 해 온 나라를 휩쓴 광우병 파동으로 퇴임한 후에도 농업 발전과 한식 세계화를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2010년에는 질 것이 뻔한 선거에 나가 소통의 씨앗을 뿌렸고, 낙선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공약을 지키지 못한 죄를 물어 스스로 함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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