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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ste 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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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펄은 말을 꺼내고서 렉시의 노골적인 말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땅속 깊이 흐르는 하천처럼 다른 모든 질문 아래로 흐르던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필요했어?” “어디에?” 조심스러운 붓질 한 번으로 미아는 비어 있는 자전거 포크에 진한 청색 바퀴를 그려 넣었다. “여기에. 내 말은 엄마가 나를 원했느냐고. 내가 아기였을 때.” --- p.66~67
미아는 거절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거절은 상황을 악화시켜 악감정에 이르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선한 행동으로 믿고 그것을 행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보통 그들을 만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아는 알았다. --- p.104 누군가가 가장 친한 친구의 행복을 망치는 것을 엘리나가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볼 수 있겠는가? 부인은 그것이 아기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이었다고는 자신에게조차 시인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것은 미아에 관한, 미아가 불러일으키는 알 수 없는 불편함에 관한 복잡한 문제였다. 리처드슨 부인이 그대로 상자에 넣어두는 쪽을 훨씬 선호했을 문제이기도 했다. --- p.204 곳곳에서, 모든 곳에서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엘리나의 마음 깊은 곳에 불꽃이 일었다. 한참 뒤 이지의 마음속에 타오를 불꽃과 같은 것이었다. (…)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셰이커하이츠가 도시의 이상주의에도 실용적인 곳이어서 달리 사는 법을 몰랐을 뿐이다. 평생에 걸쳐 해온 실용적이고 편안한 사고가 두껍고 무거운 담요처럼 엘리나의 마음속에 일어났던 불꽃을 내리덮었다. --- p.234~235 평생을 두고 엘리나는 그처럼 불같은 열정이 위험하다는 것을 배웠다. 열정은 통제에서 쉽게 벗어나버렸다. 벽을 타고 올라가 참호를 뛰어넘었다. 불꽃은 벼룩처럼 뛰어올라 빠르게 번져나갔다. 산들바람에도 불씨는 수 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었다. 올림픽 성화처럼 그 불꽃을 통제하여 조심스럽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건네주는 편이 나았다. 혹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처럼 신중하게 불꽃을 돌보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빛과 선은 절대 아무것도 불타오르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도록. 조심스럽게 통제되고, 길들여지고, 갇힌 상태에서도 행복하게. 핵심은 큰불을 피하는 것이라고 엘리나는 생각했다. --- p.236 문득 미아는 펄에게 집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집은 장소가 아니라 언제나 자기가 곁에 데리고 있는 이 작은 사람이었다는 듯이. --- p.457 이지는 예전 삶으로 되돌아간다고 상상해보았다. 아름답고 완벽하게 정돈되고 모든 것이 풍부하게 채워진 집, 잔디는 늘 깎여 있고 낙엽들은 늘 갈퀴질되어 있고 쓰레기는 절대로 눈에 띄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것. (…) 아름답고 완벽하게 정돈된 도시, 모든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며 규칙을 따르고 내부가 아무리 엉망이어도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완벽해야 하는 도시에서 산다고 상상해보았다. 이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할 수 없었다. 미아가 이지의 마음속에 열어놓은 문은 다시 닫힐 수 없었다. --- p.477 |
“누구나 한 번은 남김없이 태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있지” 2018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 실레스트 잉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이야기 전작이자 데뷔작 『너에게 말하지 않은 모든 것(Everything I Never Told You)』에서 굳게 지켜온 비밀과 가족생활을 탐구하며 1970년대 미국 교외라는 장소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드러냈던 작가는 이 책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에서도 실제 자신이 청소년기 일부를 보낸 셰이커하이츠를 배경으로 뛰어난 장소감을 보여준다. 소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요하고 평온하던 동네에서 리처드슨 가족의 크고 우아한 집이 불타오르면서 시작한다. “미친 걸스카우트가 침대에서 야영이라도 한 듯이 각 침대 중앙에” 작은 불이 놓여 타닥거리고 있다. 누가 곳곳에 불씨를 놓았는가? 리처드슨 부인은 막내 이저벨을 의심하면서 전날 밤 세입자인 미아 워런과 펄 워런이 떠났다는 사실은 떠올리지 못한다. “이 책을 읽고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지 않을 독자는 없을 것이다” _ 조디 피코 끊임없이 감춰지는 세계와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세계의 극적인 충돌, 반전 그리고 다시 열리는 길 이야기는 리처드슨 가족과 워런 가족이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교차하며 전개된다. 리처드슨 부인은 규칙과 계획이 더 큰 안정을 만든다고 믿으며 ‘옳다’고 여기는 방향을 따라 살아왔다. 깊은 유서(由緖)와 유산,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큰 집과 차, 남편, 아이들, 안정적인 직장까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완벽한 삶을 꾸렸다. 부인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윈슬로가의 집을 싼값에 세놓으면서 그녀의 생활에는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세입자로 들어온 미아는 영감을 찾아 떠도는 자유 영혼으로 돈과 소유물에 초연하다. 그런 엄마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펄은 시시때때로 바뀌는 불안정한 환경에 적응하며 영리하게 움직인다. 항상 잘 통제된 환경에서 지내온 리처드슨 가족의 아이들은 미아와 펄 모녀가 지닌 자유로움과 초연함에서 나오는 편안함에 끌린다. 반대로 펄은 ‘세탁 세제의 쾌적한 향기’와 ‘손수 반죽해 구운 쿠키’로 표상되는 리처드슨 부인의 안정과 풍요에 마음을 빼앗긴다. 서로에게 없는 것을 갖춘 아이들은 매일같이 리처드슨 가족의 거실 소파에 모여 앉아 제리 스프링거 쇼를 시청한다. 리처드슨 가의 아이들과 펄이 사소하거나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며 십대들만의 유대를 만들어가는 사이 그들 자신은 물론 그들 부모가 살아온 삶, 당연하다고 여겨 생각해본 적도 없는 세계가 건드려진다. 그러자 가슴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의문들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그런 움직임은 리처드슨 부부에게까지 확장된다. 그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으며,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인가? 내가 옳다고 믿고 행하는 일이 왜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는가?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어째서 다른가? “누가 곳곳에 작은 불을 놓았는가? 손에 재를 쥐고 있는 우리 자신인가? 깊은 의심 속에 범인을 찾으려 계속 책에 빠져든다” _ 뉴욕 타임스 위태롭게 지켜오던 리처드슨 부인과 미아의 균형은 부인의 오랜 친구 린다 매컬러가 한 아기를 입양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메이 링 초우 혹은 미라벨 매컬러라고 불리는 이 아기는 어느 겨울날 저녁 소방서 앞에 버려졌다. 결혼 이후 임신과 유산을 수차례 반복하며 오랫동안 아기를 바라온 매컬러 부인은 아기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베푼다. 하지만 아기의 친모가 나타나 양육권 분쟁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 미아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리처드슨 부인은 그동안 미아에게 품어왔던 의심들을 드러내며 그녀를 뒷조사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잠복해 있던 문제들이 서서히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떤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붕괴 또는 분열이 필수적이다. 작가는 자유와 선의로 가득하나 자신들이 지닌 특권에는 무지한 이들이 좋은 의도의 한계와 맞닥뜨리는 상황들을 보여준다. 인생의 한복판에서 그동안 진리라고 여기고 지켜온 가치, 잘 살아왔다고 믿었던 삶에 대해 일격을 당하고 최초로 고뇌하는 인물들은 어느새 우리의 얼굴을 하고 있다. 통제와 자유, 안정과 불안정,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잃는다. 어느 순간 선택은 선택 자체로 판단받지 못한다. 잘된 삶, 올바른 삶, 그런 삶의 기준은 누가 정했는가. 작은 불씨가 어느 순간 커다란 화염으로 번지듯 소설 속 인물들의 사고와 관계에 불이 붙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는 자기 내면의 믿음과 편견, 도덕관념 등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나쁘거나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세련되게 숨겨온 것이 아닌가. 출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언론과 대중에게 꾸준히 사랑과 찬사를 받아온 이 책은 짜임새 있는 구조와 그 안의 미스터리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유효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작가는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대단히 영리하게 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