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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 5
제1부 감성유학의 공감장들 혼인과 사회적 관계망 : 16세기 호남유학의 공감장 / 18 불온한 공감 : 존재의 삶-정치 너머 / 57 여정과 소통 : 율곡의 감성정치학 / 87 제2부 감성적 주체 도래할 낙세 : 감성적 주체의 열망 / 122 마주한 파국 : 구한말 유교 지식인의 경계적 감성 / 158 제3부 감성적 근대성 한국유교 : 탈식민과 성찰 / 204 신자유주의시대 : 부끄러움의 윤리학 / 248 우리 시대의 사랑 : 경험, 서사, 의미화 / 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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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의 관계망을 통해 본 16세기 호남유학
들어가며 이 글은 혼인을 통해 구성되는 혼맥 네트워크가 호남유학의 학적 네트워크와 어떻게 연동되고, 이들의 관계망에서 파생되었던 학술적 논의들은 어떠한 경향성을 띠고 있는가를 공감장共感場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에 의해서 시도되고 있을 ‘가족 만들기’라는 매우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경험적 지평을 통하여 16세기 호남유학에서 발견되는 ‘효孝’의 감성과 학술적 사유를 탐구하였다. 이 탐구의 과정은 선행되었던 다수의 ‘호남유학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선행 결과들에 대한 암묵적 승인의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기존에 통용되고 있는 호남유학과 관련한 ‘상식적인 수준의 내용’들 조차도, 그것이 어떻게 생산되어 소비되고, 유통되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시대에 ‘의리義理’나 ‘절의節義’와 같은 개념들이 어째서 호남유학의 핵심이라고 말해지고, 그것을 호남정신을 구성하는 정신소精神素로 선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묻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의리나 절의와 같은 ‘만들어진 전통’의 타당성을 따져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물음은 사실 은폐되어 있다. 추상화된 개념은 그것들 이면에 웅성거리는 ‘숨은 힘’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의리와 절의를 호출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기라성 같은 학자와 정치가를 배출했던 16세기 호남유학의 역동적인 학술역량이 ‘그때’는 가능했었는데 지금은 왜 그렇지 못한 것일까? 당대 최고의 학술과 문화예술의 공감장들sympathetic fields 이 ‘그때’ 호남에 구축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이와 같은 물음을 ‘혼인’을 매개로 하여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학술 네트워크가 연동되는 것을 새로운 ‘공감장共感場’의 구성이라는 차원에서 논의한다. 기존의 연구가 문집류의 텍스트 분석과 사실들의 재구성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면, 이 글은 혼인이라는 매우 사회적이고 문화적이며, 게다가 경제적이고 정치적이기도 한 가족구성의 관계맺기 방식을 논의의 주요한 소재로 다룬다. 이 글에서 특히 주목하는 대상은 김인후의 가계다. 호남의 장성을 세거지로 하고 말년에 순창에 우거했던 김인후金麟厚(河西, 1510-1560, 본관 蔚山)를 중심에 놓고, 그의 자손들이 타가문과 혼인을 계기로 가족을 구성하였던 혼맥 네트워크를 당대의 인적, 학적 네트워크와 연동하여 살펴보았다. 김인후가 조선유학사에서 호남의 유학자로는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인물이라는 점도 고려되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김인후가 자손들의 혼인을 통해 향촌의 사류들과 폭넓은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김인후는 두 아들과 세 딸, 손자 한 명의 혼사를 통해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소속되어 있는 여섯 가문과 그 종족의 일원들과도 관계를 맺는다. 혼인에 의한 가족의 탄생은 당사자나 그 부모들의 관계맺기에 그치지 않는다. 혼인의 파급력은 친인척 결합의 한 형태이자 가문과 가문의 일원들이 연결되는 ‘확산된 가족’을 구성한다. 인적 교류가 제한적이던 전통시대에 혼인은 다른 존재들, 이를테면 다른 지역이나 다른 가문의 일원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구성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가족구성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상존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남녀의 결합이라는 혼인의 과정을 전제로 구성되는 조선시대 유교적 가족탄생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고 가족구성 자체를 탐구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글에서 혼맥의 관계망을 살펴보려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전통시대 가족구성의 일단을 확인하려는데 있다. 둘째, 가족의 탄생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관계망은 16세기 전반기 호남의 학적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의 공감장과 어떻게 연동되는가를 살피려는 것이다. 셋째, 혼맥과 인맥 그리고 학맥의 연결 과정에서 당대 호남의 유학자들이 고민하였던 학술적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