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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쌩텍쥐페리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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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왜, 또 《어린 왕자》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인가?
그간 숱하게 우리말로 옮겨진 《어린 왕자》번역본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언어의 집’인 문학 작품을 그 본래의 언어로부터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다간 형태가 일그러져 벽에 금이 가고, 보기 흉측한 집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쌩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진정한 삶에 대한 의미의 표현이라든지, 뉘앙스를 온전히 그대로 다른 언어로 옮긴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은, 올바른 번역에의 갈증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 소개에서 피력했다시피,《어린 왕자》는 현실의 언어가 아닌 마음의 언어를 사용하기에, 쉽게 읽히는 문장 속에 다양한 뜻이 담겨 있어, 책을 읽는 이에 따라 달리 읽힐 여지가 있다. 옮긴이는 그러한 점을 깨달아,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뇌며 글을 옮기는 작업을 하였다 한다. 옮긴 이 역시 다 올바르지는 않을게다. 올바른 번역을 위해 실수를 되도록 줄이려고 노심초사(勞心焦思)했다는데, 독자의 기대에 대한 책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 때문 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번역자가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무던히 애썼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