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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1. 시작은 이러했다 2. 만만찮은 여자아이 3. 몽고메리에서의 학창시절 4. 결혼, 그리고 사회운동 5. 투표권을 위해 싸우다 6. NAACP의 간사로 일하다 7. 백인들의 폭력은 더욱 심해져가고 8. “당신을 체포합니다” 9. “백인들, 이번엔 딱 걸렸어요!” 10. 자유를 향한 힘찬 발걸음 11. 디트로이트로 이사하다 12. 그 후 로자 파크스의 생애 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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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쇼.”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에 신물이 났다. “당장 경찰을 부를 테요.” 운전기사가 소리쳤다. “마음대로 하세요.” 내가 응수했다. 잠시 후 백인 경찰관 두 명이 버스에 올랐다. 내가 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밀어내는 겁니까?” 경찰관 한 명이 말했다. “낸들 알겠습니까. 법이 그렇다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당신을 체포합니다.” --- pp.11-12 1949년은 참으로 험난한 한 해였다. 신문에 보도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수 없었던 사건도 많이 일어났다. 흑인에 대한 백인의 그 엄청난 폭력과 증오로 인해 때때로 좌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내 일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 p.109 보이콧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 파크스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파크스는 해고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직했다. 맥스웰 필드 공군기지 구내 이발소의 백인 소유자인 암스트롱 씨가 지침을 내렸다. ‘이발소 내에서 버스 보이콧에 대해 언급하거나 로자 파크스의 이름이 거론되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파크스는 자기 부인의 이름이 언급되면 안 되는 곳에서 계속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 p.167 1964년의 시민권법과 1965년의 투표권법은 흑인들 및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백인 지지자들의 비폭력적 저항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킹 목사는 비폭력주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도의 모한다스 간디가 비폭력적 저항을 통해 영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벌인 것에 대한 많은 책을 읽었다. 간디는 상대가 폭력을 휘두를 때 똑같이 폭력으로 맞서지 말라고 말했다. 킹 목사도 역시 그렇게 말했다. 나는 미국의 흑인들이 분리주의와 싸우면서 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싸움이 그러한 비폭력주의에 기반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 p.201 최근에 발생하는 이런저런 일로 슬퍼질 때가 많다.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리 쉽지는 않다. 나는 반평생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과 형제애에 대해 가르쳐왔다. 미움과 편견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 사랑과 평등의 삶을 살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평화와 화합과 사랑 속에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마음을 갖게 될 때 우리의 삶은 그만큼 더 나아지리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 p.216-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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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작지만 거대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안철수 교수의 자필 편지에서 언급한 ‘로자 파크스’의 조용하지만 강한 변화를 일으킨 용기! “내게는 여느 날과 똑같은 날이었지만 수많은 대중들의 참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 “55년 전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처럼, 우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놓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교수가 자필로 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지지 서한 내용 중 일부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연설문에서 로자 파크스를 자주 인용한다. ‘로자 파크스’가 누구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존경 받는 인물들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일까? 링컨 대통령에 의해 흑인 노예가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꺼질 줄 몰랐던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흑인 시민권 운동이 촉발됐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381일 동안 4만2천 명의 흑인들이 도시의 공공운송수단 승차 거부 운동을 시작했으며 비폭력으로 저항 운동을 이어 나갔다. 수천 명의 흑인들이 학교와 직장을 걸어서 갔으며 흑인이 모는 택시만 이용했다. 당시 몽고메리 카운티에서는 카풀을 막는 법과 택시 요금 인상으로 보이콧을 중지시키려고 했으며 킹 목사의 집에는 폭탄이 떨어지기도 했다. 결국 미 연방 대법원은 로자 파크스의 벌금형을 무효화하고 몽고메리 버스의 인종 차별을 없애라고 명령했으며, 1956년 공공운송수단의 인종 차별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끌어냈고 1964년 공공시설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연방시민권법의 결실을 맺었다. 로자 파크스의 작은 행동은 많은 흑인에게 힘을 주었고 인종분리법 폐지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틴 루터 킹, 콘돌리자 라이스, 버락 오바마…, 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흑인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배경에는 로자 파크스가 있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의 이론처럼 그녀의 작은 저항이 미국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촉매가 되었다. 이 책은 로자 파크스가 직접 쓴 유일한 자서전으로,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버스좌석 거부 와 그 이후 그녀가 어떻게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될 수 있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녀의 숨겨진 눈물과 노력을 담담하지만 강하고 힘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또한 로자 파크스 본인이 직접 제공한 빛바랜 사진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이 책을 통해 유명한 정치인도 학자도 아닌 평범한 시민에서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불리기까지 로자 파크스의 일생을 돌아보고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되짚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