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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05
추천사 07 제1장 여고 시절 그대는 ‘감자탑’ 아닌 ‘금자탑’ 17|대통령 찬가와 테니스 매스게임 23|개가식 도서관에서 누린 행복 28|작은오빠 박형선 31|운명 같은 친구 전혜경 38 제2장 대학생이 되다 공개 서클과 비공개 학습팀 48|공개 사회과학서클 제1호 루사 55|루사의 전성시대 57|빛나는 전통의 국사교육과 67|꼭꼭 숨은 꼬두메야학 79|있을 사람은 있고, 나갈 사람은 가라 89|종합시험 거부 투쟁 93|학습팀의 성취와 좌절 97|중앙정보부에서의 하룻밤 112|교육지표사건과 박석삼 119 제3장 들불로 타올라 들불야학의 마중물 겨레터야학 134|광주의 첫 노동야학 설계 139|광천동성당과 양림동 한옥 144|들불야학 1기 입학식 151|광천시민아파트의 빈민운동가 김영철 155|서울에서 전주로, 다시 해남으로 159|이소라, 이 땅의 딸로 태어나 163|현실에 눈뜨는 강학과 학 생들 166|들불의 새로운 리더 윤상원 173|스물두 살, 갑작스러운 죽음 178|의롭고, 외롭고, 순수한 182 제4장 죽음, 그 이후 광주공단 실태조사 보고서 200|지역운동, 그리고 문화운동 206|복길이 어머니, 들불의 어머니 218|들불야학 제1회 졸업식 222|광주의 봄, 총학생회 부활 226|광주민중항쟁의 유일한 언론 [투사회보] 230|부활의 노래-영혼결혼식 239|「넋풀이」와 「임을 위한 행진곡」 245|하늘의 별이 된 들불 7열사 257|윤한봉과 들불열사기념사업회 265|‘들불야학’에서 ‘불이학당’까지 270 제5장 어린 시절, 그리고 부모님 공붓벌레, 책벌레 279|보성여중의 일대 사건 284|특별한 아버지 박도주 286|곱디고운 어머니 선덕애 294 박기순 연보 300 들불야학 연보 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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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의 부제를 ‘1978년 광주와 들불야학’이라고 한 것은 그해가 광주사회에 엄청난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3월에는 전남대 민속문화연구회가 창립되고, 4월과 6월에는 전남 함평고구마사건과 전남대 교육지표사건이 터지고, 7월에는 들불야학이, 11월에는 지역 최초의 민주여성 단체인 송백회가 창립됐기 때문이다. 문화 · 농민 · 교육 · 야학 · 여성운동이 동시에 일어난 해이다. 그는 “78년 광주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들불야학은 강학과 학강(학생 · 배우면서 가르친자)들이 80년 5월 민중항쟁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화의 초석되었다”고 말했다. “들불야학의 정신과 오늘날 촛불정신이 연결된다”, “7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과 광주항쟁 등에 대한 연구가 계속돼 역사적으로 의미 있게 평가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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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순의 깊은 뜻을 다 알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의 행동에 같이 하지 못해 죄스럽다. 그러나 이 책으로 박기순이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 김성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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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대학생들의 엘리트로서의 역할과 사회에 대한 사명감, 소규모 학습회를 통한 사회문제 인식, 사회의 구조적 모순 해결을 위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연결, 노동자들의 의식화를 위한 노동 현장취업 및 노동야학 운영이라는 커다란 흐름의 중심에 항상 박기순이 있었다. 기순은 죽었지만 그가 뿌린 씨앗이 2년 후 열매가 되어 5·18이라는 역사적 시민항쟁에서 ‘들불’이 되어 타올랐다. 기순과 함께 ‘들불야학’을 했던 강학들, 그리고 ‘들불 7열사’의 헌신과 희생과 실천적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 정행 (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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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면 이 글이 한 개인의 평전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까지의 광주민주/학생운동사를 함께 버무려서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원고를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거림이 있었고,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다시금 하였다. - 홍영기 (순천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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