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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수필 / 시를 공부하게 된 이유·7
1장 / 고향, 아름다운 흰 눈꽃처럼 마음에 남은 고향 엄마·16 모내기 하던 날·20 내 인생의 전환점-밥값 할 무렵·24 똥을 들쳐보다·28 가짜 수영·31 경계를 넘다·34 내 고향 대신리·37 멧돼지와 맞서다·40 밤밭·44 소 기르기·47 역전 -이웃집 소들·50 소에게 뱀 먹이기·53 면회와 맞선·56 벼락치기·59 2장 / 음악, 옹이진 내 삶의 고운 아이러니 가수 지망생·66 별 두 개 달다·70 수난시대·74 목포는 항구다·78 아쉬움이 남은 일·81 동명이인·85 3장 / 문학, 내 삶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마음의 공간 시민대 입성하다·90 사장된 시·93 시조는 단시조라야·97 북청으로 달려간 청년 -서울노인 복지관 서예실에서·100 늦은 밤의 노크·102 서예교실에서 만난 어느 여인·105 서예교실에서 만난 심씨·108 서예교실에서 만난 전영감·111 나무늘보 왕이 되다·114 봄날은 간다 1·116 봄날은 간다 2·119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고·122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125 4장 / 삶, 살며 사랑하며 미워하며 살아낼 기억의 편린들 펑크 난 삶을 때우던 시절·130 또미·134 이산가족 상봉하기·138 친구여 고맙네·141 갈대는 흔들린다·144 꿈은 날아가다-나의 좌우명·146 단골 유감·150 손해·152 승강기에서·154 용꿈 꾸다·157 눈치 보기·161 줄서기·164 지하철 흙탕물·167 재수 없는 여자·171 아닌 밤에 홍두깨·174 5장 / 내 삶의 저녁의 정원, 그리고...나의 저녁나절은 행복하다 속빈강정·180 제자리 찾기·185 내시경 하는 날·188 단벌치기·191 애기똥풀·193 출구 바로 찾기·196 환풍기·199 마음 비우기·202 장미호박·205 얄미운 벌레들·208 채분 1·211 채분 2·214 호미의 능청·216 쪼잔한 이야기·218 텃새 둥지 틀기·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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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면 또 어떤가? 물길을 거스르고 갈 때는 배가 좌우로 심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혹 뒤집히지 않을까 덜컹 겁이 나곤 한다. 배 안의 풍경을 보면, 멀미 하는 사람은 ‘왝왝’거리기 일쑤고, 누워서 자는 사람, 고스톱 치는 사람, 장기 두는 사람, 그저 파도나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 앉아서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처음 여객선을 타 봤을 것인데 조금도 기억나지 않은 것을 보면, 업혀가다가 잠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때야 당연히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을 것이다. 엄마라고 불렀던 기억, 그 기억이 적어 아쉽다. 어머니를 엄마라고 크게 한 번 불러 본다. “엄마????” ---「엄마」중에서 쇠똥구리는 소똥을 먹고 산다. 토끼는 자기 똥을 먹는다. 코끼리 새끼는 어미 똥을 먹는다. 소똥은 집 짓는 데 쓰고 땔감으로도 쓴다. 우리는 똥이 더럽다 하면서도 자주 인용한다.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똥짐. 똥장군. 똥 먹던 강아지는 안 들키고 겨 먹던 강아지만 들킨다. 똥 싼 놈은 달아나고, 방귀뀐 놈만 잡힌다. 이렇듯 우리는 똥 속에서 해어나지 못한다. 이놈은 이름도 참 많다. 뒷간, 통시간, 똥간, 북수간, 똥통, 정방, 작은집, 해우소 등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천하일색 미인도, 뱃속에는 똥이 차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똥한테 자유로울 수 없다. 싫어도 똥 하고 같이 어울릴 수밖에. ---「똥을 들쳐보다」중에서 그때부터 나는 뱀 전문가가 된 듯 뱀하고 친해졌다. 그놈을 잡으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하면서 까불고 만용을 부렸다. 따지고 보면 뱀은 죽은 것은 안 먹고 이슬만 먹고 사니 사실은 깨끗한 동물이다. 독사나 살무사는 맹독이 있어서 물리면 큰일 나지만 화사는 독이 없어 물지도 않고 또 물려 봤자 물리나 마나다. 그 소는 거짓말 같이 포동포동 살이 쪄 갔다. 천하장사가 온다고 하여도 소 입 하나 벌리지 못할 터인데 초등학생이 소 입을 자유자재로 벌리는 원리를 터득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소만 보면 기분이 좋고 우리 소 남의 소 가리지 않고 풀 잘 먹고 쟁기질 잘하고 싸움 잘하는 소를 좋아했다. ---「소에게 뱀 먹이기」중에서 이난영은 김해송 작곡가와 결혼하여 많은 자녀들을 두었는데, 사촌까지 영입하여 김씨시스터즈, 김보이즈, 두 팀을 만들었다. 그 팀들이 유명한 가수대열에 올라, 급기야 미국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으니, 유전자가 따로 있나 싶었다. 김해송 작곡가가 납북되는 바람에 이난영은 말년에 남인수와 재혼하였다. 지금도 목포 유달산에 가면,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그녀의 사촌오빠인 이봉용이 작곡 한 '목포는 항구다'를 열아홉 이난영의 목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중에서 나는 깨끗한 옷 한 번 못 입고 먼지투성이 기름밥을 먹고 있어도, 버스 타는 손님들은 상쾌한 기분으로 출퇴근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버스가 자꾸 늘어나 좋아했는데 그렇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30여 대의 버스가 60대가 되고 보니 천호동 종점에서 길동과 암사동으로 양쪽으로 갈라졌다. 갑자기 종점이 두 개가 되고 말았다. 나는 길동으로 가고, 암사동은 딴 사람이 자리 잡았다. 할 수 없이 10여 년 동안이나 정들었던 기름때를 시원섭섭하게 벗어놓고 말았다. 지난 세월 펑크 난 타이어를 때우는 일은 곧 나의 삶을 때우는 일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땀의 가치를 배웠다. 밑바닥에서 뒹굴어 봐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고, 고생한 만큼 차츰 성숙되었다. ---「펑크 난 삶을 때우던 시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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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진의 결혼 60주년이란 핑계로 엮은 자전적 산문집
지나온 삶을 기억하며 되돌아보는 소소한 인생 드라마! 좋은 가사를 한 편 써서 작곡을 하리라는 꿈을 갖고 시 창작 강의실을 노크했다. 10여 년 동안 수강료 또박또박 다 내고 공부했건만, 내 마음에 드는 가사 한 편 못 썼다. 그렇다고 시라고 내세울 만한 작품도 한 편이 없다. 이건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된, 궤도를 이탈한 인공위성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한가롭게 산책하는 듯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칠순에 시집 한 권 냈고, 팔순에 시조집을 한 권 냈으니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뒤돌아보면 시 공부는 했으나 들어도 모르고 안 들어도 모르고 모르기는 매 일반인데, 그 시간이 돌아오면 가슴이 설레고, 뭔가 꼭 이룰 것 같은 짜릿한 전율이 온다. 덕분에 시 공부한 시간은 아까운 줄 몰랐다. 아무리 즐겁게 공부했다 하더라도 가사 한 편 건지지 못했다면 이건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할 통탄할 일이다. 23세에 대중가요 작곡을 발표했다. 지금 같으면 10대 가수 안에 들어갈 만한 인기 가수와 신인 가수에게 취입시켰다. 커피 한 잔 사준 적 없이 작사 작곡 편곡 지휘를 어깨너머로 곁눈질하여, 기타 개인지도 스탠드바 단란주점에서 오르간 독주를 한 프로 음악가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시 공부를 안 했을 때에는 내가 작곡한 곡은 가사를 거의 다 썼다. 50여 곡을 취입했고 3절까지 작사해 놓은 것도 100여 편이 넘는다. 벌써 반백년이 훌쩍 지나가버린 이야기다. 그 당시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잠시 접어둔다는 게 그만 세월이 많이 흘러가버렸다. 60대 중반이 지나 시 창작 교실을 노크 하여, 아무리 갈고 닦고 조여 봐도 내가 설정한 목표에는 미치지도 못하고 주위만 헛돌아 샛길만 가고 있으니, 누가 봐도 실패한 일인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돈도 안 되고 명예도 안 되는 시, 아무리 들여다봐도 안 보이는 시, 그래서 시가 좋다. 그것이 쉽게 오고 아무나 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나 같은 사람한테 차례가 오겠는가. 젊고 머리 좋고 힘세고 날랜 누군가가 다 가져갔을 것이다. 아까운 시간 다 까먹고도 남는 것 하나 없고, 작사 한 편 못썼어도, 시 창작 교실에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낙원이다. 뱁새가 황새 흉내 내다 가랑이가 찢어져 피를 질질 흘리는 것처럼 나 역시 다시 꿰매고 그리고도 또 흉내 낸다. 그래도 그것이 나에겐 무엇 하고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