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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삶을 살고 싶다
천경자
세상속으로 199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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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이 땅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2. 미국, 그 새로운 삶을 찾아서
3. 내 이름은 존저헤일입니다
4. 절반의 성공. 절반의 고행
5.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1924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1937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미술 교사에게 그림을 배웠고, 고등학교 졸업 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재학 중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로 입선했고, 제23회에는 졸업작품인 〈노부〉로 입선했다. 1951년 〈생태〉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55년 〈정靜〉으로 대한미술원협회전에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1963년 도쿄 니시무라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65년 도쿄 이토 화랑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졌으며, 1969년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1
1924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1937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미술 교사에게 그림을 배웠고, 고등학교 졸업 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재학 중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로 입선했고, 제23회에는 졸업작품인 〈노부〉로 입선했다. 1951년 〈생태〉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55년 〈정靜〉으로 대한미술원협회전에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1963년 도쿄 니시무라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65년 도쿄 이토 화랑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졌으며, 1969년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1969년 유럽과 남태평양을, 1974년에는 아프리카와 유럽을 여행하며 이국 풍물을 소재로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1971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75년 3?1문화상을 받았다. 1954~1973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근대 한국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꽃과 여인을 주로 그렸고 수필집으로 《천경자 아프리카 기행화문집》, 《한恨》 등이 있다. 2015년 8월 미국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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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천경자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북 보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열아홉에 만난 남편과의 사이에 두 딸이 있었지만 헤어진 뒤 미국인을 만나 1971년에 도미하였다. 하루에 두 직장을 다니며 억척스럽게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지만 그 결혼은 결국 8년만에 파경에 이른다. 이국인 여자의 몸으로 두 아들을 키우면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역경들을 겪지만 그녀는 그것과 당당히 맞서 마침내 인정받는 자기 업체를 가진 미국인 사업가가 되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5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5048382

책 속으로

나는 아편 중독자로 분류되어 형무소가 아닌 병원으로 보내졌다. 이후 한 달 반이 넘도록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괴로운 와중에서도 임수택의 행동에 서럽고 분통이 터졌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직접 얼굴을 맞대고 변명하기라도 했다면 그렇게 가슴이 갈가리 찢기듯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사랑 때문에 맺어진 인연도 아니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더라면, 그를 놓아주고 담담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나를 신고해서 감옥에 넣어 버리는 최악의 방법을 택했다. 내 나이 스물 셋의일이었다.

퇴원 후 집으로 가보니 올케라는 낯선 여자가 와 있었다. 생전에 엄마는 조금의 헛점도 보이지 않는 철저한 사람이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이제는 도박에 빠진 오빠가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면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는 장남에게 모든 것으 다 맡겨놓은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했다.

이래저래 내가 집에 있을 처지가 못 되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형벌이 될 만큼 힘든 나날이었다. 피붙이들을 그렇게 떼어놓고 온 것에 대한 후회 때문에 하루도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

설핏 잠들었다가도 젖 먹일 시간만 되면 정확히 아파오는 가슴의 통증 때문에 깼다. 이름도 지어주지 못하고 온 둘째 딸의 조그만 몸집이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했다. 나는 며칠 밤을 그렇게 앉은 채로 꼬박 새웠다. 정희는 제대로 밥이나 먹고 있을까.

고집이 센 아인데 엄마 보고 싶다고 울면 혹시 누가 때리지는 않을까. 부모가 없다고 동네 아이들이 놀리지는 않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아이들 걱정을 애써 가라앉힐라치면 이내 앞으로의 막막함 때문에 한숨이 새어나왔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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