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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장. 조식과 정인홍의 레토리션 기본이해 1) 논의의 의미 2) 남명과 내암의 상소커뮤니케이션 3) 조식, 정인홍의 경험 중시 세계 2장. 상소 레토릭 1) 레토릭의 행위 2) 레토릭 상황과 공론의 내용 3) 敬의 확립, 경세논의 4) 상소의 커뮤니케이션 5) 서리망국론의 시장사회 6) 「신명사명」의 개인주의 정신 7) 제도권 언론의 역할 강화 8) 공론의 공도 3장. 사림의 도(道) 1) 경의성(敬義誠) 2) 경의성의 실천 4장. 레토릭 메시지의 성격 1) 언어를 통한 하늘의 뜻, 이성, 직감 2) 레토릭의 성격 3) 극기를 통한 레토릭의 완성 5장. 경의성의 유산 1) 경험론의 근거 제공 2) 실학의 근거 제공 6장. 조식, 정인홍의 커뮤니케이션 사상 1) 「신명사명」의 실천 2) 낌새로 하늘의 뜻, 이성, 직감이 공존 3) 조식, 정인홍의 레토릭 사상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趙猛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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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한 지구촌의 형성은 융합적 미디어의 경향을 더욱 두드러지게 표출시킨다. 다른 말로 현대 《독립신문》 연구만으로 현대 언론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없게 된다. 그 원류는 더욱 오래 전에 발아했다는 측면이다. 이 현상들은 외세에 의한 역사의 단절된 삶을 영위함으로써 어떤 연관성도 없는 것처럼 따로따로 삶을 영위했으나, 실제 그렇지 않은 역사의 흐름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經’은 유교의 경전을 이야기하고, 世는 세상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합쳐서 경세학은 사회정책론이다. 이성규는 “경(經)〔이념〕을 역사〔史〕에 붙여 경사(經史)이다.”라고 했다. 사(史)는 계속 바뀌는 것이고, 경(經)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 이 둘이 합치면 국가운영원리, 즉 사회정책론이 된다. 남명은 관직을 갖지 않았으나, 경세론으로「을묘년에 사직하는상소문(乙卯辭職疏)」(1555, 명종10년)을 비롯하여, 3개의 상소문이 있고, 내암은 「사영천군봉사(辭永川郡奉事)」(1578년, 선조11년)를 시작으로 많은 상소문(上疏文), 차자(箚子) 등을 남겼다. 더욱이『내암집』에는 기존의 문집과는 달리 시문이나 학문의 이론에 대한 입장을 밝힌 글보다는 상소문이나 봉사 등 정인홍의 정치적 입장을 밝힌 글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내암은 장령, 대사헌 등 제도권 언론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상소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내암집①』은 “장령, 대사헌 등 감찰직을 수행할 때는 철저한 엄격성을 보였으며, 당쟁 시에는 반대 정파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라고 했다. 한편 인조반정이 1623년 일어나면서, 사림의 득세한 시기는 지나갔다. 즉, 은일(隱逸)의 사대부는 인조반정을 기해, 남명과 내암이 속한 북인(北人)의 사림(士林)이 속한 신분 집단의 근거를 자체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동강(東岡) 김우웅(金宇?, 1540~1603), 미수(眉?) 허목(許穆, 1595~1682),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등 실학자들이 그들의 학문을 전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