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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대상의 슬픔과 고통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안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등단한 시인 박세미의 첫 시집. 부서지고 작아진 우리네 마음을 나직하고도 믿음직한 문장으로 노래합니다. 혼자서 아껴가며 읽기 좋은 시집이지요. "그러니까 모두는, 혼자가 되어서야 / 낭독을 한다." - 시 MD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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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아프고 나면, 정말 아플 겁니다 떼 꾀병 알 미미 지각하는 이유 화이트아웃 먼지 운동 아무것도 하기 싫어 도깨비 파티의 언어 몇 퍼센트입니까 2부 벽과 종이와 액자로서 태어납니다 또와 척 빛나는 나의 돌 대체로 전구의 형식 딸기를 보관하는 법 팔삭둥이 프로시니엄 관찰자로서 ‘ ’ 신앙생활 증발자 제3의 방 3부 나의 어린 하마는 허우적대지 않는다 얼굴이 없는 것들 날개가 달린 것들 흰 겹 검은콩 하나가 있다 인간 세 명 춤추는 돼지 피규어 오브제 떠나는 나에게 반투명한 내일은 도시를 하나 세울까 해 부러진 부리 게니우스 로키 무게는 소리도 없이 4부 기분은 디테일에 있다 타워 물성 잠옷 아가미 깃발 조감 블랭크 기분은 디테일에 있다 옥신 알비노 혼자서의 낭독회 데칼코마니 구음(口音) will 죽은 식물의 뿌리가 공중에 있는지 뜻밖의 먼 해설|부서지고 작아진 마음 전문가 |박상수(시인,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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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아플 겁니다.
슬픔이 오기 전에 아플 거예요. 물에 빠진 개와 눈이 마주쳤을 때 마침 나는 차가워졌고 조금 늦게 감기에 걸렸습니다. 아프고 나면, 정말 아플 겁니다. 스스로를 믿는 힘으로 --- 「꾀병」 중에서 마주앉은 사람이 내게 끝없이 질문을 합니다 대답을 하면 할수록 내가 지워지는 줄도 모르고 뒤에 있는 사람이 내게 끝없이 용기를 줍니다 주먹을 쥘 때마다 내 두 눈이 감기는 줄도 모르고 몰려드는 구경꾼들 그들 한가운데 나는 속이 비치는 동물 그들은 각자 스케치북을 꺼내어 드로잉을 시작합니다 이제 나는 관찰 대상입니다 해안가로 떠밀려온 돌고래로서 죽은 새끼를 안은 채 영영 잠이 든 침팬지로서 가끔 사람 행세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은 나를 그린다면서 자신들을 그려놓았습니다 나는 잠시, 내가 선택한 것이 죽음은 아니었는지 생각합니다 --- 「관찰자로서」 중에서 커튼은 고백하기 좋다 눈썹과 코끝을 스치며, 커튼은 자꾸만 바닥으로 늘어지고 등에는 투명한 창이 매달려 있지 술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커튼을 빌려 나타나는 입술의 형상 목소리는 입술의 모양보다 늦게 온다 그러니까 혼자는, 후회를 기다려 (…) 그러니까 혼자는, 죽기 좋은 곳을 확인해 난간은 고백하기 좋다 햇빛을 반사시키며, 옥상은 혼자를 튕겨내고 싶어하지 목소리는 공중에 내민 발보다 늦게 온다 낭독을 마치고 나면, 반가운 택배를 기다리고 우리는 친구처럼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해 그러니까 모두는, 혼자가 되어서야 낭독을 한다 --- 「혼자서의 낭독회」 중에서 거울을 깬 적이 있지 누군가 불길한 징조라고 말해주었고 그날 이후 나는 그릇도 깨고 화병도 깨고 날카롭게 조각난 것들을 주우며 우연이라고 믿으며 긴 장마가 끝났어 숲의 입구에서 나는 나의 발을 한 번 보았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로만 가자 깊고 연약해 보이는 땅만 밟자 진흙 속으로 오른발이 쑥 빠질 때 내버려두자 더 깊이 빠뜨리며 기다리자 머리 위로 새똥이 떨어질 때까지 멀리서 거울을 깨뜨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무릎까지 차오른 진흙이 온몸을 뒤덮을 때까지 내게 가장 재수없는 일은 당신이 내 이름을 계속 부르는 것일까 당신이 내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는 것일까 ---「뜻밖의 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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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져서 선명한, 사소해서 단단한
‘부서지고 작아진 마음 전문가’의 혼자서의 낭독회 박세미의 시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이는 부서지고 작아진 마음들과 사람들을 가만가만 지켜보아온 자의 염려에서 비롯한 윤리일 터.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귀한 존재는 되지 않아야겠다.”(「피규어」)는 마음가짐과 “가벼운 것을 가장 무서워”(「화이트아웃」)할 줄 아는 마음, “다시는 결심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아무것도 하기 싫어」)는 화자들은 모두 한 번쯤은 “굼벵이의 자세, 굼벵이의 속도, 굼벵이의 마음, 굼벵이의 식욕, 굼벵이의 일상”(「물성」)이 되어본 사람들일 것이다. “기어서 기어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오늘도/ 실패라서”(「물성」) 쓸쓸하기까지 한 나날을 보내고, 무생물-사물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시간들을 통과한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가끔 박세미의 시가, 목소리가 거침-없이 파고드는 이유는 “왈칵 쏟아진 오늘 같은”(「아무것도 하기 싫어」) 것에 미리감치 “곧 아플 겁니다.// 슬픔이 오기 전에 아플 거예요. (…) 아프고 나면, 정말 아플 겁니다./ 스스로를 믿는 힘으로”(「꾀병」) 우리의 아픔까지 끌어안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눈물을 모두 소진하면 웃음이 나”(「전구의 형식」)듯, 진정으로 아프고, 앓고 나면 비 온 뒤의 날씨처럼 선명해지는 감각이 찾아오듯, 그 마음은 ‘이제 내가 모르는 것들’(「블랭크」)을 향해 혼자서의 낭독회를 준비한다. 기도의 형식은 맞댄 두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꿇어앉아 하늘을 향해 포갠 발바닥에 있습니다 거기엔 빛나는 돌이 놓여 있죠 하지만 누군가 내게 와서 서로의 발바닥을 맞댐으로 사랑에 빠지자, 말한다면 나는 기꺼이 졸도할 것입니다 두 발바닥을 활짝 펴고서 _「빛나는 나의 돌」 부분 작아져서 더욱 선명해지고, 사소해서 더욱 단단한 나와 마음과 시. 박세미는 그 어떤 포즈나 허언 없이, 때로는 관찰자의 마음으로 때로는 취재의 시선으로 시를 지어 건넨다. 갈라지고 때묻은 마음의 벽에 새하얀 젯소를 덧칠해 시를 건네는 마음. 굼벵이의 속도이지만 한없이 부드럽고 연한 몸짓으로 다가드는 시. 박세미의 시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우리가 원래 되어야 하는 것이 되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단다. 부서지고 작아진 우리. 실패하는 굼벵이 같고 먼지 같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슬픔에 빠져 있는 우리. 그럴지라도 나는 끝까지 나로 남아 나를 지키면서 살아갈게.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할게. 너도 너로 남아, 너를 잘 지키면서 살 수 있기를.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스스로에게 속는 힘으로” 또 “우아한 몸짓”(「꾀병」)으로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러다가 우리 다시 만나. 열렬하게 꼭 만나. _박상수(시인/문학평론가), 해설 「부서지고 작아진 마음 전문가」부분 드디어 커튼이 걷히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시인이 첫 낭독회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박세미의 첫 시집을 마치 ‘처음 보게 될 아이의 눈동자를/ 그리워해’온 것처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이 아이는 나일 것이다.’(「wi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