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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 ‘문명의 화산’에서 바라보는 재해와 일본인 조관자
특집?: 재해와 일본인 재해와 일본의 사상 _ 스에키 후미히코 재난과 이웃, 관동대지진에서 후쿠시마까지 : 식민지와 수용소, 김동환의 서사시 「국경의 밤」과 「승천하는 청춘」을 단서로 _ 황호덕 계엄령에 대하여 : 관동대지진을 상기한다는 것 _ 도미야마 이치로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 「고지라」와 「일본침몰」을 중심으로 _ 김려실 ‘지진 예보’의 꿈과 현실 : 일본의 지진 예측 연구에 관한 역사적 고찰 _ 김범성 3·11 이후의 일본의 원자력과 한국 _ 전진호 재해 재건과 창조적 관광정책 _ 조아라 특집시론 / ‘절대반지’로서 원자력의 유혹 _ 강상규 연구노트 / 떠날 수 없는 내 고향, ‘도호쿠’ _ 이호상 연구논단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_ 정진성 세계화와 일본의 기업별조합 _ 우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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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은 간절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원전의 피폭지에 무엇을 재건하든 자연이 문명의 오욕을 씻어 줄 시간을 겸허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부흥은 자연의 순환 원리 안에서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실제로 근대 이전의 일본인들은 쓰나미가 덮친 해안가를 개발해서 살아갈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도호쿠 지역의 향토연구가와 역사가들은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이번 쓰나미의 침수지역을 벗어난 경계선에 신사(神社)를 세워 놓았음을 알아차렸다. 옛사람들은 “쓰나미가 몰려오면 육친도 살림도구도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높은 곳으로 피하라”는 말을 바위에 새기고 있었다. 지진 예보가 없던 시대에 스스로 재난을 방어했던 사람들의 지혜는 근대화 이후의 개발이익과 일본인론의 미담 밖으로 밀려났다. 근대화 이후 망각되었던 방재의 지혜는 3·11 쓰나미의 침수지 위에서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 조관자, 「편집자의 말」(본문 9쪽) 중에서 독립선언과 소요사태론이 교차했던 3·1운동은 하나의 영토 안에 두 개의 주권이 경합했던 순간이라는 의미에서, 일종의 내전 상태를 연출했다. 그리고 그 직후인 1919년 8월, 정국 수습을 위해 조선총독에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를 정무총감으로 삼아 함께 남대문 역에 도착한다. 미즈노는 남대문 역에서 강우규 의사의 폭탄 세례를 받았지만 결국 살아 남았고, 후에 식민본국의 내상(內相)이 된다. 그가 관동대지진 하의 계엄령 발동을 통해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내전상태·일방적 살육이었지만, 결코 그 살육의 상황 하에서는 죄가 되지 않았던 집단 학살·를 획책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미즈노 렌타로와 유언비어를 함께 만들어 유포한 경무총감 아카이케 아쓰시(赤池濃)는 3·1운동의 뒷수습 역(役)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장과 경무국장을 지낸 사람이었는데, 지진 발생 직후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에게 계엄령을 요청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3·1운동의 열기와 그 후의 분위기를 겪은 미즈노와 아카이케가 조선인에 대한 공포로 인해 유언비어를 만들었고, 경무국장 고토 후미오(後藤文夫)가 이를 연락병을 통해 후나바시(船橋) 해군송신소에 보냄으로써 전국으로 퍼졌다는 설이 정설화되어 있다. ― 황호덕, 「재난과 이웃, 관동대지진에서 후쿠시마까지」(본문 60~61쪽) 중에서 이처럼 원작은 냉전과 환경오염, 내셔널리즘이 인류의 멸망을 불러올 것이라는 주제를 담은 패러디 소설이지만 “내셔널리스트적 상상력에 이르는 수로(水路)를 열었다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 2006년, 우경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영화 「일본 이외 전부 침몰」의 상상력은 한층 우편향되었다. 가와사키 감독은 시간적 배경을 고이즈미 수상과 아베(安部晋三) 관방장관의 이름을 합친 듯한 야스이즈미(安泉) 수상이 집권하는 2011년의 근미래로 옮겼다. 일본 이외 모든 국가가 침몰하자 각국 지도자들이 일본으로 몰려들어 야스이즈미 수상의 비위를 맞춘다. 중국 주석은 “침략의 역사, 중국과 함께 가라앉았다”고 하고 한국 대통령은 식민지의 과거는 “물에 흘려보냈다”(水に流しました, 일본어로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뜻)고 한다. 언어유희를 빙자한 과거사 왜곡은 계속된다. 미국인 유엔사무총장은 아메요코(アメ·)의 ‘아메’는 아메리카를 의미한다며 우에노 공원을 미국령으로 해달라고 조르고 총리는 ‘아메’는 사탕을 의미할 뿐 미국과 관계가 없다고 대답한다. 한편, 일본에 온 할리우드 스타들은 일본에서 일터를 구하려고 혈안이 된다. 방송사에서는 그들을 고용해 외국인을 뭉개 버리는 괴수시리즈를 유행시킨다. 일본사회 전반에 외국인 혐오증이 확산되고 정부는 GAT(Gaijin Attack Team)를 설치하여 외국인 범죄자를 사냥한다. ― 김려실,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본문 136~137쪽) 중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다카하시 데쓰야 역시 최근 그의 저작을 통해 원전은 구조적으로 ‘희생의 시스템’이며, 이번 사고는 ‘상정하지 않은’[想定外]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쿄가 아닌 후쿠시마현 연안부에 원전이 만들어졌던 것이라는 점을 갈파하고 있다. 다카하시에 따르면, 결국 원전은 입지한 곳의 지방주민의 다양한 형태의 희생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구조적 차별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에서 첫번째 희생물이 되는 존재는 바로 후쿠시마로 상징되는 주변지역과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두번째 희생은 원자로에서 작업하는 현장 피폭 노동자의 몫이다. 세번째 희생은 핵연료의 원료가 되는 국내외의 우라늄 채굴현장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에 피폭당한 희생자들이다. 네번째 희생은 방사성 폐기물이라는 원전 시스템의 구조적 부산물에 의한 엄청난 규모의 잠재적 위험을 말한다. 다카하시가 말하는 네번째 희생이란 위에 언급한 방사성폐기물로 인한 ‘미래세대 생존 조건의 근원적인 파괴’라는 지점과 겹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강상규, 「‘절대반지’로서 원자력의 유혹」(본문 237쪽)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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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공동체 일본의 집단적 무의식에 대한 고찰!!
관동대지진에서 3·11까지, ‘재해와 일본인’의 상관관계를 밝힌다! 『일본비평』 7호는 ‘재해와 일본인’이라는 특집주제를 통해, 반복적으로 재해의 위협에 노출되어 온 일본인들의 사상과 생활공간에 미친 ‘재해’의 영향을 여러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지진과 쓰나미, 화산, 태풍 등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가 매우 높은 일본에서 ‘재해’는 삶의 기본적인 조건이며, 일본인들의 집단적 무의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일 것이다. 예컨대 1995년의 한신·아와지대지진(고베대지진)은 일본의 정신적·사회적 상황이 급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역시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을 중요한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동일본대지진 이후 어떤 아우성도 통곡도 없이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던 이재민들의 모습은 각국의 매스컴에서 감동적으로 그려졌지만, 이렇게 동요하지도 않고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집단적 ‘침착함’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재해’를 겪어 온 ‘재해공동체’로서의 일본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재해와 일본인’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이번 『일본비평』 7호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의 글을 모았다. 대지진이 일본의 사상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근래에 일어난 두 번의 대지진(한신·아와지대지진과 동일본대지진)을 통해 살펴보는 한편, 고대부터 일본의 사상이 재해를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를 고찰하는 총론적인 논문(스에키 후미히코)에서 시작하여, 관동대지진과 타자의 문제를 수용소와 계엄령이라는 화두를 통해 풀어내거나(황호덕, 도미야마 이치로), 일본의 대표적 재난영화에서 드러나는 내셔널리즘적 표상들을 살피는(김려실) 등의 인문학적 측면에서의 접근뿐만 아니라, 일본 과학자들의 ‘지진 예측’ 노력의 역사를 추적하거나(김범성), 3·11 이후 탈원전과 일본과 한국의 에너지정책 문제를 고찰하고(전진호), 관광정책을 화두로 재해 부흥의 가능성을 살피는(조아라) 사회과학적 접근 또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6호에 이르기까지 『일본비평』은 ‘일본’을 비평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근거를 되물으려는 시도를 지속해 왔으며, 이는 이번 7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관동대지진에서의 조선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 이후,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때마나 ‘조선인 난동설’은 어김없이 불거졌고, 이는 가장 최근의 대재해인 3·11 동일본대지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금세 사그러들기는 했다고 해도, 재해 때마다 불려나오는 ‘관동대지진’의 기억은 일본의 재해 경험과 그로 인한 무의식에서 우리가 완전히 분리될 수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3?11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우리가 심정적·역사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방사능이라는 매개를 통해 ‘물리적’으로도 일본의 재해에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 주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이웃이자 타자로서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다시 말해 ‘가깝지만 먼’이라는 상투어로 표현되는 한일 간의 관계는 서로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일본비평』 7호는 ‘재해’라는 단초를 통해 이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재해와 내셔널리즘 불교사상연구의 대가인 스에키 후미히코는 「재해와 일본의 사상」에서 한신·아와지대지진이 일어난 1995년부터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까지의 현대 일본의 정신사적 문제를 보여 주고 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같은 해에 일어난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은 이후 일본 전체의 정신상황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그는 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이후로 “끝없는 일상”이 시작되었음을 지적한다. 정치운동의 열정이 사라졌고, ‘오타쿠 문화’라고 불리는 서브컬처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고베 연쇄아동살해사건 등으로 오타쿠, 히키코모리 등이 사회문제화 되는 등, 일본사회 전체가 폐색감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끝없는 일상’조차 2011년 3·11 이후에는 ‘끝없는 비일상’, 즉 막연한 불안이나 폐색감이 아니라 실제로 대처할 수 없는 곤란한 문제가 산처럼 쌓이는 사태로 변했다. 저출산·고령화와 경기 침체의 상황에서 벌어진 대재해는 재건과 부흥조차 요원한 일로 만들고 있으며,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혀 손쓸 수 없는 현재의 사태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호쿠 힘내라”, “일본 힘내라”와 같은 구호들이 연호되고 있다. 스에키 후미히코는 이런 구호들이 정신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 주는 것이며, ‘연대감’의 강조는 오히려 일본사회의 인간관계가 해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재해는 곧잘 내셔널리즘의 강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려실의 논문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은 일본의 대표적인 재난영화들을 사례로 하여, 대중적 취향이 반영되는 영화 미디어에서 재난에 대한 표상이 어떻게 내셔널리즘으로 투영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김려실은 먼저 1954년 비키니 섬 근해에서 실시된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 과정에서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 제5후쿠류호가 피폭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 피폭 재해를 고발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재난영화’ 「고지라」를 사례로 든다. ‘고지라’가 태평양전쟁 때 남쪽 바다에서 옥쇄하여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일본군의 원령을 상징한다는 민속학적 해석을 차용하면서, 이것이 고지라가 수폭실험을 행한 미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반복해서 돌아오는 이유이고, 도쿄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던 고지라가 ‘천황’이 사는 ‘고쿄’(皇居)에 이르자 멈추고 도쿄만으로 몸을 숨기는 이유라는 것이다. 이는 「고지라」의 후속편 중 하나인 「킹콩 대 고지라」에서 더 분명히 드러나는데, ‘일본 민족의 영산’ 후지산 기슭에서 할리우드의 괴수인 킹콩을 물리치는 고지라의 모습은 귀환한 원령이 일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등극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침몰」과 「일본 이외 전부 침몰」은 재난의 표상이 어떻게 내셔널리즘의 강화로 이어지는지를 더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애초 「일본 침몰」의 원작소설을 쓴 고마쓰 사쿄의 기획 의도는 전후 개발주의의 막다른 골목이었던 ‘일본열도개조론’에 대한 비판이자, 나태해진 전후 세대 일본인에 대한 ‘정신적인 예비훈련이자 국가 위기에 대한 시뮬레이션’이었다. 국토는 상실되더라도 민족은 영원하다는 고마쓰의 민족관은 내셔널리즘으로 수렴되었고, 이는 영화화와 이후의 『일본 침몰 제2부』가 집필되는 과정에서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패러디한 「일본 이외 전부 침몰」에 이르러서는 쇼비니즘과 제노포비아가 마음껏 배출되어, 일본에 동화하지 못한 외국인을 추방하고 밀입국 외국인을 학살하는 ‘관동대지진’의 장면까지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관동대지진 : 수용소와 계엄령의 경험 황호덕은 「재난과 이웃, 관동대지진에서 후쿠시마까지」에서 1925년에 씌어진 김동환의 두 편의 서사시, 즉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수용소의 경험을 서사시로 옮긴 「승천하는 청춘」과 그 반대쪽인 북쪽 국경에서 여진족의 후예 여성과 조선인 지식인 남성의 사랑을 주조음으로 하고 있는 「국경의 밤」을 주된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황호덕은 이 두 작품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참신한 해석을 통해서 이웃사랑의 윤리적 실천이라는 문제를 환기시킨다. 특히 황호덕이 「승천하는 청춘」을 분석하면서 부각시키고 있는 ‘수용소’라는 장치는 ‘예외상태’로서, 그리고 거기에 갇힌 조선인들은 ‘호모 사케르’로서 규정되고 현대의 정치철학과 연결되면서, 3·11 이후 제기된 “이웃의 재난에 어떻게 공명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현재적인 해답을 던지고 있다. 도미야마 이치로는 「계엄령에 대하여」에서 대지진과 같은 비상사태에서 전개되는 군대의 치안유지활동이 어떻게 계엄령과 일맥상통하는지를 최근 3·11에서의 자위대와 미군의 재해파견활동과 관동대지진 당시의 계엄령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풀어내고 있다. 3·11이후 일본의 보수강경파들은 국가비상사태를 맞아 ‘국가안전’의 방재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자위력의 증진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우익인사인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가 자위대에 질서유지를 요청하는 발언을 인용하면서, 도미야마는 질서의 유지를 군사적으로 실현하는 비상사태가 바로 ‘계엄령’이라고 말한다. 계엄령에 대한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도미야마는 관동대지진 당시의 오키나와 문제로 천착해 들어간다. 히로쓰 가즈오(?津和?)의 「떠도는 류큐인」과 이 작품에 대한 오키나와청년동맹의 항의를 둘러싼 논의를 추적해 들어가면서, 규범의 실현이 ‘법규의 정지’, 즉 ‘법 외적인 힘에 의해 수행되는’ 계엄령의 본질을 밝혀 내고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들이댄 총과 이미 살해당한 시신들 옆에서 ‘조선인으로’ 오인당하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심문에 응해야 했던 오키나와인의 모습에서 계엄령의 본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3·11 이후 : 재건과 부흥은 가능할 것인가? 일본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방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김범성의 논문 「‘지진 예보’의 꿈과 현실」은 ‘지진 예측’에 대한 일본인들이 꿈이 어떤 어려움을 겪어 왔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가 빈발하는 땅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지진 예측’이 얼마나 절실하고 포기할 수 없는 꿈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조아라의 논문 「재해 재건과 창조적 관광정책」은 일본에서 큰 재해를 겪었던 지역들이 어떻게 재건과 부흥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특히 ‘관광정책’이라는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이렇듯, 재해와 부흥의 망치 소리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도 2011년 3월 11일의 재해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피폭국이라는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허울 아래 원자력을 받아들인 것은 바로 일본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반지의 유혹’(강상규, 「절대반지로서 원자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대가는 컸고, 방사능 물질로 인해 재해 지역은 그대로 죽음의 땅으로 남았다. 이런 대규모의 재앙 이후, 일본의 탈원전 노력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전진호는 「3·11 이후의 일본의 원자력과 한국」을 통해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어떤 반성을 하고, 어떻게 ‘원전’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고 있는지를 밝히면서, 일본의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의 원자력발전이 처한 상황과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3·11 이후 이웃의 재해는 더 이상 이웃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후쿠시마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능 물질은 세계를 하나의 재해지역으로 묶어 주고 있다. 이런 전지구적 재난의 시대에 자연재해를 적대와 멸망의 계기로 만들지 않기 위해 “지금 아픈 것은 우리의 이웃이면서, 우리의 몸이면서 또한 우리의 몸이 만들어 낸 아이들까지”(황호덕, 78쪽)라는 점을 절실하게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