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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나를 견디게 하는 변명들 1부 나 자신을 견디며 삽니다 깜빡 졸던 오후에 첫눈이 지나가듯 살다 보니 자꾸 신입 살 만한 때와 살 만하지 않은 때 결혼식에서 촌스럽게 운다는 것 나다운 게 뭔데 아프니까 사람이다 떠나지 않는 이유 ‘망한 관종’이 되지 않으려면 당신의 ‘부심’은 무엇입니까 애정결핍자의 올바른 자세 안심하는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 그건 그 사람 마음이에요 가족이 지옥이 될 때 그건 그 사람 마음이에요 아이 없는 삶 우리가 잊은 얼굴 오지랖의 범위 섹시하게 산다는 것 디즈니 공주들이 필요합니다 우는 사람 할머니의 발톱 엄마, 나 낳지 마 딸들의 치마 SNS를 욕하지 말라 샌드위치를 먹자고 하면 3부 즐겁게 일하라는 말의 무례함 엑설런트 없이도 읽기의 변명 즐겁게 일하라는 말의 무례함 일은 에프엠으로 하면서 슬픔이여, 안녕 김혜수의 번역가 페어 플레이 3월 이직자의 단상 저자의 연인 공감을 의심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살 수 있겠니 정신의 다락방 날마다 나가리 4부 세상은 생각보다 너그러울지도 시나리오가 왜 이 따위인지 모르겠지만 천국과 지옥 사이 어디쯤 순간의 순정 억척스럽지 않아도 될까 어쩔 도리가 있나 한때의 꿈과 헤어져 사는 일에 관하여 연인의 옷을 입는다 돈은 없지만 좋은 집엔 살고 싶어 점집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 투표를 하는 이상한 마음 게으른 충성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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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만해서 사는 것은 어린아이도 할 일이다. 살 만하지 않아도 살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삶을 덜 부끄럽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러니까, 살 만하지 않은 때의 감각이다. 소음을 피하게 하는, 나대지 않게 하는, 고독을 수긍하게 하는, 결국엔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이치를 얼음장처럼 일깨우는. 역설적으로 살 만하지 않은 때에 읽는 책, 듣는 음악, 만나는 사람, 잠기는 상념, 올리는 기도는 반드시 나를 죽지 않게 해준다. 살 만하지 않은 때에 이르러서야 나를 최후에 떠받치는 삶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 p.23 대학 시절 존경했던 선생은, 도망쳐 찾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일상의 고통을 마취하기 위해 도망의 환상을 부지런히 소비하던 때였다. 우선 ‘지금 여기’를 떠나면 될 것이라고 나는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러나 고통이 머리카락이나 손톱처럼 존재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아는 이에게 낙원 같은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만 낙원 그 비슷한 길을 낼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 p.71 남의 돈을 번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무거운 일이었다. 당장의 일도 무거웠지만, 큰 뜻이나 높은 이상이 없어도 다만 살아가려면 죽을 때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일정한 용도로 쓰일 만한 가치를 죽을 때까지 생산해야 한다는 실감이 무거웠다. 불교가 설파하는 것, 나의 두려움을 덜어주었던 것들에 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 뭐 노상 마음에 달렸대. 마음 탓이 아닌 것도 있으니까 화도 내고 시위도 하고 투표도 하는 것 아닌가. 이른바 ‘스타 스님들’의 책이나 강연, 어록이 거슬렸다. 먹고살려면 멈출 수가 없는데 비로소 보이긴 뭐가 보인다는 건가요. 멈추면 죽는 사람도 있다고요, 스님. --- p.80~81 내가 나의 일과 그 일에 얽힌 사람들에게 애정을 거두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래서 가능한 한 즐겁게 일하려고 하는 것은 서럽고 고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른 서럽고 고된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중략) 덜 고되게 하려고 누구는 보람을 찾고, 덜 고되게 하려고 누구는 실적을 쌓으며, 덜 고되게 하려고 누구는 파티션 너머로 쿠키를 건넨다. 기왕이면 한 번 더 웃고, 기왕이면 농담을 건네고, 기왕이면 안부를 묻는다. --- p.153~154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충만했던 순간이 결혼에 있었고 가장 구차했던 순간이 결혼에 있었다. 가장 크게 웃었던 순간, 가장 크게 울었던 순간도 결혼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었다. 결혼은 ‘좋을 때는’ 파트너와 나를 두르고 있는 담장이 너무 아늑하고 미더워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상태이고, ‘별로 좋지 않을 때는’ 이 담장 안에서 일어난 심란한 역사를 도무지 담장 밖으로 설명할 길이 없어서 세상 무력한 상태다. 그러니 결혼은 내가 저 인간을 천국에 보낼지 지옥에 보낼지 알 길 없음은 물론이요, 나 또한 저 인간으로 하여금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영문을 모르겠는 상태이기도 하다. --- p.209 그와 나는 먼지 묻은 발가락들을 내밀고, 해결되지 않은 고민을 안고, 도시의 건물들 사이를 지나간다. 발가락들은 더 더러워지고, 고민은 어차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며, 풍경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매번 기묘하게도 걸으면 대체로 나아지고, 함께 걸으면 더 많이 나아진다. (중략) 요 며칠, 익숙한 듯 익숙할 듯 징글맞게 익숙해지지 않는 우울이 낮과 밤을 습격했다. 좀 걸으러 가자는 말을 어제는 내가, 오늘은 그가 꺼냈고, 내일은 둘 중 하나가 꺼낼 것임을 믿으므로 전처럼 베개에 뺨을 묻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이 좋다. --- p.257~258 |
슬픔의 경중이 아니라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중요하다 어른은 살 만하지 않은 날에도 삶을 이어가야 한다. 이윤주는 슬픔을 굳이 전시할 필요도, 폐기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저 내밀히 숨 쉬는 슬픔의 소리를 집중해서 들어보라고 권한다. 각자 슬픔을 처리하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 시간을 견딘다. 때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더라도 디즈니 공주처럼 기분 좋은 환상으로부터 욕망을 수혈받는다. 중요한 것은 나의 슬픔에 빠져 남의 슬픔을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가 책을 읽는 이유도 훌륭한 문학이 “독자를 자기연민의 우물 밖으로 꺼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사실 엉망진창이지만 어른이니까 멀쩡한 척하고 다닙니다’라고 이마에 써 붙이지 않아도 모두 으레 그렇다는 걸. 인생에서 도망치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 여기’를 떠나도 고통은 “머리카락이나 손톱처럼 존재에서 자라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는 “노상 마음에 달렸”다고 말하는 스타 스님들의 어록에 불평을 터뜨리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려는 그의 태도는 종교적인 데가 있다. 이윤주는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생의 본질에서부터 일과 사람에 얽힌 일상에 이르기까지 욕망과 허무를 차례차례 벗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그는 “살 만하지 않은 때에 이르러서야 나를 최후에 떠받치는 삶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했다. 삶의 알맹이를 찾는 당신의 여정에 이 책이 함께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