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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들개
제2장 기둥서방 제3장 탕치기 제4장 시든 꽃 제5장 부러진 칼 제6장 후리가리 제7장 하이방 제8장 겡꼬 제9장 개털들 제10장 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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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생각일 뿐, 뭐가 사람 구실이고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길인지 그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을 돌이켜보니까 조금이라도 사람다운 생각을 하면서 산 적은 없고, 남이 살아가니까 나도 살아간다는 식으로 그저 흐리멍텅하게 지내왔다는 한숨이 나왔다. --- p.83
살려는 사람들이 깨어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불을 피우는 아주머니, 좌판을 정리하는 아저씨, 걸 달러가는 꼬지들, 도시락 보퉁이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가고 있는 노동자들, 끌고 밀면서 서울의 어느 곳인가를 향하여 끝없이 가고 있는 행상 부부들, 그런 사람들과 지나치면서 나는 슬그머니 주눅이 들었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던 것이다. --- p.235 떳떳하게 당당하게 사내답게 살고 싶었다. 대검이나 빼어들어 헛깡을 부리면서 날뛸 게 아니라, 참으로 침착하고 용기 있게 살고 싶었다. 내가 비록 신체는 온전한 놈이 아니지만 강건한 깡다구가 되고 싶었다. --- p.335 나는 정말로 ‘학교’에서 삶에 대하여 여러모로 배웠다. 우리가 감옥을 학교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삐리가 다니는 곳을 우리는 삥깐이라고 부를 용의가 있다. 도대체 거기서 가르쳐 주는 게 뭐란 말인가. 글자 한 자 더 배워서 자기보다 못한 놈을 여하히 억누르고 밟아서 출세하느냐 하는 것만 가르쳐 주지 않는가. 글쎄 역설이라면 역설이겠지만, 나는 일단 두툼한 책을 끼고 몰려가는 대학생들을 보면 저것들은 이제 내 아우나 새끼들을 누르는 자가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또 여대생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저애들은 우리 새끼를 억누를 자들을 낳아 기르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 pp.373-374 나는 여러 가지로 생각했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무력하게 쫓기고 눌리면서 밥을 먹어야만 할까. 그러면서도 서로 싸우고 일러바치고 해치면서 우리끼리만 허덕인다. 나는 예전의 그 뒷골목에서 여전히 서로 의심하고 노리면서 대가리 달아주고, 조금이라도 힘이 있으면 약한 쪽을 억누르고 착취해 먹는 일이 날마다 벌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약한 것들끼리 서로 돕지 않으면 헤어나갈 수가 없는데……. --- pp.409-410 “우리가 당신한테 좀 봐달라고 부탁한 건 일을 하면서 새로 살아보려고 그런 겁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범죄꾼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잘 말해서 함께 일하고 먹고 살려는 거요. 다 똑같이 달랑 불알 두 쪽에 밥통 하나씩 달고서, 괜히 이리 물먹고 저리 몰리며 싸우기 싫다 그거요.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 돕고 사는 동네를 만들려는 거요.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위에 사람 없는 동네, 눌리고 천대받으며 날마다 뜯기면서도 범죄꾼이라는 소리를 듣는 그런 좆같은 동네가 아니라, 수고한 대가를 평등하게 받으면서 법의 보호도 평등하게 받을 수 있는 삼삼한 동네를 이루어 보려고 그런다 이거요. 어디에 대가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새사람 만들어서 같이 살겠수다.” --- p.414 민주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자기만 부지런히 벌고 능력을 발휘하면 누구든지 잘 살 수 있다면서 게으른 놈들은 평생 동안 징역을 살려야 된다고 했다. 누가 그런 노가리에 대꾸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겠는가. 쏠리고 몰리는 개털이라 끽소리 못하고 있을 뿐인 거다. 능력대로 부지런하게 양심껏 사는 놈치고 잘사는 놈을 보았던가. 다 빼앗고 훌치고 못된 짓을 해야 잘사는 세상 아닌가. 떵떵거리며 폼 잡고 사는 놈들이 모두 양심껏 벌어서 사는 놈들인가 말이다. --- p.419 저희 주부들은 다시 한 번 자식들을 쳐다보며, 빨리 돈을 벌어서 살인마는 만들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을 해보지만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는 힘들 것 같습니다. …… 제발 저희들의 애타는 호소를 들어주세요. 저희 남편과 자식들이 강도질과 도둑질을 해서 교도소에 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무리하게 도와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천막에서나마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 p.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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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둠의 자식들』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다시 읽어도 그렇다. 그리고 쓰라린 감동을 아직도 전해주고 있다. 사회 맨 밑바닥, 가장 어두운 음지에서 피어나는 치사하고 더러운 범죄와 그 범죄로 밥을 버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감 없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들이 단순히 범죄 그 자체에서 그쳤다면 우리는 호기심은 느낄지 모르나 감동을 얻긴 힘들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범죄는 어떻게든 살려고 꿈틀대는 사람들의 몸부림에 다름 아니기에 독자의 가슴을 무겁게 파고든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감옥과 부랑자 수용소의 사실적 묘사는 힘겨운 인간 군상의 세밀화와도 같아서, 재미와 감동은 물론 독자들이 스스로에게 성찰적 질문마저 던지게 한다.
도대체 먹고 사는 게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지금 ? 여기는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정글인가.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인신매매와 사기와 도둑질과 배신 등의 짓거리가 과연 그들만의 책임인가를 곰곰 돌아보게도 하는 사회적 성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이동철의 성장과정과 행적은 그대로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궤적을 반영하고 있다. 뒷골목 불량배 세계에서도 약자인 어린 부랑아 시절을 거쳐, ‘큰깡다구’란 별명으로 그 세계에서 나름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못된 짓’을 하며 감옥을 들락거리던 청년기, 그리고 자신과 동료들의 처지가 다 ‘나 못난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득하며 철거촌 빈민운동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그 밑바닥 행적. 그것은 80년대 초 사회 저변에서 일던 민중이념에 부합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요인이지만,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 전반의 어두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것이 이 책이 다시 독자들을 찾아 세상에 새롭게 나온 이유다. 이 책은 그러한 의미를 찾지 않고 단순 독서를 즐기려는 이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킬링타임용 재미를 줄 수도 있다. 푼(여자), 바이푼(윤락녀), 기수 재다(술 먹다), 곰(형사), 내방깐(경찰서), 붕어뚜룩(다방), 강아지(담배), 필을 긋다(칼을 휘두르다) 등등 어딘지 불량한 냄새를 풍기는 예전 뒷골목 은어들이 시종 흥미를 자극하고, ‘탕치기’라는 이름으로 애꿎고 순진한 여자를 팔아 윤락녀로 만드는 과정은 읽으며 치를 떨게 만든다. 감옥과 수용소에서의 여러 양상와 행태는 직접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손에 잡힐 듯한 간접 경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책은 그 생명력이 길고 싱싱하다. 이 책『어둠의 자식들』이야말로 바로 그 전범이라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