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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 심사평
심사평 정미형 / 봄밤을 거슬러 수상소감 자선작 / 수박의 맛 권이항 / 모든 것은 레겐다에 있다 수상소감 자선작 / 가난한 문장에 매달린 부호의 형태에 관하여 인터뷰 / 이화정 강이라 / 스노우볼 송은일 / 알아 보지도 못하면서 수없이 껴안은 심경숙 / 소금의 눈물 이경호 / 풍의 추락사 이미욱 / 여기 없는 날들 조미형 / 각설탕 황은덕 / 해수 취지와 심사 경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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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우수상 수상작 심사평 정미형의 「봄밤을 거슬러」는 단조로울 것 같은 노년의 하루가 생활감과 함께 밀도 있는 언어로 짜여졌다. 무엇보다 이 단편의 문학성은 조용히 놓여있는 낡은 찻잔에도 미세한 금이 가듯 죽는 날까지 우리 삶을 잠식시키는 불안이라는 복병을 통찰한 점에 있다. 삶이란 무심한 파도는 자비를 모르는 법이다. ―강석경(소설가) 정미형의 「봄밤을 거슬러」는 은퇴해서 한갓진 곳에 살고 있는 노인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데, 들쑥날쑥한 자잘한 감정들을 소도구처럼 잘 다루고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난 노인은 근심이 많고 대단치 않은 일에도 울컥하고 작은 일도 크게 느끼는 법이지요. 세부묘사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데 손색이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이승우(소설가) 「봄밤을 거슬러」는 이웃과 면한 담장을 바라보는 늙은 시인의 반나절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리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삶을 반추하는 분위기와 정조를 장악하는 문장의 내공이 감탄스럽다. ―해이수(소설가) ▶우수상 수상작 심사평 권이항의 「모든 것은 레겐다에 있다」는 한 엑스트라 배우의 실종을 관념적으로 그린 수작이다. 29년간의 엑스트라 생활에서 1750번 죽는 연기를 했다니, 수시로 죽는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일까. 자기 상실의 소외가 생이 되어버린 아웃사이더에게 달리는 도로에서 마주친 낭떠러지와 벽, 벽도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다. 《스텝 아웃》의 사명을 다하고 세상에서 물러서도 손이, 왼쪽 다리가, 몸의 부분들이 눈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내 몸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는 무명 엑스트라의 독백은 절규에 가깝다. ―강석경(소설가) 권이항의 「모든 것은 레겐다에 있다」는 주제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서술이 과감하고 세련되어 있어 믿음직합니다. 사람들의 진술이 쌓이면서 숨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흐릿해지는 소설 전개는 류노스케의 소설 「덤불숲」을 떠올리게 합니다. 누군가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타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최종적인 발화자인 ‘나’의 진술을 통해서도 진실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조차 존재의 일부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그저 겪을 뿐입니다. 삶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 삶에 대한 모든 진술은 오독에 근거할 뿐이라는 메시지를 이 소설은 효과적으로 전합니다. ―이승우(소설가) 「모든 것은 레겐다에 있다」는 첫 부분부터 눈을 사로잡았다. 문장마다 매력적인 사유와 단어가 박혀 있었고 구성 또한 매력적이었다. 특히 마지막까지 흥미를 놓을 수 없게 한 미스터리적인 진행은 소설의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정용준(소설가) ▶ 추천작들에 쏟아진 심사위원들의 찬사 강아라의 「스노우볼」은 우연히 맥도날드에서 만난 초등학교 졸업생 4명이 집에서 술파티를 벌이다 생긴 사고를 형사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독특한 단편이다. 잦은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부모가 선물로 사온 수십여 개의 스노볼이 먼지 쌓인 채 놓여있는 민호 방. 그날 “비틀즈처럼 나란히 횡단보도를 건너갔다”는 네 아이는 다 외로웠다. 섬 같은 작은 볼 속에서 하염없이 흩날리는 눈보라가 범죄자도 될 수 없는 열두세 살 미성년의 고적감과 잘 매치되어 여운이 남는다. ―강석경(소설가) 소금 굽는 과정의 세부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 심경숙의 「소금의 눈물」은 일종의 구도소설로 읽힙니다. 소금의 결정체를 얻고자 하는 반복적인 시도를 통해 세상에서 받은 원한이나 상처가 극복되는 장면을 목도하는 일은 아름답고 엄숙합니다. 연금술을 연상시키는 이 소금 만들기의 과정은 자기를 완성해 가는 일의 어려움과 중요함을 상기하게 합니다. 그 소금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이는 소설의 결말을 통해 수행과 구도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여자는 남자가 보고 싶어졌다’는 평범한 마지막 문장이 그래서 유난히 크게 보입니다. ―이승우(소설가) 이경호의 「퐁의 추락사」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추락 전문 배우의 삶을 조명한 소설은 1차적으로 흥미가 있었고 이야기 이면으로 들어가면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뒤섞인 많은 지점이 있었는데 이것들이 모두 짙은 페이소스가 묻어 있었다. 심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이 소설이 생각날 정도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정용준(소설가) 이미욱의 「여기 없는 날들」은 자식을 잃은 젊은 어머니의 ‘눈물 아닌 날들’의 고백록으로 읽혔다. 숨기기와 드러내기 방식이 탁월하고, 참고 견디고 싶지만 참고 견딜 수 없는 일상의 오열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해이수(소설가) 황은덕의 「해수」는 한 여고생이 청소년 한부모가 되는 과정을 전혀 궁상떨지 않고 거침없는 내레이션으로 써나간 단편이다. 육 개월 사귀던 남학생을 뒤에 정자 주인으로 만나 친권포기 각서를 내밀며 “그냥 사인해, 새끼야” 한심하다는 듯 알려주는 은수. “삼백만 년 전 직립보행을 하고 성 역할을 분담한 최초의 여자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후예답게 굳센 팔로 아기를 받아든 이 생명의 긍정 앞에서 철통같은 유교 사회의 가부장 이데올로기도 무색하다. 이 시대의 좋은 페미니즘 문학으로 어깨를 겨눌 만한 작품이다. ―강석경(소설가) ▶수상소감 우리 삶에도 늘 소설 속의 인물처럼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다가옵니다. 뻔히 알고 있는 일이지만 어느새 다다른 늙음이나 노화, 그리고 병들어 가는 것, 원하지 않은 경제적 어려움의 순간도 바로 그것일 겁니다. 또한 이해할 수 없고 환영할 수 없는 사람과의 만남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 저는 어떤 마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서랍을 비우듯 조금씩 빈틈을 만들어나가는 그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현진건문학상의 수상 소식을 듣고 몹시 기다렸던 만큼 이내 마음은 차분해지며 지인과 함께 간 구봉산의 저녁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공동우수상 수상자 정미형 소설이 아닌 무언가를 하는 동안 제게서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순수? 열정? 이런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랍니다. 무엇보다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것이, 바로 수줍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제 몸에서 소설가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수줍고, 제게 다가온 시간들에게 좀 더 수줍고, 제가 대하는 원고지 앞에서 좀 더 수줍게 될 수 있다면 저는 저 자신에게서 매일 소설가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를 깨운 농부의 보습 날처럼, 제게서 사라진 것들을 다시 깨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공동우수상 수상자 권이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