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 김선향 교수의 시집 『운문일기』를 읽으면 순간과 영원이 교차되면서 시와 삶이 공존하는 진솔한 향기가 여운처럼 남는다. 서정적인 형태로 발화되는 그의 시적 표현들은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이는 거칠고 소란한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삶을 정화시키고자 한 그의 오랜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99편의 시들은 1998년부터 2012년에 이르는 14년 동안의 충실한 내적 기록이라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거기에는 고통도 기쁨도 생생한 하나의 기록으로 실존한다. 그는 이 기나긴 시간 동안에 마주친 온갖 생사고락의 결정적 순간에 직면했을 때 시를 외우거나 운문일기를 쓰면서 흔들리는 자신을 진정시켜 왔는데 그의 마음속에 시에 대한 열망이 그처럼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왜 시를 썼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는 ‘그것이 나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작고한 모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물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손자들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은 거의 신앙에 가깝다. 이 시집은 그들에게 헌정되는 작은 선물이자 김선향 교수가 시인으로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개의 시편들은 솔직담백한 개인적 삶의 기록이자 격동하는 시대의 거대한 서사적 기록으로도 읽힌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들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을 동시에 보는 그의 시선은 시인의 것이자 역사가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잔잔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그의 고백적 진술들은 가치부재의 디지털시대를 살면서 변하지 않는 평상심을 지니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많은 분들이 일독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최동호(시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