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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5
제Ⅰ부 용서와 화해, 신념과 우상의 형상화 15 용서와 구원의 문제를 접근하는 두 가지 태도 17 - 「행복원의 예수」·「벌레이야기」를 중심으로 1. 머리말 ·······························································································17 2. 수혜자(受惠者)의 입장 : 「행복원의 예수」 ··········································19 3. 시혜자(施惠者)의 입장 : 「벌레이야기」 ···············································26 4. 성서상의 입장에서 본 작가 인식의 한계 ·············································30 5. 맺음말 ·······························································································35 ‘용서와 화해’의 방법과 문학치료 37 -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와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중심으로 1. 머리말 ·······························································································37 2. 용서와 화해의 방법 ···········································································41 1) 「벌레이야기」 ················································································41 2)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49 3. 용서와 화해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문학치료 ······································56 4. 맺음말 ·······························································································62 ‘신념’과 ‘검증’의 길항관계 64 - 「당신들의 천국」·「자서전들 쓰십시다」·「자유의 문」을 중심으로 1. 머리말 ·······························································································64 2. ‘신념’과 ‘검증’의 길항관계 ·······················································69 1) 「당신들의 천국」 : 체화된 신념과 궤도의 수정 ································69 2) 「자서전들 쓰십시다」 : 의도된 신념과 신념의 확산 차단 ·················75 3) 「자유의 문」 : 급조된 신념과 굴레의 해방 ······································78 3. 맺음말 ·······························································································84 우상의 양상과 사회적 함의 87 ― 이청준의 「뺑소니 사고」,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현길언의 「사제와 제물」을 중심으로 1. 머리말 ·······························································································87 2. 우상의 양상과 형성과정 ·····································································92 1) 「뺑소니 사고」 : 진실은폐와 인위적인 우상의 구축 ························93 2) 「우상의 눈물」 : 합법을 가장한 음험한 세계의 활보 ·······················96 3) 「사제와 제물」 : 우상의 길과 사제의 길 ·······································100 3. 우상의 사회적 함의 ··········································································104 4. 맺음말 ·····························································································109 제Ⅱ부 기독교적 상상력 113 이청준 소설의 기독교적 상상력 연구 115 1. 서 론 ································································································115 1) 연구의 목적 및 의의 ·····································································115 2) 선행연구 검토 및 연구방법 ···························································124 2. 이청준 소설과 기독교적 상상력 ·······················································137 1) 믿음과 사랑 : 「당신들의 천국」 ····················································137 2) 거듭남과 소명의식 : 「낮은데로 임하소서」 ···································178 3) 용서와 구원 : 「벌레이야기」 ·························································209 4) 율법과 자유 : 「자유의 문」 ···························································246 3. 결 론 ································································································302 참고문헌 / 313 찾아보기 / 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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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청준은 신을 만나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던 것 같다. 인격을 가진 신이라 믿었기에 그는 소통과 교감을 위해 신에게 간절함으로 다가섰으리라. 그러나 신은 그가 원했던 그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따라서 그는 “그 권능과 역사의 임의성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고 고백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가 택한 것은 문학이었다. 그는 신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인간 자신의 능력과 책임 안에서 삶과 죽음의 모든 문제를 풀어가고 감당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그의 소설에는 신의 뜻을 앞세우기보다 인간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긴 갈등과 오해 등은 사람들끼리 해결해야 하는 데, 이런 노력도 없이 곧 바로 신께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청준은 신을 인정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인간의 길과 신의 길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필자 또한 신앙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번뇌하며 신의 뜻을 찾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신은 인간의 그 애절함에 원하는 그대로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가 아이의 뜻을 전부 허락하지 않은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이청준이 말한 ‘신의 권능과 역사의 임의성’에서 나오는 전율을 결코 외면할 수만은 없다. 처음 이청준을 알게 된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단편소설 「벌레이야기」이다. 우리에겐 「밀양」이라는 영화로 더 알려진 작품이다. 종교는 인간에게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그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청준 소설에서 보여준 종교는 인간에게 자유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짓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신앙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신의 자비와 긍휼에 대한 그 언어들이 어떤 이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청준이 부정적 시각으로 종교 즉, 기독교를 재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판단이다. 오히려 그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그는 기독교를 소재로 삼아, 진정한 종교와 신앙인의 자세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이청준 소설은 필자에게는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 즉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시리다. 소설을 두고 기독교 정신과 관련성을 찾아 연구하려다보니 성서와 견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선행연구를 참조하였으나 성서에 대한 지식이 미천하여 견강부회(牽强附會)한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연구자 책임이다. 작가가 성서를 원용하여 기술하는 것 중에는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돌이켜 볼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오히려 진지하게 수용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청준은 부분적인 것을 크게 확대하는 즉,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바로잡고자 하였다. 결국,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이나 논자의 주장 등은 기독교인에 대한 올바른 자세와 기독교 정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기독교인이라면 한번 쯤 읽어볼 수 있는 내용들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