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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첫발을 내딛듯, 태양과 더불어 펼쳐나가듯 6
가보(家寶), 김백봉부채춤 8 김백봉의 예술관 11 김백봉부채춤의 창작 배경과 발달 17 김백봉부채춤 군무의 형식 체계 29 김백봉부채춤 독무의 구성 원리와 무보 45 에필로그 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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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 세상에 탄생했을 때 지구상에 첫발을 내딛듯, 그리고 그 순간은 떠오르는 태양과 더불어 펼쳐나가듯, 그런 기분으로 부채춤을 춰 줬으면 좋겠다. --- p.7
내 춤을 추는 사람은 자기 일에 충실한 매일 아침의 태양처럼 그 춤에 성실하게 임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마음속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충만하면서 말이다. --- p.7 섬세한 맵시와 유연한 품세(品勢), 그리고 생기를 잃지 않는 생명력 이는 『김백봉부채춤』의 본(本)입니다. 부채의 움직임은 춤추는 사람의 혼을 담은 혈류와도 같아서 마치 심장의 연장선처럼 이어지고 견고한 발디딤새는 끓어오르는 감정과 호흡을 고스란히 담아 춤추는 부채의 기품과 격조를 지켜 갑니다. --- p.8 부채와 몸이 하나가 되는 창조적 결정체들, 관객과 교감하는 다양하고 섬세한 감정의 퍼레이드! --- p.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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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안병주 교수, ‘김백봉부채춤’ 무보(舞譜) 최초로 공개
부채춤은 한국 무용의 대명사이다. 방탄소년단(BTS)이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한 춤 역시 부채춤이다. 부채춤 하면 떠오르는 이가 바로 김백봉이다. 『김백봉부채춤』은 전설적인 무용가이자 ‘김백봉부채춤’의 창무자인 김백봉 춤사위를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찍어 기록한 무보집이다. 경희대 안병주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김백봉부채춤’ 무보를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이 책은 ‘김백봉부채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김백봉과 안병주의 무대공연 사진들도 수록되어 있다. 춤사위의 이름과 설명, 무대의 위치와 시선 방향, 서양식 기보 등이 표로 잘 정리되어 ‘김백봉부채춤’을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무용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김백봉은 스승 최승희의 남편인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한 뒤 1946년 최승희 부부와 함께 월북하였다. 김백봉은 평소 스승 최승희의 ‘무당춤’을 보면서 부채의 죽선이 갖는 멋과 향기에 깊이 매료되어 죽선의 움직임을 주제로 한 작품을 구성하고자 하였다. 남편 안제승은 김백봉에게 부채를 양손에 들고 추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스승 최승희에게 상의해 보지만 무신론적 유물 사회에서 샤머니즘에서 소재를 구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는 반대에 부딪쳤다. 그런데 김백봉의 착상은 최승희의 딸 안성희에게로 넘어가 이질의 부채춤으로 나오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스승과의 사이에 커다란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 평양에서 부채춤을 선보이지 못한 아쉬움에 대해 김백봉이 서문에서 말을 아낀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편과 함께 월남한 김백봉은 1954년 서울에서 ‘김백봉 제1회 작품발표회’를 열어 창작춤인 부채춤을 처음 선보였고, 이후 [Expo ’70], [1972 뮌헨 올림픽], [미건국(美建國) 200주년 축하 행사](1976) 등에서 부채춤을 선보이며 부채춤이 한국의 대표 춤으로 자리를 굳히는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김백봉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안무와 지도도 담당한 바 있다. ‘김백봉부채춤’은 1992년 명작무로 지정하였으며, 2014년에는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지구상에 첫발을 내딛듯 태양과 더불어 펼쳐나가듯 추는 춤 심장의 꽃, 김백봉부채춤 『김백봉부채춤』은 ‘김백봉부채춤’의 창무자인 김백봉이 직접 춤사위를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찍어 기록한 무보집이다.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에서는 “무용 역사의 새로운 정립과 한 시대를 살아가는 무용인의 작품을 후세에 길이 보전함으로써 소망스러운 무용의 발전과 민족 예술의 영원한 보전을 기한다”라는 기치 아래 1992년에 김백봉의 부채춤을 명작무로 지정하였으며, 2014년에는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면서 그동안 일반 명사로 불렸던 부채춤은 문화재 종목명인 ‘김백봉부채춤’으로 불리게 되었다. 김백봉은 스승 최승희의 남편인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한 뒤 1946년 최승희 부부와 함께 월북하였다. 김백봉은 평소 스승 최승희의 ‘무당춤’을 보면서 부채의 죽선이 갖는 멋과 향기에 깊이 매료되어 죽선의 움직임을 주제로 한 작품을 구성하고자 하였다. 남편 안제승은 김백봉에게 부채를 양손에 들고 추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스승 최승희에게 상의해 보지만 무신론적 유물 사회에서 샤머니즘에서 소재를 구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는 반대에 부딪쳤다. 그런데 김백봉의 착상은 최승희의 딸 안성희에게로 넘어가 이질의 부채춤으로 나오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스승과의 사이에 커다란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 평양에서 부채춤을 선보이지 못한 아쉬움에 대해 김백봉이 서문에서 말을 아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책은 김백봉이 직접 춤사위를 보여주는 사진과 함께 춤사위 이름과 설명, 무대의 위치와 시선 방향, 서양식 기보 등이 표로 잘 정리되어 한눈에 보기 편하게 구성되었다. 에필로그에는 김백봉과 안병주의 무대공연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김백봉부채춤’에 대한 정확한 사진 자료이자 아름다운 기록이며 ‘김백봉부채춤’을 연구하는 무용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