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제1편 유라시아 시대와 몽골의 헤게모니 제1장 몽골의 유라시아 시대 1. 몽골의 팍스 몽골리카 2. 몽골에 의한 동서양의 융합 3. 몽골의 헤게모니 소멸과 동양과 서양 분리 제2장 Braudel-Arrighi의 헤게모니 중심권역론 1. Braudel의 경제적 중심권역론 2. Arrighi의 세계 헤게모니 변동론 3. 유라시아에서 분리된 서양의 중심권역 제3장 세계적 헤게모니 중심권역의 이동 경로 1. Braudel의 중기적 역사 변동성 2. 헤게모니 중심권역에 대한 Braudel-Arrighi Model 3. 세계적 헤게모니의 이동 경로 뉴욕 갤러리1 뉴욕의 탄생 제2편 대서양 시대와 헤게모니 중심권역의 이동 제4장 대서양 시대를 준비한 베네치아공화국 1. 베네치아의 독립전쟁 2. 베네치아공화국의 탄생과 서유럽의 분열 3. 베네치아공화국의 개방적 바다 문명 4. 베네치아의 실용적 상업주의 5. 베네치아식 은행의 탄생 6. 근대공화국의 설계자, 베네치아의 3대 특성 제5장 동(東)대서양 시대의 네덜란드공화국 1. 네덜란드의 독립전쟁 2. 네덜란드 독립전쟁과 오렌지 가문 3. 암스테르담의 유대계 상인과 신용창출 4. 네덜란드공화국의 연합 동인도회사(VOC) 5. 연합 동인도회사(VOC)의 주요조직과 자본금 6. 대서양 서쪽에 세운 새로운 암스테르담, 뉴욕 제6장 서(西)대서양 시대의 미연방공화국 1. 미국의 독립전쟁 2. 미국 국가형성과정의 3대 위기 3. 미국의 빠른 산업화 과정 4. 뉴욕의 월스트리트 금융혁명 5. 미국의 헤게모니 중심권역 형성 6. 세계적 기축통화, 미국 달러의 소프트파워 뉴욕 갤러리2 뉴욕의 DNA 166 제3편 태평양 시대와 2050년의 헤게모니 중심권역 제7장 태평양 시대,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반도 1.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의 중심권역 이동 2. 태평양 시대의 헤게모니 중심권역 3. 헤게모니 중심권역의 이동조건 제8장 뉴욕에서 본 DMZ(비무장지대) 1. 한반도의 DMZ와 개경 2. 한반도 물류체계의 재구성 3. 한반도 DMZ의 플랫폼화 제9장 한반도 DMZ의 미래 VOC 설립계획 1. 과거의 VOC와 비교되는 미래의 VOC 2. 미래 VOC 설립계획의 3대 핵심 사항 3. 미래 VOC의 3대 목표 뉴욕 갤러리3 뉴욕의 현재와 미래 에필로그 |
김정훈의 다른 상품
|
뉴욕의 맨해튼은 물로 둘러싸인 단단한 돌 섬이다. 그 돌 섬 위에 높게 세워진 고층건물들은 세상을 들고 서 있는 아틀라스를 연상시킨다. 17세기 초, 비어있던 맨해튼 섬에는 몇몇 인디언 가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네덜란드 사람이 이곳에 와서 해안요새를 짓겠다고 하면서 인디언 부족장에게 약간의 돈과 물건을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맨해튼의 남쪽 공원에 가면 당시의 맨해튼을 사고파는 장면을 장식한 기념비를 찾아볼 수 있다.
기념비에 새겨진 연도는 1626년이고, 이때부터 맨해튼은 인디언의 추장에서 암스테르담 이민자의 손으로 넘겨졌고, 그곳에는 해안요새(Fort Amsterdam)가 세워졌다. 그런데 요새를 짓고 보니 맨해튼이 지닌 잠재적 조건 즉, 항구로서의 입지가 너무도 좋아서 점차 중계무역의 거점으로 바뀌게 되었다. 뉴암스테르담 항구(Port of New Amsterdam)로 바뀐 맨해튼은 아메리카-유럽-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삼각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이민 온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 암스테르담을 생각하며 이곳에 집들을 지었는데 지금도 남쪽 맨해튼에 가면 오래된 뉴암스테르담의 예쁜 박공장식 연립주택 단지가 보전되어 있다. 17세기 중엽, 네덜란드와 영국은 맨해튼을 사이에 두고 전쟁과 협상을 벌였는데 결국 맨해튼은 영국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뉴암스테르담의 맨해튼에서 ‘뉴욕의 맨해튼’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맨해튼에 가면 뉴암스테르담의 숨결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네덜란드의 브뢰켈렌은 뉴욕의 브루클린(Brooklyn)으로, 암스테르담 근처의 하를럼은 맨해튼의 할렘(Harlem)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철자와 발음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 뿌리를 따지면 맨해튼은 런던보다 암스테르담에서 찾는 것이 더 정확하다. 흔히 뉴욕 사람들을 가리켜 양키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로 암스테르담 출신의 ‘얀(Jan)’이 뉴욕에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마치 한국 사람들 사이에 김씨가 많은 것처럼 네덜란드 사람에는 ‘얀’이 많았고, 그래서 뉴욕에서는 길을 걷다가 뒤에서 “어이, 얀!”하고 부르면 대부분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뒤돌아섰다는 것이다. 뉴욕 사람들을 가리켜 대명사처럼 ‘양키스’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라고 하는데 진짜인지 아닌지 어쨌든, 영국계(프로테스탄트의 보스턴) 레드삭스와 네덜란드계(암스테르담 상인의 뉴욕) 양키스 야구팀이 시합을 벌이면, 그 날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영란(英蘭)전쟁을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18세기의 미국인들은 캐나다와 달리 영국 왕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네덜란드공화국과 비슷한 독립된 공화국이 되고 싶어 했다. 암스테르담 요새가 있던 뉴욕의 맨해튼 남쪽, 로어 맨해튼에서 보면 영국과 미국이 다를 수밖에 없는 그 차이점들을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뉴욕이 뉴암스테르담의 전통에서 비롯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례도 있는데 예컨대, 미국의 주식시장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영국의 침입에 대비하면서 1653년에 높이 세웠던 요새의 긴 장벽(Wall)이 영국과 벌인 독립전쟁 과정에서 사라졌고, 그래서 장벽이 사라진 곳에 거리(Street)가 생겨나면서 상인들을 중심으로 주식시장이 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1792년, 월스트리트 68번지의 무화과나무 아래에 모인 증권 중개인과 상인들은 버튼우드(Buttonwood) 협정을 맺고, 이를 계기로 월스트리트는 금융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된다. 정부의 개입이나 간섭은 거의 없었기에 민간에 의해서 자유롭게 작동되는 ‘월스트리트(Wall Street)’가 탄생한 것이다. 좁다란 월스트리트에 뉴욕증권거래소까지 세워지면서 뉴욕의 맨해튼은 북미대륙의 금융중심지로 발전했고, 19세기의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20세기 초부터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는 세계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런데 약 백여 년이 지나면서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도 새로운 둥지가 필요하고, 뉴욕만을 고집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2011년에 몰아친 ‘OWS(Occupy Wall Street)’ 시위는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예견하는 듯했고, 새로운 방향성이 절실히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20세기 초, 런던이 뉴욕에 세계금융의 중심지 지위를 스스로 넘겼던 것처럼, 이제 뉴욕도 자신의 지위를 넘길 시점이 멀지 않았음을 인식하고 있음이다. --- 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