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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그래도 10월 플라타너스 가을을 닮은 감 소담한 오후 장맛비 여름 침묵 봄 4월 살아간다는 일은 비 그친 후 진초록에서 진녹색으로 기억 거리 태풍 뙤약볕 2부 길 잡초 품어 주는 시간 텃밭 자갈치시장 오복식당 평상 환상적 현실 낡은 옷 청 보리밭 첫 기억 삼나무 만리향 이나무 나이테 여름 나무 우연 감나무 향나무 겨울나무 3부 환한 빛 적막 시행착오 오늘에서야 그 곳으로 간다 비행기 종교 산책 참는다 자동차 순례자 회전목마 바라본다 외할머니 입추 풀벌레 소리 4부 첫 맥주 한 모금 연 날리는 할아버지 통영 다도해 혜안 글쓰기 영화관 에코델타시티 달빛 애드벌룬 프린트 저녁 제주 동백 한라산 울릉도 해녀의 집 해녀 해설 선적 상상력으로 길어 올린 성찰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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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가르는 후끈한 열기
장맛비 뿌리고 지나간다 우리들의 삶도 예상치 못한 장맛비처럼 갑자기 내렸다 뚝- 그친다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 사실의 완전함을 이해하기까지 고통이 흘러가야 한다 단순한 삶이란 존재의 무거움 지니고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오늘의 장맛비처럼 무심하게 지나가 버린다 --- 「장맛비」 중에서 하찮은 번뇌 내려놓고 얽매임 없이 바라본다 차분하고 정갈한 자리 침묵으로 내려앉는다 의식을 한 점에 모으고 호흡을 가지런히 정제한다 욕망과 갈등이 비워지고 고요함으로 빠져든다 참된 고요 속에서 비로소 침묵과 마주한다 육체와 정신이 합일되며 침묵은 물처럼 오늘로 흐른다 --- 「침묵」 중에서 하늘하늘 거리는 봄바람 안고 상큼한 향기 거리에 가득하다 가로수에 새들이 지저귀며 타인의 흔적들이 날아오른다 견뎌 내야만 하는 절절한 아픔 잠시 거리에 내려놓는다 하루를 산다는 일 일억 년 시간처럼 무겁고 힘겹다 무한함이 일렁이는 거리에 시간이 저녁으로 내려앉는다 --- 「거리」 중에서 장화에 모자 쓴 어색한 농부 서툰 몸짓과 현란한 손놀림으로 대지와 심호흡을 공유한다 대장간에서 걸어나온 호미 유연함으로 텃밭에 흐르고 대지를 파고들며 잡초를 뽑는다 삶이란 세월의 텃밭에서 무성하게 자란 잡초 걷어 내며 하나씩 차분하게 정리하고 고르는 일이다 진정한 의미를 발하는 추억을 세월에 흘러 보내며 잡초는 오늘도 바스락거리며 분주하게 텃밭에서 자란다 --- 「잡초」 중에서 희망이라는 깃발을 마음에 담고 하루에도 절망과 기쁨을 공유한다 인생이 우연임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운명에도 우연의 법칙이 작용하면서 가까이에 있음을 예전엔 알지 못했다 살아가면 갈수록 고달픈 아리랑고개를 오늘도 넘는다 견고하고 강인하면 할수록 깨어지고 고통받는 번뇌의 순간 우연은 언제나 최고의 조력자 오늘에서야 눈물 통해 그 사실을 알았다 --- 「우연」 중에서 내일이 오늘보다 수월한 분량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절절한 욕심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한 해가 지나면 편안해지리라 열심히 지난해를 넘겨 보았지만 효력이 없음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안다고 내면으로 외치면서도 다시금 내일은 평온해지길 바라는 미련 버리지 못함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살아가는 일은 휘몰아치는 폭풍우인데 그래도 잔잔해지길 바라는 허망함의 실체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 「오늘에서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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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적(禪的) 상상력으로 길어 올린 성찰의 시
양혜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진초록에서 진녹색으로』는 삶의 존재론적 사유가 녹아든 선적(禪的) 상상력으로 길어 올린 성찰의 시가 주를 이룬다. 달리 말하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안겨 주는 성찰의 시가 많다는 의미다.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가 “최상의 깨달음이란 단지 무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고통으로부터, 고뇌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했듯, 이 시집에서도 고통과 고뇌(번뇌)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시편이 제법 많다. “사실의 완전함을 이해하기까지/ 고통이 흘러가야 한다”(「장맛비」), “살아간다는 일은/ 고통의 협곡을 건너/ 아픔을 견뎌 내는/ 고단하고도 힘든 여정”(「살아간다는 일은」), “한 고비 넘기며 또 다른 고통의 연속”(「회전목마」), “녹아내리는 절절한 고통을 건너면/ 모든 일에 흔들림 없는”(「혜안」), “하찮은 번뇌 내려놓고/ 얽매임 없이 바라본다”(「침묵」), “잡초처럼 자란/ 헛된 번뇌 뽑아내고”(「텃밭」), “번뇌와 고민을 붙잡고/ 견뎌 내며 사는 일이 운명이다”(「산책」) 등이다. 삶을 성찰하거나 반성적 태도를 취한 시편을 예를 든다. 살아간다는 일은/ 끝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다”(「시행착오」)라며 매일매일 착오와 오류의 연속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성찰한다. “간절히 바라는 절절한 욕심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오늘에서야 알았다”(「오늘에서야」)라며” 욕심을 경계해야 함을 깨닫고 반성적 태도를 취한다. 그러면서 삶을 다각도로 정의하고 있다. 삶이란 “나무의 나이테처럼/ 눈물과 고뇌의 흔적이다”(「나이테」)고 정의하기도 하고,, “세월의 텃밭에서/ 무성하게 자란 잡초 걷어 내며/ 하나씩 차분하게/ 정리하고 고르는 일이다”(「잡초」)고 정의하기도 하고, “살아간다는 일은/ 순응하는 원리를/ 묵묵히 배워나는/ 끝없는 인간의 숙명”(「살아간다는 일은」)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또한, 인생이란 “휘몰아치는 폭풍우”이면서 “허망함”(「오늘에서야」)이고, “모든 것은 내려놓아야/ 진정한 본질을 알 수 있다”(「감나무」)며 ‘인생’은 거친 폭풍우와 같고, 허망하기도 하지만,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한 삶이란 “존재의 무거움 지니고/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오늘의 장맛비처럼 무심하게 지나가 버린다”(「장맛비」)며 존재론적인 인식 과정을 통한 형이상학적 사유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 시집에서 양 시인은 선문답을 하듯 선적 상상력을 수렴하여 “‘인생’ 혹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진정한 ‘내려놓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내려놓음’이라는 묵시적 표현이 시집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줄곧 관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