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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탯자리의 옛 추억
평다리에서 태어나다 (1943~1948) 전쟁통에 시작된 국민학교 (1949~1955) 세상으로 나아가다 (1956~1961) 첫 발령과 군대 생활 (1962~1968) 2부 교사로서의 소명을 살다 함평: 우리들은 어린 음악대 (1968~1977) 섬 학교에서 꿈을 꾸다 (1978~1981)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버텨온 세월 (1982~1988) 오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 (1989~2003) 꽃망울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2004~2006) 3부 퇴직 이후의 삶 색소폰 입문기 봄날은 간다 고향 집에 가면 나는 농부가 된다 4부 내가 사랑한 사람들 하나님 감사합니다 ‘잿불처럼’ 가신 아버지 내가 쓰는 주례사 아들딸에게 전하는 자녀교육의 6가지 원칙 5부 아버지를 思하다 잔잔한 호수 같은 나의 아버지 저는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딸입니다 아낌없이 주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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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증조할머니가 해주신 무김치가 너무도 맛있었다. 겨울이면 무를 깍두기 모양의 사각형으로 썰어, 고춧가루와 참기름으로 무쳐 주셨다. 겨울 무의 달콤함과 무 특유의 사각거림이 양념에 배어든 오묘한 매콤한 맛이 나를 감동하게 했다. 또 할머니는 가족 사랑이 남달랐다. 할머니는 집안 식구들 생일이 다가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시루에 떡을 쪄서 촛불을 켠 후 가족들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였다. 나를 위한 기원이 특별히 기억난다.
“천지신명님, 경주 정씨 가문의 우리 용대 잘되게 해주십시오.” --- p.24 큰딸 출산을 지켜보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철민의 출산 때는 모든 일을 내가 다 했다. 조산원이나 양호 선생님, 춘미 어머니의 도움 없이 사택에서 내가 다했다. 먼저 방바닥에 비닐을 깔고 아내가 분만을 잘할 수 있도록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가위, 지혈감자 등을 물로 팔팔 끓여 소독했다. 곤로에 물을 끓여 뜨거운 물을 만들었다. 애기가 “응애” 하고 세상에 태어났다. 태를 실로 묶어 아이 배꼽과 태를 분리했다. 아내를 한쪽 방에 대기하게 하고 어지럽혀져 있던 출산의 현장을 금방 정리했다. 미역국을 끓여서 아내에게 주었다. 저녁 내내 빨래를 했다. --- p.71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색소폰의 소리가 늘 귀에 맴돌았다. 그 소리가 두려움을 이겼다. 색소폰을 하기로 했다. 색소폰의 길로 들어가야 할 인연이었다. 폐에 좋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실제 색소폰을 연주하니, 폐활량이 더 좋아져서 폐가 더 강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때의 생각은 ‘기우’였다. 가끔 기우에 주눅 들어 모험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즐거움의 세계를 지레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 p.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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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_정용대 기억의책』은 딸 정은영 님이 아버지 정용대 님을 인터뷰하여 그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정은영 님은 대면, 서면, 전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기록하였고, 아버지를 깊이 이해하고자 아버지의 일상에 동참하고 아버지와 같이 여행을 가는 등 많은 시간을 함께하였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되짚어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정은영 님은 1년여 가까이 아버지 정용대 님의 삶을,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딸과 아버지의 아름다운 동행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봄날은 간다’는 삶의 변화를 드러낸다.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간다.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간다.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간다. 그리고 봄이 오고 봄이 간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사람의 삶도 자연의 일부분이라 활짝 피는 시기도 있는가 하면 스러지는 시간도 있다. 인생이 활짝 피는 순간의 기쁨과 환희도 살맛 나게 하지만, 스러지는 순간도 덤덤하게 수용하자는 생각에서 이 제목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렇게 담백하게, 담담하게 살아낼 것이다. - 정용대, ‘내 삶을 기록하며’ 중에서 이 책의 주인공, 나의 아버지 정용대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애로운 사람이다. 아버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감동이었다. 늘 투명한 삶을 남겼다. 들여다보면 훤히 알 수 있는 신뢰성 있고 예측 가능한 삶을 사셨다. 또한 교사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친구로서 ‘자애로움’이 무엇인지 보여준 분이다. 소명을 인식하고 자신의 소명을 위해 즐겁게 살아오신 분이다. 행복한 교사, 행복한 연주자, 행복한 아버지. 이버지 정용대는 자신의 일에 전념하며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타인과 교감하는 사람이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의 원천은 ‘나도 20년 후에 저런 눈빛을 지닐 수 있을까?’이다. 아버지의 자비와 물 흐르듯 사는 삶의 나이테를 나이만 든다고 흉내 낼 수 있을까? 나는 ‘그저’재미있는 할머니가 되기로 했다. 아버지의 노년을 닮기로 했다. 내 노년의 목표다. - 정은영, ‘아버지의 삶을 기록하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