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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 책이 정당화되는 곳 제1장 미네르바 성냥개비 하나 아드리아노 소프리에게 보낸 지성인의 모습에 대한 뜨거운 고찰 제2장 리스본에서의 대화 베르나르 코망이 안토니오 타부키와 논의를 계속하려고 시도하는 곳 제3장 성냥개비가 다 탈 때까지 바람이 불 때 켜는 성냥과 모호함에 대해 논의하는 곳 아드리아노 소프리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 두 통 질문을 받은 자가 정식으로 이 책 『플라톤의 위염』에 서면으로 답하는 곳 잠정적인 에필로그 이 책의 주제 중 하나가 혹시라도 다른 언어로 계속 다루어지도록 맡기면서 논의를 그만하기로 결정하는 곳, 그리고 특히 소프리, 봄프레시, 피에트로스테파니 소송의 신속한 재심을 희망하는 곳 이탈리아 편집자의 메모 안토니오 타부키 연보 옮긴이의 말 |
Antonio Tabuc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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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건은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판결의 예일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방대한 차원을 띠고 있다. 그것은 정말 프로이트를 상기시키는 당혹스러운 것이며, 호프만의 소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나온 ‘기분 나쁜 것Unheimlich’입니다.--- p.32
솔직히 말해 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 그러니까 어떤 일에서 지나치게 완벽하고 매끄러운 논리는 얼음판처럼 그 위에서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할 때의 비트겐슈타인을 더 선호합니다. 지성인의 임무는(나는 예술가의 임무라고 고집하고 싶습니다만) 바로 그런 것입니다, 친애하는 아드리아노 소프리 씨. 그러니까 위염 치료법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플라톤을 비난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지성인의 ‘기능’입니다.--- p.36 “집이 불타고 있을 때, 지성인은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단지 상식 있는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혹시 자기가 특별한 임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며, 그에게 호소하는 사람은 소방서 전화번호를 잊어버린 히스테리 환자이다.” 분명 ‘소방서 항목 참조’는 문제를 즉각 해결할 수 있고 분명히 소방서라는 기관에 대한 편안한 신뢰를 토대로 하는 아주 유용하고 실용적인 제안입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유익할 수도 있는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요? 예를 들어 만약 소방관들이 파업중이라면? 만약 소방관들이 유사하지만 경쟁적인 다른 어떤 기관, 가령 화재 감시원들이라 부르는 기관과 경쟁관계에 있다면? 그리고 농담으로 공상과학소설 같은 가설이지만, 만약 소방관들이 브래드베리와 트뤼포의 『화씨 451』의 소방관들이라면? 어쨌든 소방관들의 호스가 효율적이라고 해도 화재의 원인에 대한 문제가 남습니다. 혹시 누전일까요? 입주민의 부주의? 알 수 없는 원인? 물론 그것은 효율적이고 유능하다고 여겨지는 조사관들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조사 결과에서 화재 발생 지점에 점화장치가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혹이 남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서 기록으로 남길까요?--- pp.49-50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지성을 어두운 독방에 내버려둔 채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려 살아간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하여 사방에서 동물적 성향이 고개를 쳐들고 삶의 가치가 뒤집어지기도 한다.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타부키 같은 사람들의 호소가 광야의 외롭고 공허한 외침으로 남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 닥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일수록 겨울잠에 빠진 우리의 지성을 깨워야 한다. --- p.123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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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타부키, 에코의 지성인 담론에 맞불을 놓다!
이탈리아에서 잠깐 불붙었다 사그라지고 만 ‘소프리 사건’ 담론에 불씨를 놓기 위해 몇 번이고 성냥을 긋는 플라토닉 지성의 향연, 타부키의 속 쓰린 시대 성찰. “아드리아노 소프리, 우리를 갈라놓는 벽돌로 만들어진 벽들이 있지만, 우리 둘이 함께 살아가는 ‘시간’은 똑같습니다. 나는 오늘, 1997년 4월의 어느 날, 여기 있습니다. 나에게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세상은 하나의 감옥일 수 있지요. 빛을 밝히기도 쉽지 않고, 성냥 한 개비의 희미한 불빛에 만족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불빛을 켜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미네르바 성냥개비 하나라도 말입니다.” -안토니오 타부키 이 지성인 담론의 배경이 된 폰타나 광장 학살사건과 책의 출간 배경 안토니오 타부키가 움베르토 에코의 한 기사에 대해 쓴 반박 기고문에서 시작한 이 책은, 1969년부터 2012년까지 40여 년 이상을 끌고온 이탈리아의 한 사건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19세기말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사건은, 당시 수없는 테러와 정치적 갈등이 심화된 이탈리아에서 장기간 회자되고 논박되었으나, 실로 제대로 된 지성계의 담론과 성찰을 이끌어내지는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말미에 적힌 공판기록을 요약한 「편집자의 메모」에서 보듯이, 이 사건의 확산과정은 이탈리아의 정치-언론-법의 부패상황을 한눈에 보여준다. 즉 1969년 수많은 사상자를 낸 은행 폭발사고에서 밀라노 경찰서로 불법연행된 한 무정부주의자 철도원의 추락사를 두고(다리오 포의 1970년작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역시 이 사건에서 영향받았다), 당시 극좌파운동단체였던 ‘로타 콘티누아’와 밀라노 경찰 간의 대립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살해 책임자로 비난받던 루이지 칼라브레시 경찰국장이 귀가중 살해당하면서, 범인 색출에 있어 ‘로타 콘티누아’의 리더 아드리아노 소프리, 지도자 중 하나인 피에트로스테파니, 투사 중 하나인 봄프레시가 붙잡혀 22년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 고소와 소송의 맞대결에서 재판결과가 번복되다가 1997년 다시 22년 징역형 선고가 내려진 그해, 움베르토 에코는 『레스프레소』에 연재하던 ‘미네르바 성냥갑’ 칼럼에 지성인의 의무에 관한 글을 발표하고 여기서 타부키가 감옥에 있던 소프리에게 보내는 편지문 형식의 반박기사를 내게 된 것이다. 이 서신 교환과 이를 타부키 작품 프랑스어판 번역자이자 스위스 작가인 베르나르 코망이 프랑스에서 먼저 책을 내자고 제안했고, 그리하여 정작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이후에 이탈리아판이 나온다. 유럽 지성계가 한눈에 잡히는, 촌철살인의 재담으로 엮은 타부키의 지성인론 이 ‘소프리 사건’ 과정에서 지성인 담론과 관련하여 유럽 지성계의 성좌가 나열되는 것은 또하나의 향연이다. 폰타나 광장 폭발사건에 처음부터 주목해 이를 ‘학살’로 명명하고 글을 쓴 파솔리니, 소프리를 지지했던 알베르토 모라비아, 카를로 진즈부르그(그는 이 사건에 대한 치밀한 조사를 기반으로 『판사와 역사가』를 집필한다), 이후에 재심을 요구하며 이 담론에 합류한 움베르토 에코를 비롯해, 헤르만 브로흐, 앙드레 브르통, 발터 벤야민, 모리스 블랑쇼,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마리아 삼브라노 등을 적절히 인용하며 타부키는 이 시대의 지성인(작가)의 창조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다시 말해 예술가와 작가는 집에 불이 났을 때 소방서에 전화하거나 수구파 시장들의 손자들이 전철을 밟지 않도록 교범을 쓰는 것 정도라는 에코식의 냉담한 논리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 행위를 바꾸고 해석의 지평을 여는 창조적 실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파솔리니가 말한 대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추적하려고 노력하고, 글로 쓰는 모든 것을 알려고 노력하고, 오래된 사건마저도 조직해보고자 노력하고, 총체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치적 구도의 무질서하고 단편적인 조각을 함께 모아보려고 노력하고, 자의성과 광기와 신비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논리를 다시 세우는 것을 모두 상상해보려고 노력하는 작가”여야 함을 강조하며, 타부키의 유쾌한 재담으로 꾸려진 이 성실한 전언들은 꺼질 듯 말 듯 미네르바 성냥개비 불꽃처럼 여기 독자들 앞에 흔들리고 있다. 이는 이탈리아의 지엽적 사건을 다룬 일화가 아니라, 아마도 세계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회자되어야 할 속 쓰린 궁극의 질문이자 시대성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