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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의전설
서기 65년의 일이다. 왕은 한밤중에 금성 서쪽 시림이라는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신하를 보내 이를 살피게 했다. 사자가 숲에 이르러 보니 금빛으로 된 조그마한 궤짝 하나가 나뭇가지에 달려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으므로 돌아와 그 사실을 아뢰었다. 이에 왕은 사람을 시켜 그 궤짝을 열어보니 속에 총명하게 생긴 어린 사내아이 한 명이 들어있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이름은 ‘알지’라 하고 금궤 속에서 나왔다 하여 아이의 성 김金씨라 하였으며, 이때부터 시림을 고쳐 계림이라 부르고 또한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p.24) 오릉 신라 초기 때의 왕릉으로 신라 시조왕 혁거세와 시조왕의 비 알영을 비롯하여 제2대왕 남해차차웅, 제3대왕 유리이사금 그리고 제 5대왕 파사이사금 등 모두 4왕 1비의 왕릉이다. 경내 57,000여 평의 면적에 조흥문을 중심으로 북편에 수백주의 울창한 소나무들로 둘러 쌓여 있으며 숭의문을 입구로 능침이 보인다. 오릉 주변의 소나무들은 마치 공읍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먼 옛날 위대한 신라천년의 찬란했던 문화를 이룩하는데 그 초석이 된 성인의 높으신 숭덕을 받들 듯이 푸르름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매년 추분으로 전국의 성손들이 이곳에 모여 한 핏줄 한 형제로서 시조왕 능향제를 봉향하고 뜨거운 혈연의 정을 다지는 행사를 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