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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수유리 사람들

수유리 사람들 13
연꽃 이야기 14
떠돌이 여행자 16
살아내야죠 17
봄 사랑꾼 18
건어물상 여주인 20
마지막 잎새 22
담쟁이 23
옛 추억 찾아 24
노란대문집 26
깜박깜박 28
보광사 영산홍 30
엎드려 조아리는 31
노년 풍경 32
도라지꽃 34
오월 소묘 35
화려한 변신 36
세월은 흐르고 38

2부 떠돌이 까치

바람 41
용눈이오름 전설 42
지리산 연곡사 44
도리사桃李寺 46
고양이 보살 47
영남루 48
인생 결산서 49
북촌을 다녀와서 50
외딴방에서 52
용주사를 돌아보며 54
마카오 여행 56
바이칼 호수 58
오사카성 60
가슴속 아이 하나 62
떠돌이 까치 64
단추 전시회 66
소설을 엮으며 68
보랏빛 여행 가방 70

3부 어찌 아셨을까

엄마의 얼굴 73
절구 74
어찌 아셨을까 76
아버님 전 상서 78
풍덕천에 가면 80
하피첩 82
상상화 그리기 84
마술 상자 85
고택을 찾아 86
한 줌의 무게 88
핫라인 90
골고다 여인 91
무릎 꿇는 어머니 92
어느 가장의 하루 94
입동 스케치 96
빈방 98 반지
100 자벌레 101

4부 벌서는 소나무

벌서는 소나무 105
곳간지기의 변 106
북한산을 오르며 108
가을 산길 110
별밭을 지나며 111
문화의 거리에서 112
달항아리 114
시의 여정 115
봄맞이 116
호박꽃 117
핸드폰 118
우이경전철 시승기 120
갈빛 추억 122
부처님 전 상서 123
지공여사 입문기 126
여고 동창생 128
차오름에 앉아 130
독백 132

해설│ 133 민들레가 피워 올린 시 한 송이_임문혁(시인·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서울출생, 창덕여자 고등학교,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서울특별시 중등교장 역임 산림교육전문가, 수필가, 시인, 시조시인 《한국수필》(1991) 수필 등단, 《공무원문학》(2018) 시 등단 (사)한국시조협회 《시조사랑》( 2018) 등단 수필집 『꼬리표 인생』, 시집 『석류처럼 툭』 수상: 홍조근정훈장, 도봉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사)한국시조협회 시조문학 작품상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사)한국시조협회 감사, 도봉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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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62쪽 | 125*203*20mm
ISBN13
9788994645582

출판사 리뷰

민들레가 피워 올린 시 한 송이
임문혁(시인·문학평론가)


시는 사랑이다. 삶을 향한 사랑이요, 사람을 향한 사 랑이다. 자연을 향한 사랑이요, 만물을 향한 사랑이다. 시는 꽃 피움이다. 사랑으로 피워 올리는 꽃 피움이다. 우리가 시를 읽는 것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요, 우리 가 시를 쓰는 것도 아름다운 삶을 사랑으로 가꾸고 싶 기 때문이다. 이순향 시인은 이 시집의 서시에서, 시꽃 한 송이 피 우고 싶다고 했다. 장미꽃처럼 화려한 꽃이 아니라, 담 벼락 옆에 살포시 미소 짓는 민들레처럼 소박하고 진 실한 그런 꽃을 피우고 싶다고 했다. 이순향 시인은 민들레 같은 시인이다. 굽이굽이 살아 온 이야기를 푹 삭혀,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는 그런 시 꽃을 피워 올 려 여기 알뜰히 묶어 놓았다.

이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인의 사랑이 관 심을 둔 네 분야를 향하고 있다. 제1부 ‘수유리 사람들’은 이웃을 향한 사랑이요. 제2부 ‘떠돌이 까치’는 역사 문화 유적에 대한 사랑 이요, 제3부 ‘어찌 아셨을까’는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사 랑이다. 제4부 ‘벌서는 소나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 이 야기다.

1. 수유리 사람들

시인은 북한산 자락 수유리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 다. 공기가 맑고 풍광이 수려한 수유리는 문자 그대로 물이 사랑처럼 철철 흘러넘치는 마을인데, 시인을 비롯 한 이 마을 사람들은 산이 좋아 물소리에 반해 이곳에 눌러앉아 살고 있다. 시 「수유리 사람들」 수유리 사람 들은 새처럼 물처럼 사는 사람들이라서 사랑 많고 인 정이 많다. 그중에서도 시인은, 옷 수선을 하는 연변 아 가씨, 차량 이동 과일 장수, 소년 가장, 건어물상 여주인, 해장국집에 앉아 있는 노인들과 같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수유리 사람
다 된 연변 아가씨 하루에도 수십 송이 연꽃을 피워 올린다 한 평 남짓 월세 뻘밭 옷조각에 매달려 치매 엄마, 딸린 가족들 책임지는 가장 보풀보풀 떠도는 먼지 해어지고 유행 지난 옷에서 연꽃 한 송이씩 피워 올린다 재봉틀에 밤낮없이 붙어 있는 딱정벌레 만주가 보고픈 할아버지 따라갔다가 먹고 살려고 연변에서 왔다는 그녀 날로날로 팔다리 쑤시고 눈도 침침 약봉지 수두룩 쌓여가지만 제 살 같은 꽃잎 한 장 한 장 매만지며 연밥 꿈꾸는 연변 아가씨
- 「연꽃 이야기」 전문

연변에서 온 여자는 옷 수선을 한다. 먹고 살려고 만 주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데, 딸린 가족이 많고 치매가 있는 엄마를 모시고 있다. 힘든 일에 본인 건강도 좋지 않아 팔다리가 쑤시고 눈도 침침하다. 날로 약봉지가 쌓여간다. 그렇지만 한 평 남짓한 좁은 월세 가게에서 딱정벌레처럼 붙어 앉아 재봉틀을 돌린다. 척박한 일터를 뻘밭으로, 수선하여 옷을 고쳐내는 것을 연꽃을 피 워내는 것으로 비유한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려운 이웃의 삶을 따뜻한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마음도 연꽃을 닮았다.

솔밭 입구 붉은 천으로 지붕 삼은 트럭 한 대 자유인 떠돌이 여행자 조 씨가 왔구나 장돌뱅이 아버진 어디에 박혀 있는지 기다리다 지친 엄마는 친정살이하러 가다 장항선에서 그를 낳았단다 즉석에서 얻은 이름이 여행이라나 어차피 인생은 바람이라며 전국 발 닿는 곳마다 고향 삼는다는 자연인 한때는 제법 큰 사업체의 주인이었으나 무리한 확장으로 파산하여 토마토 한 알에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짐차 같은 풍채에 붉고 훤한 얼굴 대한민국 안 가 본 데 없는 상남자라며 어여쁜 여자 보면 입이 헤벌쭉
- 「떠돌이 여행자」 전문

트럭에 토마토와 같은 야채 과일을 싣고 다니며 파 는 행상 노총각이 주인공이다. 한때는 제법 큰 사업체 의 주인이었으나 파산하여 과일 행상으로 전락한 사연 이 드러난다. 아버지도 장돌뱅이였고, 어머니가 기차 안에서 낳았다는 출생과 이름을 지어 받게 된 사연도 드러난다. 그러나 떠돌이 여행자 조 씨는 구김살이 없 다. 어차피 인생은 바람이라며 전국 발 닿는 곳마다 고 향 삼아 자연인으로 산다. 짐차 같은 커다란 풍채에 붉 고 환한 얼굴로 헤벌쭉 웃는다. 어려운 이웃을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마 음이 느껴진다. 소탈하고 긍정적이며 빙그레 웃음이 지 어지는 시이다.

황송하게도 교자상만 한 장미 조각을 신분증인 양 찍고 들어서야 하는 장미원시장 그 입구 건어물 해륙상회 여주인은 오늘도 꼭두새벽부터 가게를 지킨다 바다 한 모퉁이를 자식처럼 끼고 앉아 한때 남편이 머슴인 양 아내를 떠받들어 시장통에서 시샘을 받았던 여인 그 남편은 고기 잡으러 가 영영 돌아오지 않고 맞은편 새로 생긴 건어물상 잉꼬부부가 염장 지르는지 요사이는 희던 얼굴 검버섯 솟아나고 다리까지 절름거리는 할매꽃 가끔 그녀는 명태와 가자미 잔멸치 등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그들도 바다에서 둥둥 떠다녔던 옛추억을 그리워하겠지
안주인이 남편을 보고파하듯
- 「건어물상 여주인」 전문

그토록 믿음직스럽고 든든했던 남편을 여의고, 꼭두새벽부터 나와서 건어물상을 지키는 여자가 있다. 이 제는 나이가 들어 희던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다리까지 절름거린다. 명태와 가자미, 잔멸치 등을 어루만지며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는 여자.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가게를 지키는 그 건어물상 여주인을 바라보는 연민의 정이 감정 이입 되어 파도처럼 일렁인다. 명태와 가자미, 잔 멸치들도 한때는 펄펄 살아서 바 다를 둥둥 떠다녔던 옛 추억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마 음의 헤아림이 곡진하다. 좁은 가게 안의 여주인의 모 습을 바다 한 모퉁이를 끼고 앉은 것으로 읽어내는 그 시선이 깊고 따스하다.

그런가 하면, 힘든 일에 척추를 다친 소년 가장의 이 야기 「살아내야죠」 건망증이 날로 심해지는 부부의 이 야기 「깜박깜박」 해장국집 평상에 앉아 있는 낡은 집처 럼 늙어버린 노인들의 이야기 「노년풍경」도 있다. 시인의 시선은 수유리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동주택으로 개축되고, 허물 어지는 옛집 「노란대문집」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정 도 듬뿍 들어 있다.

막다른 골목 청기와 노란대문집
빗살무늬 사이로 구부러진 소나무 줄기 슬쩍 보인다 은행나뭇길 주택들이 세대교체 되는 듯 나날이 공동주택이 들어서 작은 성 같은 최 선생 집도 포클레인에 밀려 나가고 이젠 막다른 골목 노란대문집 집안 칸칸이 박혀 있는 젊은 날의 그림자 묵은 정 떨치기 아쉬운 듯 돌담 위 능소화도 툭툭 떨어지고
- 「노란대문집」 전문

북한산 입구
해장국집 평상엔 움직이는 고택 여러 채가 앉아 있다 차마고도보다 더 구불구불한 길 걸어온 팔순 어르신들 오늘도 식당에서 해장국이 나오면 저마다 비닐을 꺼내 조금씩 덜어내고 먹는다

비닐봉지 속 해장국은 거동이 불편한 친구들의 별식거리 자갈길 지나 내리막길 부끄러움 없는 인정이 동행길 꽃으로 피어난다
- 「노년 풍경」 전문

2. 떠돌이 까치

이순향 시인은 평소에 역사 유적지 답사를 많이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3부 ‘떠돌이 까치’에 수록한 시들은 이렇게 답사 탐방한 유적지에서 얻은 시들이 대부분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 기행에서 얻은 시들도 있다.

무엇이 그들을 휘저었을까 봄이면 꽃가지 어루만지고 한여름 언뜻언뜻 비치던 잔물결 참고 참다 폭풍 되어 일어섰다 소처럼 일만 하던 침묵 밀려오는 분노 온몸을 떤다
한바탕 휩쓸고 간 들판 서로 어깨 걸며 뿌리 내리고 있는 질경이들
- 「바람」 전문

‘동학혁명을 기리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시는 동학혁명 유적지를 돌아보고 쓴 시이다. 소처럼 일만 하던 선량한 농민들이 참다 참다 폭풍이 되어 일어섰던 뜨거운 혁명의 불씨를 떠올리며 무엇이 그들을 휘저었을까, 그 진실을 묻고 있다. 한바탕 휩쓸고 간 들판 에는 생명력 질긴 민초들을 상징하는 질경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아낸다.

그분은 오랜 옛날에도 외딴방 앵두나무처럼 예쁜 소녀 일찍이 궁정에서 온갖 허드렛일 하던 부엌데기 무수리 어느 날 기적처럼 스쳐 간 바람 성은을 입어 치마를 뒤집어 입었다 그분의 아들 영조 엄마의 삶 못내 밟혀 경복궁 후원에 사당 짓고 내삼문으로 열흘에 한 번씩 문안드리러 갔지 냉천에서 몸과 맘 가지런히 그 효심은 자하연에 새록새록 모였다
33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보인 육상궁 아들은 지존이건만 행운은 잠깐 일생 후원이란 왕조의 그늘을 지켜야 했던 외딴방
- 「외딴방에서」 전문

경복궁 후원에 가면 ‘육상궁’이 있다. 육상궁은 숙종 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육상궁을 ‘칠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것 은 육상궁을 비롯한 여섯 채의 사당이 같이 있었는데, 그 사당은 역대 왕들의 친모로서 왕비에 오르지 못한 7인의 신위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숙빈 최씨는 아들 영조가 지존의 자리에 있었지만, 본인은 무수리 출신이었기 때문에 후원의 외딴방을 지 켜야 했다. 영조는 재위 기간에 육상궁을 200여 회 방문했다고 한다. 부재 시에도 모후를 지켜보기 위해 어 진(임금의 초상화)까지 걸어 두었다고 하니, 어머니 품 을 그리는 마음은 외로운 자리에 오른 왕에게도 그지없었을 것이다. 이 시는 경복궁 후원에 있는 육상궁을 가보고, 한 여 인의 파란 많았던 삶을 떠올리며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시이다.

그의 열정은 제주의 젖가슴 용눈이오름이 되었나 보다 은빛 억새물결 따라 섬으로 들어온 댕기머리 젊은이 제주도 속살이 좋아 산과 바다 야인 되어 가난한 목숨도 행복이라 살더니 굳어가는 육신의 불치병에도 용눈이 언덕에 끌려 신들린 듯 혼을 풀어 놓았다 그가 떠난 이즈음 버거운 발자국마다 피어난 억새꽃 바람결에 그 이름 불러본다
두모악* 감나무 아래 홀로 서성거리니 전생에도 이생에서도 제주 사랑이었는지 용눈이 오름에 전설로 서 있다
- 「용눈이오름 전설」 전문

제주도에 가면 ‘두모악’이라는 갤러리가 있다. 작고 한 사진작가 김영갑의 갤러리이다. 김영갑은 제주도 와 오름을 미치도록 사랑하여 제주도 사진만 찍은 작 가다. 특별히 오름 사진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울린다. 일생 사진만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다간 한 예술가의 숭고한 예술혼과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제주의 비경 이 살아 숨쉬고 있다. 시를 쓰는 시인으로 예술적 영감 이 공명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문화 유적지를 답사하다 보면 자연히 천년 고찰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리산 연곡사라든지 구미 도 리사, 칠갑산 장곡사, 수원 화산 아래 용주사 등이 등장한다.

연꽃 모양 지리산 자락 내달리는 피아골 계곡 가슴에 품은 연곡사 그림같이 앉아 있다 몇 번의 전란에도 되살아나고 의병의 충정이 살아 숨쉬는 도량 동백꽃도 눈물 떨군 사연 만장처럼 펄럭이는 스님의 장삼자락에 숨겨져 있고 뒷마당 지키는 동승탑 간절한 염원 정교한 조각들이 발길을 붙드는데 피아골 계곡 사이로 스러져 간 총소리 흐르는 물 바라보며 다투어 피어오르는 진달래 해마다 더욱 붉다
- 「지리산 연곡사」 전문

지리산 연곡사에서는 몇 번의 전란에도 되살아난 사 찰을 기리고, 의병의 충정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낀다. 피아골 계곡 사이로 스러져 간 총소리를 환청처럼 듣 는다. 전쟁으로 흘린 피가 붉은 진달래로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내는 상상력은 뜨겁고도 절절하다.

허위허위 고개 넘고 일주문 지나면
이천 살쯤 됨직한 아도화상이 지금도 태조산 아래 선방에서 복사꽃등 밝히고 부처님 기다린다
삼층석탑 위에 걸린 구름도 덩달아 가는 길 멈추며 합장하고
- 「도리사桃李寺」 전문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에서는 이천 년쯤은 지난 옛 역사를 더듬어 간다. 신라에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이곳에 사찰을 세운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을 불러내는가 하면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도 합장하게 만든다. 수원 용주사에 가서는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사연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수원 화산 기슭 용주사 정조의 피눈물 효행길 억울하게 뒤주에서 숨진 부친 명당자리 찾아 융릉으로 옮겨가는 넋풀이 아버지 따라 죽고 싶었지만 차마 못 했노라고 묘 아래 동그마한 곤신지에서 하염없이 서 있었지 용틀임하며 누워 있는 개비자 고목도 기막힌 사연 증언하려 200년 넘게 살아남았겠지 아픈 자식 안 나게 골고루 인물 찾으며 백성 맘 헤아렸던 임금 소원대로 아버지 맞은편 건릉에 잠드니 아까운 나이 할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이라도 세상에 내려오셔서 못 이룬 개혁이란 횃불 밝혀 주소서
- 「용주사를 돌아보며」 전문

3. 어찌 아셨을까

이 묶음에 수록한 시는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시편 들이다.
몸살기로 밤새 뒤척이는 날이면
새벽에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벨 “별일 없니” 수원에 사는 구순 노모의 걱정스런 목소리 어찌 아셨을까 거미줄 같은 인연의 고리에서 내게 주파수가 맞춰졌나 몇십 년 전에 끊은 탯줄이 비상시에 신호를 보냈나 도움을 받아야 움직일 만큼 불편한 몸인데 자식 걱정
새벽부터 파도를 탄다
- 「어찌 아셨을까」 전문

몸이 불편하거나 아플 때면 어김없이 엄마에게서 전 화가 걸려온다. 별일 없니? 아픈 데는 없고? 당신 몸도 불편하고 힘드신데 늘 자식 걱정이시다. 어찌 아셨을 까? 엄마와 자식은 보이지는 않지만, 탯줄로 이어진 끈끈한 줄이 있다는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다. 엄마와 자 식은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고, 텔레파시가 통하게 되 어 있나 보다. 이 끈끈하고 신비한 인연의 줄이여. 이러한 이야기는 시 「핫라인」에서도 다시 표현되고 있다.

손전화에 밀리고 매일 찾던 단골손님마저 끊어진 탁자 앞 흰색 전화기 어쩌다 한 번씩 찾으면 화들짝 놀란다 “밥 먹었니” “꿈자리 사나우니 나가지 말아라” 모녀간 사랑이 만났던 오작교
이젠 아득한 메아리 오호라, 하늘나라와 핫라인 개통하면 되겠구나
- 「핫라인」 전문

물음표를 남기고 구순 노모는 먼 여행을 떠났다
한 줌의 재가 되는데 그리 많은 시련이 필요했나 햇볕보다는/ 궂은비와 천둥소리
한 줌의 재가 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나 가난한 선비인 지아비 대신 억척 엄마가 되어 자식들 제 밥벌이하도록 졸라맨 세월
고작/ 손바닥만 한 땅뙈기 얻으려고 잠 못 이루는 나날이었구나
곁에 오롯이 계시다가
홀연히 나비가 되어/ 날아간 삶
참! 작고 가볍다
- 「한 줌의 무게」 전문

돌아가신 엄마를 화장하고, 그 그리움과 허망함을 그린 시이다. 가난한 선비인 지아비 대신 억척 엄마가 되어 자식들 키워 밥벌이하도록 만들기까지 허리 졸라 맨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결국 한 줌의 재가 되 는 것을, 한 뙈기 땅을 얻으려고 그리 많은 세월 동안 간난신고를 겪어야 했던가. 홀연 나비가 되어 날아간 참 작고 가벼운 엄마. 그 이미지가 슬프도록 아름답다. 이 시 외에 다른 시에도 엄마를 그리는 애절함이 여 러 곳에 나타난다. 용주사 입구 찻집 귀퉁이에 있는 절구에서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 「절구」 이지러 지고 닳아버린 놋수저를 보다가, 메마른 송편을 보다 가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한다 「엄마의 얼굴」.

아버지의 고향 풍덕천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아버진 신문을 읽곤 하셨지
시내에서 한 시간 남짓 시골버스 타고 풍덕천 다리 앞에 내리면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청기와집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낙향 후 홀로 계시던 곳 수십 년 만에 찾은 풍덕천은 사차선 도로와 빌딩의 숲 어느 건물 아래 아버지의 텃밭이 숨쉬고 있을까 땀방울로 일군 포도가 매달려 있을까
- 「풍덕천에 가면」 부분

아버지의 고향 풍덕천에 가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 을 것만 같다. 시골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면, 다 리 건너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청기와집, 사업에 실 패한 아버지가 낙향해 홀로 지내시던 곳이다. 거기서 아버지는 희미한 호롱불 아래 신문을 읽으셨다. 설레 는 맘으로 아버지를 찾아가면 구부정한 걸음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아간 풍덕천은 큰 도로가 뚫리고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서 옛 모습을 찾 기가 어렵다. 아버지의 영혼은 어느 집 아래 어느 텃밭 에 숨 쉬고 있을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짠하게 밀려오는 시이다.

양띠 새해 아침입니다. 전 지금 어머니와 칠보마을에서 아버지께 올릴 상을 정성껏 차리고 있습니다 제기도 허술하고 홍동백서도 헷갈리지만 평소 즐기시던 약주도 챙겼습니다 지금 어디쯤 오고 계세요 소처럼 선한 눈매, 비스듬한 걸음걸이로 바삐 오시겠지요 동네에서 구부정한 어르신을 뵐 때마다 아버님인 듯하여 이사 가신 마을은 어떤 곳인가 상상해 봅니다 카나리아들이 천사처럼 날고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며 못다 이룬 법학도의 꿈도 펼 수 있는 천국이겠지요 지난 추석에 뵌 후, 어느덧 봉긋봉긋한 초봄이 다시 왔건만 아버지 만나기가 북녘 이산가족보다도 더 힘드네요 보고플 때마다 꿈속에라도 마주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버님 머나먼 곳에서 오시는데 천군만마는 없지만, 구름다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어여 오세요 구순九旬의 어머니가 문 쪽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 「아버님 전 상서」 전문

설날에 차례상을 차리며 아버지께 편지를 올리는 형식으로 쓴 시이다. 생전의 아버지를 그려보는 마음이 짠하게 다가온다. 소처럼 순한 눈매, 비스듬한 걸음걸이의 아버지. 동네에서 구부정한 어르신만 뵈어도 아버지인 양 가슴이 쿵쿵댄다. 꿈속에서라도 뵐 수 있으 면 좋으련만, 이산가족 상봉보다 뵙기가 더 힘들다. 구 순의 어머니가 문 쪽을 바라보고 계신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시 「하피첩」에도 잘 드러나 있다. 생전 가난한 선비로 어렵게 사셨지만 군불처럼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 그 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돌아가신 지 10여 년 아직도 내 팔뚝을 꼭 잡고 계신 아버지
환갑이 다 된 자식 어린애인 양 바라본다
단풍잎 같이 마른 손가락에 마지막으로 누린 황금빛 호강 내 팔찌로 다시 태어난 생전에 끼시던 아버지 금반지

오늘도 아버지와 함께 일터에 나선다
- 「반지」 전문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시인의 팔뚝을 잡고 있다고 말한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생전에 아버지가 끼시던 반지를 녹여 팔찌를 만들어 시인이 끼게 되었다. 그러니 아버 지는 어디를 가나 무슨 일을 하거나 늘 함께하며 손잡 아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4. 벌서는 소나무

시인은 근래에 들어 더욱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 같다. 세상사에 버겁거나 몸과 맘이 아플 때는 산에 오른다. 산은 언제나 넉넉한 품으로 엄마처럼 맞아준 다. 나무들은 곱게 물든 잎으로 맞아 주고 밤송이는 가 슴 툭툭! 열며 반긴다. 산 아래 오래 살다 보니 나무들 도 피붙이 같이 느껴진다. 「북한산을 오르며」

백련사 입구 산길을 걸으면 몸이 수채화 한 폭으로 물들 것만 같다. 노란 부채 모양의 은행잎, 떼를 쓰며 엎어진 떡갈나무 잎, 단풍 범벅 진국물, 작살나무 진보 라빛 알갱이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가을 산길」

북한산 낙엽 쌓인 길을 걷다 보면 가을이 몸 구석구석을 갈색으로 물들여서, 한 폭 산수화가 된 듯한 착각 을 일으킬 정도이다. 이 고운 풍경을 한 폭 그대로 떠다가 거실 벽에 걸어두고 겨우내 읽어보면 좋겠다고 말한 다. 「갈빛 추억」

그러나, 시인도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지공 여사(지하철 무료로 탈 수 있는 나이의 여자)에 입문하 여 마음은 젊은 칸, 몸은 어른 칸에 이산가족처럼 나뉘는 엇갈린 감정 「지공여사 입문기」을 맛보기도 한다.

장독 옆 감나무 빠알간 그리움이 주렁주렁
대청마루에서 함박웃음 짓던 엄마 얼굴 여고시절 느티나무 아래서 정담 나누던 친구 넓은 등판 보아도 가슴 설레던 첫사랑
저 감나무도 아쉬움을 달래려 불긋하게 물드는 걸까
- 「독백」 전문

장독대 옆 감나무를 바라보며 노랗게 빨갛게 그리움 에 물들기도 한다. 주렁주렁 달린 감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함박웃음 짓던 엄마의 얼굴, 여고 동창 생의 모습, 등판 넓고 듬직했던 첫사랑! 저 감나무도 시 인처럼 그립고 아쉬움에 불그스레 물드는 걸 것이다.

부처님 진달래가 발그레 미소 짓는 이른봄 불자는 아니지만 전 가끔 북한산 보광사에 들러 공양밥 먹는 게 즐거워요 감칠맛 나는 고추장에 살진 산나물과 썩썩 비벼먹는 맛이란 부처님 공양 후 제가 휘휘 주변을 살핀 후 몰래 등산화 바람으로 해우소 가는 거 아시지요 청정한 마음에 신발 벗으라 했는데 오늘도 하산하면서 잘못한 일이 이뿐일까 생각했어요 아니에요 나뭇잎처럼 셀 수 없이 많을 거예요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 삶을 파는 장사에서 손익계산서를 작성해 보고 싶어졌어요 고운 마음 값이 그릇된 심보보다 많이 팔렸나 하고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비록 절 안에 연등은 매달지 못하지만 가슴에 화안한 불 하나 키워야겠네요 이담에 저승에서 별 볼 일 없는 나그네가 왔다고 외면당하면 부끄럽잖아요
- 「부처님 전 상서」 전문

이제 시인은 자연스럽게 사찰을 찾아가곤 한다. 가 끔 북한산 보광사에 들러 공양 밥을 먹기도 한다. 감칠맛 나는 고추장에 살진 산나물과 썩썩 비벼 먹는 공양 밥이 즐거워서라고 말하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이 도량에 끌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눈치 채고 있다. 해우소에 갈 때 신을 벗지 않고 등산화를 신은 채 갔 노라고 고백하면서, 하산할 때 자기를 되돌아보니 어 찌 잘못한 일이 그뿐일 것이냐고, 실로 나뭇잎처럼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라고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이제 인생도 내리막길인데 되돌아보며, 자신을 성찰 하면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씀대로 자신을 깨우쳐 가슴에 화안한 불을 밝혀야겠다고 발원하고 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이순향 시인의 첫 시 집 발간을 축하드린다. 아무쪼록, 이렇게 맑고 고운 마 음으로 사람과 자연 · 만물을 사랑하는 사랑꾼으로서 의 삶을 누리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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