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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중국 민주 자유를 위한 간절한 외침
우쩐롱
no book(노북)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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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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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자유와 민주의 펜!

1부 한국으로 도망치다.

1. 한국에서의 첫 번째 인연
2. 한국의 중국 정치 난민 1호
3. 진술하기 어려운 사상죄
4. 진안민 사건
5. 탈출을 결심하다
6. 다시 법무부 난민실
7. 중국에 숨겨둔 비밀 원고

2부 소남촌 소년

1. 내 고향은 흥평원 소남촌
2. 내 인생 3명의 스승
3. 흙 무대 위의 진흙 아이
4. 심장이 죽은 사회주의
5. 『 사회주의 교육』에서 겪은 고난
6. 끊임없이 심화되는 계급투쟁과 사상교육

3부 책을 못낼 불운한 작가

1. 작가와 기구한 운명 속의 원고
2. 사상은 밥이 될 수 없다
3. 책을 내지 못할 운명

※2020년 작가 인터뷰
※첫 난민 인정 후 언론 인터뷰
※‘6.4천안문학살’ 31주년을 맞이하여 / 대한민국 국민과 자유 세계시민에게 드리는 호소문
“중국민주화는 북한의 핵무기 해결과 한반도통일의 지름길입니다!”
※Photo Story

저자 소개1

武振榮

1949년 3월 중국 섬서성 함양시 출생. 섬서성 함양시는 중국의 오랜 옛 도시이다. 진시황의 무덤, 병마용, 당 태종 이세민 등의 무덤이 있는 곳. 1966년 <문화대혁명> 시기에 함양시 중학교의 홍위병 두목으로 활동하며 당시 천안문 광장에서 홍위병 열병식 때 ‘神’인 모택동을 가까이서 보며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1968년 인민해방군에 입대, 정치 교관으로 발탁되어 인민해방군에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교육하였다. 이때 강의와 교안자료 작성을 위해 도서관에서 동서양 사상서, 역사서, 철학서 등을 읽으면서 정신과 인문의 문이 활짝 열렸고, 중국
1949년 3월 중국 섬서성 함양시 출생. 섬서성 함양시는 중국의 오랜 옛 도시이다. 진시황의 무덤, 병마용, 당 태종 이세민 등의 무덤이 있는 곳. 1966년 <문화대혁명> 시기에 함양시 중학교의 홍위병 두목으로 활동하며 당시 천안문 광장에서 홍위병 열병식 때 ‘神’인 모택동을 가까이서 보며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1968년 인민해방군에 입대, 정치 교관으로 발탁되어 인민해방군에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교육하였다. 이때 강의와 교안자료 작성을 위해 도서관에서 동서양 사상서, 역사서, 철학서 등을 읽으면서 정신과 인문의 문이 활짝 열렸고, 중국은 공산주의와 공산당으로는 희망과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20대 초부터 비밀리에 중국의 자유와 민주를 위한 글을 썼다. 마치 모택동이 청년 시절 북경대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며 책을 읽다 공산주의자가 된 것처럼.

저자가 중국에 있으면서 쓴 글이 800만 자, 30권 분량이었으나 중국에서는 출판할 수 없었다. 2002년 홍콩의 한 출판사에서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책을 내려다가 중국 공안에 발각되어 한국으로 탈출하게 되었다. 2008년 한국에서 중국 민주인사로서는 처음으로 난민 인정이 되었다. 한국에 온 후 지금까지 글을 해외의 중국어 인터넷 사이트(민주논단, 북경의 봄 등)에 발표해왔다. 내용은 모두 중국의 민주와 자유를 위한 글이다.

《우쩐롱 문화대혁명(文革)》, 《우쩐롱 민주를 논하다》, 《우쩐롱 모택동을 논하다》, 《우쩐롱 문화와 종교를 논하다》외 500여 편의 글이 있다。

저자의 일생은 중국의 자유와 민주를 위한 글을 쓰는 생애였다. 그래서 중국 자유와 민주의 펜, 글쓰기 광인(狂人)이라 부를 수 있다. 그는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심정으로 일생 고독하고 비장하게 글을 쓰고 있다.

저자는 《중국민주운동해외연석회의》 한국지부 부장을 오랫동안 맡고 있다. 이 단체는 중국에서 최초로 ‘민주’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국가반역죄로 체포되어 18년간 감옥에서 살다 미국으로 망명한 위경생(魏京生)이 만든 중국 민주화운동을 위한 전세계 조직이다. 위경생은 중국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290g | 138*200*20mm
ISBN13
9791190462068

책 속으로

2008년 11월 14일. 한국의 대법원은 마침내 우리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한국 최초로 중국 민주인사가 난민 인정이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당연히 한국 언론은 대대적으로 이 사실을 앞 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이 소식을 접한 사람은 최 목사였다. 그는 교회에서 중국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다급한 목소리가 들었다.

“저는 KBS1 9시 뉴스 취재기자입니다. “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지금까지 목사님께서 한국으로 탈출한 중국 반체제 민주인사들을 돕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대법원에서 중국 정치인사의 난민 인정을 확정하라는 판결 소식 혹시 들으셨습니까?”
“네? 그게 사실입니까? 저는 아직 못 들었는데요?”
“조금 전 대법원에서 중국인 5명을 난민으로 인정하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습니다.”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최 목사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자님, 그게 사실입니까?”
--- p.34

경찰들이 돌아가자 사장은 내게 그들이 가져온 편지 사본의 일부를 불쑥 내밀며 읽어보라고 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왠지 이 일이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고 더 이상 벗어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낙담했다. 진안민이 홍콩에 있는 출판사에 편지를 보내 자신이 쓴 반동사상 책을 출판하겠다고 했고, 지금 홍콩 측의 답신을 기다리고 있다는게 공안이 찾아온 이유라는 것이다.

사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진안민이 우리 PC방에 올지도 몰라. 만약 그가 오면 우린 진안민이 눈치채지 않게 조심하고 몰래 경찰에 신고해야 해. 알았지? 국가 안전이 달린 일이니 만약 잘못된다면 우리 모두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거야!”
--- p.51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운명 선상에서 봤을 때, 공공식당의 운명은 상당히 짧았다. 최초의 고비는 큰 솥을 사용하는 데 쓰이는 연료였다. 그 당시에 농촌 한 식구들의 끼니는 작은 밥솥으로 가능했고, 보릿짚, 옥수숫대, 건초 등을 연료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공공식당에서는 이러한 연료를 쓸 수 없고 목재와 연탄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탄은 주로 철을 만드는 데에 써야 했고 밥을 지을 때 사용하라는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목재만 사용해야 했다. 건조한 고원에서 목재는 금처럼 귀했으니 밥을 짓는 데 쓰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3년 자연재해를 겪게 되어 밥 먹는 데에 고난을 겪게 되었다. 실은 인위적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공공식당에는 찐빵을 만들 밀가루가 없어 투명할 정도로 멀건 죽을 두 끼에 나눠서 먹어야 했다. 결국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각자 집에서 작은 밥솥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였다. 작은 밥솥을 사용해 쌀겨, 야채, 느릅나무 껍질, 강냉이 같은 것들로 음식을 충당하여 배를 채웠다. ‘공산주의의 심장’은 이토록 굶주린 구성원들 앞에서 죽어버렸다.
--- p.102

고통스러운 3주 동안 나는 사상적, 정신적인 고통뿐 아니라 남들로부터 받은 능욕, ‘사상투쟁’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가해왔던 치욕 등에 시달렸다. 나는 이러한 욕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했다면 내 정치 생활은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작 16살이었고, 일가친척들의 희망과 기대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비난했던 친구들은 나와 전혀 개인적인 원한이 없었으며 나를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그들은 나의 인격을 무너뜨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의사가 나를 ‘치료’해주듯 모택동의 ‘병을 치료해 사람을 구한다’는 취지로 나를 대했던 것이다.
--- p.113

한국에 도망 나온 지 5일째 되는 날 친구인 등원비가 중국으로 전화를 해서 이제 다시는 내가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아내는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심천에 있던 자녀들이 급하게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나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차마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한 방송관계자가 내 목소리를 담은 녹음을 전화기에 들려주었다고 한다. 아내는 그때 만약에 자신이 알았다면 ‘내가 절대 한국으로 못 가도록 말렸을 것이다. 내 남편이 우리 가족들을 불구덩이에 몰아넣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지금 자살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나와 가족들은 중국에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 도대체 남편은 한국으로 도망가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그 후 5개월이 지나서 처음으로 아내와 첫 통화를 했다. 그때 아내는 나를 몹시 원망하고 있었다. ‘당신은 양심이 없다. 나와 가족들을 모두 포기했다’는 말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마음은 미안함으로 한동안 편치가 않았다.
--- p.155

지금도 눈에 선한 그 날. 눈이 엄청 많이 오던 날이었다. 최 목사가 전기담요와 장판을 한 아름 어깨에 메고 우리 집을 찾아와 춥지 않았냐며 냉랭하게 식은 잠자리를 따뜻하게 봐주었다. 내가 관절염이 있는걸 아니까. 이때 정말 감동적이었고 천사가 따로 없다 싶었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늘 세심하고 살뜰하게 챙겨준다. 나이가 들면서 눈도 아프고, 귀도 멀어지고, 관절염도 심해지고, 허리도 아프고, 이빨도 빠지고···. 이렇게 몸이 아플 때마다 곁에서 나를 돌봐주었다. 교회로 들어온 많은 기증품들도 나에게 나누어주셨다. 최 목사는 나의 가족과 같은 존재이다. 몸 뿐 아니라 마음이나 정신, 시련도 극복하도록 도와주었다.
--- p.161

한국 국민 여러분! 중국의 민주화를 지지해 주십시오! 우리 중국 민주화 운동이 공산당 독재 정부의 통치 행보를 거두어들일 수 있을 만큼 강해지도록! 그날이 오면 아시아의 가장 완고한 전제주의의 요새는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한 도미노 효과는 정치적으로 중국독재 통치에 기대고 있는 북한이 지지자를 잃어 버려 급속히 패망하도록 만들 것이고 한국의 골칫거리이자 세계의 문제인 북한 핵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며 이로써 한반도의 위대한 자유민주통일 또한 현실로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대한민국은 아시아 민주화 역사에 찬란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며, 이는 한국국민의 영원한 자랑이자 중국 인민의 감격과 아시아 인민의 자부심이 될 것입니다! 한국국민 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의 각 정당과 뜻있는 인사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를 지지해 주십시오! ‘중국 민주화는 곧 한반도통일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 p.180

출판사 리뷰

저자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어떻게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로 세뇌되어 가는가를 쓰고 있다. 개인의 삶을 전기적으로 술회하고 있지만 이것은 당시 중국 대륙의 전 인민이 겪은 일이기도 하다. 섬서성 소남촌에서 저자는 모택동이 국민당 장개석을 몰아내고 대륙을 석권한 1949년에 태어났다. 그 후 전 중국에 부는 「홍색 유전자 공정(프로젝트)」, 다시 말해 중국의 전 인민들을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세뇌)시키는 역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는다. 저자는 인위적인 이념과 사상으로 왜곡되거나 세뇌당하지 않은 자연인, 본연의 인간성을 지닌 인간을 ‘진흙 아이’로 표현해냈다.

「계급투쟁운동」, 「홍색 가정운동」,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청년 돌격대」, 「사회주의운동」 등은 모두 사회주의 인간을 만드는 운동이다. 저자는 이런 중국을 ‘운동 왕국’이라 조롱한다. 이 모든 운동의 결론은 무엇인가? 이구동성으로 “사회주의가 좋아요!”라는 답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의 할머니는 이런 인간 왜곡 현장을 “신(神)이 노하는 시기이다!”라고 표현했다. 물론 저자는 어린 시절 “공산주의 사상에 빨간 고추처럼 물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자아비판’, ‘세수와 목욕’, ‘때 밀기’ 등의 과정을 통해 그 마을의 홍위병 두목으로 성장해간다.

1968년 인민해방군에 들어가 정치 교관으로 일하면서 그는 사상의 근본적 변화를 겪으며 중국의 자유와 민주를 위한 글을 쓰는 삶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중국에서의 글을 발표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절절히 느낀다. 그리고 결국 자유의 나라 한국으로 탈출했다. 저자가 중국에서의 위기, 한국으로 온 이후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고독했음에도 극도의 평정심과 절제로 담담히 회상한다. 그리고 한국생활에서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주지 않을 때 한 한국인(최황규 목사, 《황하의 물결》 저자)이 18년간 간난신고를 함께 해온 감동적인 우정도 밝힌다.

저자는 책 후반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의 민주와 자유에 대해 한국인들이 궁금해 하는 점을 소상히 밝히면서 중국 민주화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자유 한국의 국민들이 중국 민주화를 도와주기를 호소한다. 저자 우쩐룽의 일생과 글은 모두 중국 대륙 인민의 가슴에 깊이 뿌린 내린 마르크스주의, 모택동 사상과 어록, 모택동 사후 여전히 대륙과 인민에게 깊이 드리워진 모택동의 잔영과 공산주의를 해체, 타도, 제거, 퇴출시키기 위한 내용이다. 그 무기는 중국과 중국 인민에게 필요한 신사상(新思想)이다. 이 책은 아시아의 자유화와 자유 문명의 확산을 바라는 사람들, 북한의 자유와 해방, 중국 대륙의 민주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통일을 꿈꾸는 사람들, 자유의 가치를 신봉하는 분들, 동아시아 자유의 연대, 자유 문명의 연대를 꿈꾸는 분들, 자유와 민주라는 한강의 문명을 건설했고 건설할 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 우쩐룽은 하늘에 사무친 부르짖음을 외친다.
“나는 오늘도 한강을 바라보며,
중국의 민주와 자유를 꿈꾸노라.
나는 오늘도 펜을 들어
중국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심정으로 써내려간다.
“하늘이여, 땅이여!
천안문의 거룩한 영령들이여!
인류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
피를 흘린
세계의 모든 영혼들이여!
중국의 민주와 자유를 도와주소서!
나 우쩐룽이 엎드려 빕니다.
나 우쩐룽이 글로써 호소합니다.
나 우쩐룽이 피눈물로 부르짖습니다.
나 우쩐룽이 영혼에서 홍수처럼 흐르는 눈물로,
하늘에 사무친 맘으로 기도합니다.“
-본문에서

저자의 인간 선언은 대륙의 인민들을 대신한 외침이다.
“나는 도망자다. 나는 망명자다. 나는 자유를 갈구한다! 나는 자유를 열망한다! 왜? 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돼지도 개도 소도 말도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가슴과 영혼에서 분출하는 자유를 향한 그리움, 억제할 수 없는 자유혼(自由魂)이 나를 날마다 사로잡는다. 이런 내가 미친 건가?”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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