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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평산 송귀섭
시작하는 글 [ 봄 ] 1. 버드나무 아래서 쏘가리와 노닐다 - 낙파 이경윤 〈유하조어〉 2. 골짜기 아래서 먹을거리를 마련하다 - 단원 김홍도 〈조어산수〉 자료 1) 박물학자가 쓴 낚시도구에 관한 변증설 - 어구변증설 [ 여름 ] 3. 풍진세상 잊으려 너른 바다의 맥을 짚다 - 현진 〈조어〉 4. 배 띄워 낚시하나 물고기 물지 않고 - 관아재 조영석 〈강상조어〉 5. 두 얼굴을 지닌 한 풍경 - 겸재 정선 〈공암층탑〉, 〈소요정〉 자료 2) 실학자의 눈으로 본 낚시 - 전어지 [ 가을 ] 6. 낚싯대로 꿈을 낚다 - 윤인걸 〈어가한면〉 7. 찬 바위에 앉아 한 마리 걸다 - 겸재 정선 〈한암조어〉 8. 물고기의 머릿수로 세상을 헤아리다 - 학포 이상좌 〈박주수어〉 자료 3) 대문장가가 쓴 낚시의 오묘함 - 조설 [ 겨울 ] 9. 비 갠 밤, 달 아래 홀로 앉은 낚시꾼 - 난석 방희용 〈제월독조〉 10. 차가운 저녁 강에서 돌아갈 줄 모르고 - 겸재 정선 〈한강독조〉 11. 강, 하늘, 저녁 그리고 눈 - 긍재 김득신 〈강천모설〉 12. 눈 내린 찬 강에서 홀로 낚시하다 - 호생관 최북 〈한강조어〉 발문: 이진오 부산대학교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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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가리는 곧 궐(?)이다. 그것은 입궐해서 뭔가를 낚아 보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세상이 잘 낚이지 않으니 마음은 더더욱 착잡했을 것이다. 한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올 정도로 인재였기에 사실상 쏘가리를 잡을 가능성은 높았지만, 훗날 왕을 모시지 않았다 하여 사헌부의 공격을 받았으니 다 잡은 쏘가리를 끝내 놓친 셈이 된다. 그림을 그린 이의 안타까운 마음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림의 낚시꾼은 이경윤 자신이다.--- p.30
요즘도 낚시를 하러 가 보면 처음 낚시에 입문하는 이들의 낚싯대가 대개 하늘로 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낚시를 잘하는 사람은 한상 낚싯대를 아래로 낮춘다. 범이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 태세를 갖추는 모양새랄까. 삿갓을 쓴 낚시꾼은 입질이 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로 낚아챌 준비가 된 자세다. 한순간이라도 낚싯대에서 눈을 떼면 물고기뿐 아니라 기다린 시간까지 몽땅 놓치고 말 테니 주의를 더욱 기울인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자꾸 말을 거는 옆 사람의 얼굴 표정이 자못 익살스럽다.--- p.38 옛날에 고기 낚는 사람은 간혹 귀하게 적당함을 취했는데, 이런 사람을 낚시꾼이라 했다. 즉 혹시 물고기를 낚더라도 적당함을 취했다. 배를 집으로 삼고, 물고기를 먹을거리로 삼더라도 향기로운 쌀밥이나 순채국이 꼭 필요치 않으면 지고로 삼았다. 이에 비해 세상에서는 낟알 한 알 가지고도 다툰다. 여기에 비하면 이렇게 사는 것이 가히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다 같이 뛰어난 것은 혼자 뛰어난 것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p.56 젊은 겸재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일월처럼 명명백백한 마음을 가지며, 더러운 말을 들었을 때는 귀를 씻고, 입에서 나올 더러운 때는 돌로 갈아버리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이것이 저녁 눈에 도롱이 얼었어도 오롯이 강물에 낚싯대 드리우고 앉은 젊은 낚시꾼 겸재의 다짐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겸재의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 스물여덟 폭을 모은 『홍운당첩』에 수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빼앗겼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소중한 겸재의 역작이다.--- p.198 국가에 속한 화원이지만 자신만의 격조와 의취가 담긴 수작을 여럿 남긴 최북. 그는 고고한 예인의 긍지를 지니고 살다간 기인이자 조선의 진정한 화가였다. 그렇기에 그가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드리운 낚싯대 앞에서 오늘 우리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 p.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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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4색 풍경으로 감상하는 옛 그림 속 낚시 현장
옛 조상들은 능수버들이 흩날리는 따뜻한 봄날, 쏘가리 낚시를 즐겼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찐다” 는 당나라의 은자, 장지화의 시가 보여주듯 봄은 낚시의 계절이었다. 여울과 소가 만나는 지점에 돌무더기가 솟은 곳, 거기에 능수버들이 차양처럼 흩날리는 지점이 최고의 낚시 명당이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도 낚시를 즐겨 “노는 고기 잡아서 버들가지에 꿰어온다”고 글을 쓸 정도였다. 봄의 정경을 잘 담아낸 그림으로는 이경윤의 〈유하조어도〉를 들 수 있는데, 능수버들 아래 삿갓을 쓴 인상 고운 선비가 온 정신을 모아 낚싯대에 집중한 모습이 보는 이의 미소를 자아낸다. 여름은 또 어떤가. 고즈넉한 여름날, 시원한 바다 위엔 둥근달이 떠 있고 갯바위에는 낚시꾼이 앉아 갯낚시를 즐기고 있다. 바로 화가 현진이 그린 〈조어〉다. 낚시꾼이 갯가에 앉아 볼락을 낚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현진의 그림은 여백의 미가 도드라진 수작 중의 수작이다. 가을은 윤인걸의 〈한암조어〉다. 청한한 하늘에 기러기 두 마리가 날아가고 그 아래 우거진 갈대 옆으로 낚싯배가 지나간다. 배에는 찻물 끓는 주전자가 김을 내뿜고 노옹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온 강에 가을비 거칠게 푸르면, 푸른 마름과 붉은 여뀌 있는 고요한 물가에서 도롱이 입고 홀로 앉아 낚시하고 싶네”라 말한 권근처럼, 특히 고즈넉한 가을은 많은 이들을 물가로 불러 모았다. 겨울 특유의 정취는 김득신의 〈강천모설〉이 담았다. 하얗게 눈 내린 강 마을에 마치 눈사람처럼 설경의 일부가 된 낚시꾼의 모습은 한없이 고요하고 포근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이 책은 사계절의 빼어난 정취를 잘 담은, 조선 최고 화가들의 작품을 ‘낚시’라는 주제로 묶어 독자에게 소개한다. 낚시하러 온 사람의 사정과 성격까지 은연중에 풀어낸 지은이의 이야기에 단순히 ‘박제된 유물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그림’을 만날 수 있다. 내 평생 바라는 것은 오직‘어부’? 어부를 꿈꾼 선인들, 그 속에 담긴 동양 미학의 정수를 듣다! 옛 시에서 조상들이 바라는 직업의 제 1순위는 무엇일까? 단연코 어부였다. 책에 실린 그림과 시문들이 말해주듯, 조상들은 그 희망사항을 담아 ‘어부’ 그림을 많이 그렸고 시문도 풍성하게 지었다. 『동문선』을 편찬한 대제학 서거정은 “도롱이 입고 부들 삿갓 쓴 현진자는 어디 있는지, 창랑가를 부르며 나도 그를 찾고 싶네”라 노래했고, 이곡은 “무엇이 남쪽 강의 안개비와 같으랴, 천금으로도 어부 도롱이와 바꾸지 않으리”라 했다. 권근은 “긴 강에 물고기 낚는 사람은 행실이나 마음이 모두 다 깨끗하네. 원래부터 영화나 욕됨을 모르는데 어찌 이익이나 명예를 생각하겠나.”라 노래했다. 이처럼 동아시아 문학의 전통 속에서 ‘어부’는 이상향 그 자체였다. 선비들은 직업적 어부가 아니라 은일자를 꿈꿨다. 권력과 경쟁, 암투 같은 세속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이것이 옛 선인들의 마음이다. 그림 속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문제가 들어 있다. 물질과 경쟁적 시스템, 성공에의 압박, 제도적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비록 조선의 옛 그림과 우리 사이에는 몇 백 년의 시간이 놓여 있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들이 연출해내는 삶의 진정성이 시간을 넘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이유 역시 바로 거기에 있다. 물론 이 책은 자연 속에 은거하는 강태공부터 생업으로서 끼니를 잇기 위해 물고기를 낚는 일반 백성의 모습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조상들의 실생활을 담았다. 유형은 다르지만 그 안엔 동양이 꿈꾸던 철학과 예술의 본류가 담겨 있다. 중국과 한국의 시·산문을 함께 엮은 야심찬 저작 이 책의 힘은 특히 지은이가 부지런히 읽고 모아둔 옛글들에서 나온다. 매 장마다 그림에 어울리는 중국·한국의 시와 산문을 골라 넣었고, 우리 고전 중 물고기와 낚시에 관한 좋은 산문 세 편을 직접 우리글로 옮겨 자료로 싣기도 했다. 산문「전어지」에는 어부들의 생활과 물고기를 잘 낚는 기술이, 「조설」에는 낚시와 인생의 오묘한 이치가 담겨 있다. 그중 이규경이 지은「어구변증설」에서는 고기잡이 도구들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데, 낚시 릴에 대한 기록과 옛 그림이 담겨 있다. 기존에는 낚시 릴을 서양이 가장 먼저 개발해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동양에서 그보다 먼저인 3세기경에 이미 사용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함께 실린 〈한강독조도〉는 낚시 릴에 대한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책이 거둔 성과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