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연필 세트 증정(포인트 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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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첫길 들기/ 슬픈 지도/ 들녘/ 생명/ 길상사/ 엄마/ 수도원에서/ 사과/ 수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벽돌 같은 사랑/ 신발/ 노을/ 빈터/ 참깨/ 나그네/ 술/ 세상사/ 통곡/ 나의 노래/ 피천득/ 어느 가을/ 화가 난 기분이 일깨워 주는 것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아기가 되고 싶어요/ 고드름/ 바보/ 샛별/중환자실에서/ 노란 손수건/ 면회 사절/ 아멘/ 눈 오는 한낮/ 내 안의 너/ 기다림/ 사랑을 위하여/ 나무의 말/ 그리움 나무/ 수혈/ 지금/ 해 질 무렵/ 그때 처음 알았다/ 별/ 생선/ 괴로운 기분이 들 때/ 인연/ 물가에 앉아서/ 물새가 되리/ 나는 내가 싫다/ 가시/ 꿈/ 바다에 갔다/ 영덕에서/ 밀물/ 해당화/ 나의 기도/ 하늘/ 공동묘지를 지나며/ 알/ 꽃밭/ 버섯/ 흰 구름/ 바다가 주는 말/ 몰랐네/ 꽃잎/ 행복/ 무지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그땐 왜 몰랐을까/ 새 나이 한 살/ 더 늦기 전에/ 오늘/ 엽신/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발문 사랑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불빛 ― 정호승 |
丁埰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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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창을 열고 푸른 하늘빛으로
눈을 씻는다. 새 신발을 사면 교회나 사찰 가는 길에 첫 발자국을 찍는다. 새 호출기나 전화의 녹음은 웃음소리로 시작한다. 새 볼펜의 첫 낙서는 ‘사랑하는’이라는 글 다음에 자기 이름을 써본다. 새 안경을 처음 쓰고는 꽃과 오랫동안 눈맞춤을 한다. ---「첫길 들기」중에서 참깨를 털듯 나를 거꾸로 집어 들고 톡톡톡톡톡 털면 내 작은 가슴속에는 참깨처럼 소소소소소 쏟아질 그리움이 있고 살갗에 풀잎 금만 그어도 너를 향해 툭 터지고야 말 화살표를 띄운 뜨거운 피가 있다 ---「참깨」중에서 암자에 산그리메가 둘러쌀 무렵 스님이 건네주는 찬물 한 바가지를 받았다 물을 마시다 보니 그 안에 별 하나가 있었다 작은 바가지의 물이 사라지자 별도 사라졌다 나는 간혹 사무치도록 쓸쓸할 때면 가슴에 떠오르는 별 하나를 본다 ---「별」중에서 내가 죽어서 다음 몸을 받는다면 물새가 되겠다 흙한테는 미안하지만 물에서 하루치를 벌어 하루를 사는 단순한 노동자가 되고 싶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오늘의 작은 만족에 훨훨 날며 비록 겨울날 맨발로 얼음 위를 걸으며 부리로 얼음을 쪼지만 그 누구를 원망도 시기도 하지 않는 하얀 물새가 되고 싶다 그리움이야 멀리 바라보며 피우는 꽃 강 건너 흙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하는 나는 죽어서 다음 몸을 받는다면 기꺼이 물새가 되겠다 ---「물새가 되리」중에서 첫눈이 듣던 날 받아먹자고 입 벌리고 쫓아다녀도 하나도 입 안에 듣지 않아 울음 터뜨렸을 때 얘야, 아름다운 것은 쫓아다닐수록 잡히지 않는 것이란다 무지개처럼 한자리에 서서 입을 벌리고 있어 보렴 쉽게 들어올 테니까 나이 오십이 되어 왜 그날의 할머니의 타이름이 새삼 들리는 것일까 ---「무지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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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 사절을 할 수 있는 것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투과하며 그려낸 정채봉의 마지막 시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는 정채봉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시집이다. 퇴원 후 이사를 도와주던 절친 정호승 시인이 “이 집에서 건강도 되찾고, 시도 좀 써서 나랑 공동 시집 한번 냅시다”라고 툭 던진 말을 잊지 않고, “어느 날 메모지에 또는 찢어진 종이쪽지에 연필이나 볼펜으로 쓴 시 뭉치를” 정호승에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묶인 시집이,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되고 말았다. 정호승은 책의 발문에서 이 시집은 “삶과 죽음의 세계를 넘나들었던 한 동화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의 결정체”이며 “염부들이 염전에서 소금이 나는 것을 ‘소금이 내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시를 두고 하늘에서 “‘시가 내렸다’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적었다. 나 오늘 물가에 앉아서/ 눈 뜨고서도 눈 감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았던/ 지난날을 반추한다/ 나뭇잎 사운 대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고/ 꽃잎 지는 아득한 슬픔 또한 있었지/ 속아도 보았고 속여도 보았지 (…) 나처럼 또 앞 생의 누구도 이 물가에 앉아서/ 강 건너 수탉 우는 소리에/ 회한의 한숨을 쉬게 될까/ 바람이 차다 (「물가에 앉아서」 중_62쪽 ) 눈 내리는 수도원의 밤/ 잠은 오지 않고/ 방 안은 건조해서/ 흠뻑 물에 적셔 널어놓은 수건이/ 밤사이에 바짝 말라버렸다/ 저 하잘것없는 수건조차/ 자기 가진 물기를 아낌없이 주는데/ 나는 그 누구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수건」 중_19쪽) 정채봉은 병상에서 지내는 동안 일상의 감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의 모든 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자신이 잃어가는 것들 앞에 속절없이 깨닫기도 한다. 전철을 타러 부지런히 강둑 위를 걷는 사람들의/ 어깨 위로 별빛이 잠시 앉았다 간다/ 전철을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샛별에게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눕는데/ 간호사가 또 내 피를 뽑으러 온다 (「샛별」 중_41쪽) 내 이대로 죽음을 맞이하면/ 나의 수의는 너의 사랑/ 한 벌이면 된다/ 아직은 절망하기 싫다/ 아직은 소유하고 싶다/ 면회 사절을 할 수 있는 것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면회 사절」 중_44쪽) 가을 새벽녘/ 찬바람이 느껴져/ 방 윗목의 홑이불을 잡아당긴다/ 아무리 힘주어 끌어당겨도/ 당겨지지 않아/ 일어나 가까이 다가가 본다/ 그것은 창을 넘어와 있는/ 새벽 달빛/ 문득 달빛 속으로 팔을 내민다 (「수혈」 중_54쪽) “이렇게 웅장한 산도 큰 눈물샘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통의 삶을 위로하는 정채봉의 언어 그러나 정채봉은 목 놓아 울지언정 망연자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웅장한 산도 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고, “빗금 하나 없는 섬바위가 어딨겠니”(「바다가 주는 말」) 하며 보통의 사람들을 위로한다. 또한 “시원한 생수 한 잔 주욱 마셔 보는 청량함/ 반듯이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보는 아늑함/ 딸아이의 겨드랑을 간지럽혀서 웃겨 보고/ 아들아이와 이불 속에서 발싸움을 걸어 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클어져서 달려 보는 (…) 이 하잘것없는 범사에 감사”하는 넉넉한 마음을 갖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되돌아본다. 정채봉은 우리에게 말한다. “꽃밭을 그냥 지나쳐” 가지 않고, “새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고, “밤하늘을 별들을 세어 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일상에 크게 감동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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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침묵의 언어로 빚어진 ‘침묵의 시집’이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할 말을 다하는, 단 한 번 사랑함으로써 평생을 사랑하는 ‘사랑의 시집’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 인간의 사랑과 고통에 대한 이해와 긍정의 불빛이 새어 나와 우리의 방 안을 환히 밝힌다. 인생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사랑이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는 그 불빛이 이루는 그림자 아래 모여 앉게 된다. -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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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시집에서 마음의 흐름을 따르는 시인의 진솔한 언어를 만난다. 시가 마음을 말한 것(詩言志)임을 달리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시는 자기 자신의 삶을 보다 높은 존재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시인에 의해서만 초월의 힘을 발휘하는 법. 마음의 심원을 찾아나서는 것은 오직 독자의 몫이다. - 권영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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