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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승리의 짜릿한 감격은 없었다
단 한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 왕정은 왜 왕따를 당했나 대한민국의 법통을 말한다 태극기는 정말 민족의 상징인가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인가 '장군의 아들', 신화는 없다 2.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 만주국의 그림자 '친일파'에 관한 명상 이근안과 박처원, 그리고 노덕술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 '박멸의 기억'을 벗어던지자 3. 또 다른 생존방식, '편가르기' '참된 보수'를 아십니까 누가 '좌우대립'이라 부추기는가 딱지는 달라도 수법은 의구하네 수시로 되살아나는 연좌제 망령 기구한 참으로 기구한... 4.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 맥아더가 은인이라고? 정전협정의 '저주받은 유산' 주한미국, 뻔뻔할 자격 있다? 반미의 원조는 친일파였다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 5. 병영국가 대한민국 찬란한 '병영국가'의 탄생 그들은 왜 말뚝을 안 박았을까 이제 모병제를 준비하자 정약용도 두손 두발 다 들다 상아탑은 병역비리탑? |
韓洪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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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맥아더만큼 상반된 평가를 받는 군인도 없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문민우위의 원칙에 도전했다가 해임된 맥아더는 한편에서는 미국의 시저, 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시미어 신으로까지 추앙받지만, 최근에는 그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애리조나대학의 마이클 샬러 교수는 더글러스 맥아더 : 극동의 장군에서 흔히 높이 평가되는 맥아더의 군사적 업적도 객관적으로 평범하거나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았으며, 인간적으로 볼 때 맥아더는 독선적이며, 이기적 기회주의자이자 자아도취 소아병 환자였다고 주장했다. 선글라스에 옥수수 파이프, 팽팽한 모자에 잘 다린 바지로 상징되는 맥아더의 옷차림에 대해 트루먼은 70대의 5성 장군이 19살 소위같이 하고 다닌다고 못마땅해했다. 펜실베니아주립대의 와인츠로브 교수도 맥아더 장군의 전쟁에서 맥아더가 '한국전 당시 대통령도 무시할 정도의 제왕주의적 태도와 국제정세에 대한 빈약한 판단력 때문에 결국 강제 전역됐다"고 평가했다.
맥아더는 이승만 정권 시절 살아생전에 동상이 건립되었을 뿐 아니라 생일이면 신문에 기사가 실릴 정도로 정권에 의해 찬양받았다. 재야나 학생들의 주장 이외의 주한미국 철수문제는 최근에야 <한겨레 21>이 용미와 철미의 대화라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제기할 정도로 이 땅에서는 엄청난 금기사항이었다. 일반 대중의 미군에 대한 인식 역시 임진왜란 당시 일반 백성의 명군에 대한 인식에 비하면 대단히 호의적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반미 구호를 외치기 훨씬 전에 채록된 구비설화에 일본군이 아닌 미군이 우리 산천의 혈을 자른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생산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맥아더나 주한미군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과 옹호와는 다른 기류가 아주 낙후된 형태로나마 만만치 않게 흐르고 있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pp. 21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