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말할 수 있는 도(道)는 상도(불변의 道)가 아니다. 지칭할 수 있는 이름(名)은 상명(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무(無)는 천지의 시작을 지칭하고(名), 유(有)는 만물의 터전을 지칭한다. 고로 항상 무는 천지 시작의 묘함(妙)을 보이게 하려 하고, 항상 유는 만물 터전(母)의 오고 감(徼)을 보이게 하려 한다. 이 둘(有無)은 같은 곳에서 나왔지만 이름이 다르다. 같은 곳, 그곳을 그윽하다고 말한다. 그윽하고 그윽하니 천지 만물의 미묘한 (시작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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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만물)이 作焉而(작언이) 不始(불시)하고”에서 作(작)은 “만들다, 창작하다, 일하다, 행하다, 부리다, ~하게 하다, 일어나다” 등의 의미 중 “일어나다, 생성하다”, 焉(언)은 의문과 반어를 표현하는 “어떻게”라고 해석하고, 始(시)는 “비로소, 처음, 사물의 시작, 일으키다” 등의 의미를 포괄하는 “이끌다”, “生而不有(생이불유)”에서 生(생)은 “낳다, 살다, 기르다, 만들다” 등의 의미 중에서 “낳거나 만들다”, 有(유)는 “있다, 존재하다, 갖다, 소유하다” 등의 의미 중에서 “소유하다”, “爲而不恃(위이불시)”에서 爲(위)는 “이루다”, 恃(시)는 “믿다, 자부하다, 의지하다” 등의 의미 중에서 “자부하다(자랑하다)”라고 해석하였다.
“成功而弗居(성공이불거) 夫唯弗居(부유불거)”에서 居(거)는 “살다, 차지하다, 자리잡다, 앉다, 쌓다”등의 의미 중에서 “차지하다”, “是以(시이)로 不去(불거)니라”에서 去(거)는 “가다, 떠나다, 버리다, 덜다, 과거” 등의 의미 중에서 “떠나다”라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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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큇살과 바퀴, 찰흙과 그릇, 기둥·들보·들창 등과 집은 부품과 완성품의 관계이다. 부품은 완성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이다. 재료는 제조의 공정에 따라 그 물성이 변화하기도 하고 그 물성을 유지하면서 완성품의 부분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물성이 변하는 것을 화학적 반응이라 한다. 물성이 변하지 않는 것은 형태가 변하여 조립된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바큇살은 바퀴통과 바퀴 테두리 사이에 끼워져서 바퀴를 만드는 부품이다. 이런 부품들이 완성품의 재료가 되어 완성품이 만들어지면 부품은 전체 완성품의 일부분이 되어 완성품과 일체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체의 완성품은 그 일체로서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부품과 부품들로 조합된 물리적 구조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능구조가 된다. 즉, 바큇살은 바퀴에서 버팀의 기능을 하고, 바퀴의 테두리는 땅과 마찰 기능을 하며, 바퀴통은 회전 기능을 하여 바퀴는 수레를 이동하기 쉽게 기능한다. 이런 기능 구조를 시스템이라 한다.
노자는 이 기능구조를 통하여 만물의 존재방식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존재방식은 개체로서 존재와 전체의 부분으로서 기능하는 형식을 말한다. 노자가 설명하고 있는 것은 상호관계와 이들의 의존성이다. 바퀴는 부품들의 기능이 서로 의존적으로 기능함으로써 기능한다. 바큇살의 버팀, 테두리의 마찰, 바퀴통의 회전과 맞물림 등의 기능이 서로 의존적으로 작동하여 수레는 이동이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어느 하나라도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수레는 굴러갈 수 없게 된다. 이 의존적으로 기능함이 수레의 속성이고 수레가 갖는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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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본성을 실천하는 덕이 어떤 상태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품은 덕이 두터운 것은 갓난아이와 견줄 수 있고, 벌·전갈·살모사·뱀이 독을 쏘지 않고, 맹수가 막아서지 않으며, 움켜잡는 새가 잡아채지 않는다(含德之厚, 比於赤子, 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고 하였다. 덕은 욕망을 갖지 않고 작위적이지 않으니, 욕망이 일어나지 않고 욕망이 작동하지 않는 갓난아이에 비유한 것이다. 노자는 도를 체득한 사람을 성인이라 하고, 갓난아이로도 자주 비유한다. 갓난아이를 비유의 대상으로 등장시킴은 갓난아이는 도를 타고났으나, 아직 그 사용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갓난아이는 자신에게 부여된 본성만이 내재하고 있을 뿐, 현실에 대한 어떤 앎이나 집착도 없고, 욕망이 없으니 주변의 대상들을 해치려 하지 않는다. 대상 자체를 경쟁의 대상이나 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니, 경계할 필요가 없다. 맹수나 맹금도 갓난아이의 존재를 경계할 대상이 아닌 그냥 자신의 환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니 갓난아이를 해치려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덕을 가진 사람에게는 적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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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보는 세상은 관계로 얽어진 시스템이다. 노자가 본 시스템이란 조직과 같다. 이 조직을 얽는 끈의 조정자는 환경조건이다. 시스템이란 조직의 재료는 구성요소이고 그 구성 요소는 각각 지향성을 갖는다. 그리고 구성요소들의 주변 환경도 지향성인 에너지를 갖는다. 환경이 성숙되면 환경에너지의 영향력으로 구성요소들의 에너지가 집결한다. 집결하여 서로가 얽힌다. 이것이 시스템인 조직이다. 구성요소들이 갖는 지향성이 조직을 얽는 끈이라면 이 끈을 조정자는 환경의 지향성이다. 지향성은 에너지를 품고 있으니 역동적이다. 항상 변한다는 뜻이다. 같은 듯한 상황이라 해도 과거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는 뜻이다.
환경에서 유입되는 에너지는 환경을 구성하는 사물의 지향성이다. 이 에너지는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갖는 지향성이 결합되고 융합된 것이다. 만물이 생겨남은 환경요소들의 에너지가 성숙되어 결합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 환경에너지가 만물이 생겨나게 하는 조건이 된다. 이 환경에너지, 즉 환경을 이루는 요소들의 지향성이 성숙하여 결합되면 이 조건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게 되고 자라게 되며 사그라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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