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물러가서 바다의 수면이 다시 순탄해지고 평온함이 정착되자, 급박하게 반성할 거리도 사라지고 바다가 나를 삼킬 것이라는 두려움과 걱정도 있게 되자, 이전의 내 욕망의 물살이 다시 흘러 들어오니, 나는 비통한 상태에서 다짐한 맹세와 약속은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물론 간간히 반성을 안 한 것은 아니고, 심각한 생각들이 말하자면 다시 돌아오려고 애를 쓴 셈이지만, 나는 이를 모두 떨쳐버렸으니 마치 무슨 병을 앓다가 회복되는 듯 그런 생각에서 깨어났던 것이며, 술에 빠지고 동료들과 어울리며, 내가 그때 쓴 표현을 쓰자면 이런 ‘발작’이 돌아오지 못하게 억누르자, 한 오륙 일 안에 양심을 완벽히 누르고 승리하였고 이에 양심에 시달리지 않기로 작정한 젊은 축들이라면 누구나 바랄만한 상태에 이르렀는데,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시련을 겪게 되어 있는 몸이라 이런 경우에 대개 그렇듯이 하나님은 내게 변명의 여지를 일체 남겨두시지 않는 쪽으로 섭리하시기로 결정하셨던 것이다. 이는 내가 이번 일을 구원의 계제로 삼지 않을 시에, 그 다음번 상황은 워낙 극심해서 양심이 있는 대로 무뎌지고 지극히 못돼 먹은 자라도 그것이 얼마나 위험했으며 거기서 건져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고백하고 말게 하시기 때문이다. --- p.18
이 한심한 인간들이 내 총소리와 섬광을 보고 깜짝 놀란 모습은 말도 다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 어떤 자들은 하도 무서워 죽기 직전이라, 순전히 겁에 질려서도 반쯤은 죽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이 짐승이 죽어서 물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또한 내가 이들에게 해안 쪽으로 나아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보더니, 용기를 내서 해안으로 나왔고 짐승을 수색했는데, 나는 바다에 떠오르는 피를 추적해서 놈을 찾아냈고 몸에 로프를 던져서 묶은 후에 흑인들에게 밧줄을 잡아서 끌도록 하니, 이들이 해안으로 끌어내고 나서 보니까 매우 진기하게 생긴 표범으로 아주 고급스럽고 멋지게 점이 퍼져 있었으니, 흑인들은 내가 무엇으로 그 놈을 죽였는지 두 손을 쳐든 채 놀라고 있었다. --- p.48
사실 나는 바다 여행 운은 매우 없었기에 이게 뭔가 이유가 됐을 법하나, 누구건 이런 경우 자기 생각에 엄습하는 느낌을 만만하게 여기면 안 될 것이니, 내가 타고 가려 했던 배 둘, 그러니까 내가 여러 배중에서 골라서 하나는 내 물건들을 싣고 가려고 했고 다른 하나는 선장과 합의까지 했던 이 배 두 척이 모두 잘못되었으니, 하나는 해적들에게 나포되었고 다른 배는 영국해협 토비 근방에서 좌초되어 세 명 빼고는 모두 익사하고 말았으니, 이 배들 중 어느 것을 탔어도 내게는 불행이었을 것이며 어떤 쪽이 더 심한 것인지 말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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