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이런 숲의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쩐 일인지 혼자 무리에서 벗어나, 숲의 어느 빈터에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가만히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저 멀리 사람들이 웅얼거리는 목소리, 뽀로롱~ 방울새가 나뭇가지를 스치고 날아가는 소리... 시원한 바람은 진한 송진 냄새를 후욱, 실어다 주고, 따뜻한 봄볕을 가득 목덜미에 받으며 나는, 어느덧 현실인지 이상인지 알 수 없는 세계 한가운데에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하루종일 정신없이, 무슨 일을 했나 모를 정도로 바쁜 일상이, 그렇게 계속 계속 계속...되던 어느 날의 늦은 퇴근 길. 스쳐 지나가는 봄내음이 저를 순간적으로 그 시간이 멈추었던 그 시절로 훌쩍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 곳이 얼마나 그립던지요. 어느 봄, 숲 속으로 놀러나온 한 여자아이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마리 홀 에츠의 대표작『나랑 같이 놀자』는 그 시절의 느낌을 그대로 화폭에 담은 그림책입니다.
해가 뜨자 풀잎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나는 들판으로 놀러 나갔죠.
메뚜기 한 마리가 들풀 이파리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침밥으로 이파리를 먹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말했죠.
"메뚜기야, 나하고 놀래?"
내가 메뚜기를 붙잡으려고 하자, 메뚜기는 톡톡 튀어 달아나 버렸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뛰기를 멈추더니 연못가에 앉았습니다.
개구리는 모기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내가 말을 건넸습니다.
"개구리야, 나하고 놀자."
내가 개구리를 붙잡으려고 하자, 개구리도 펄쩍 뛰어 도망가고 말았죠.
(...)
첫장면. 여자아이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숲을 향해 걸어옵니다. 아이는 혼자 들판으로 놀러를 나왔나 봅니다. 메뚜기를 발견한 아이는 '나하고 놀래?'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메뚜기는 톡톡 튀어 달아나 버리지요. 개구리에게도 다가가고, 다람쥐에게도 달려가 보지만, 모두들 아이를 피해 도망을 가고 말아요. 아이는 아무도, 아무도, 놀아주려 하지 않자 민들레 줄기를 뽑아, 입김으로 '후우`'하고 씨를 날려보내지요. 그리곤 연못가에서 샐쭉하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아이를 피해 달아났던 동물들이 하나 둘, 소녀 곁으로 다가옵니다. 메뚜기도, 개구리도, 그리고 느림보 거북도 통나무 위로 기어 올라왔지요. 그리곤 마침내 아기사슴 한마리가 덤불 속에 살며시 고개를 내밀더니, 천천히 다가와 아이의 뺨을 핥았습니다. '나는 숨을 죽였습니다. 아기 사슴은 천천히 다가왔죠. 어찌나 바짝 다가붙던지 쓰다듬어 주어도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아기 사슴이 곁에 와서 내 뺨을 핥았죠. 아이, 좋아라. 정말 행복해! 모두들, 모두들, 나하고 놀아 주니까.(p.27~31)'
애써 손 내밀어 다가가 보지만 모두에게 거절당했던 아이가, 숲과 함께 동화되면서 저절로 동물들과 친구가 된다는 아주 예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고독과 정막감이라는, 어찌 보면 아이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아련한 정서가 그림책 가득 묻어납니다. 작가는 노란 밑바탕에 회색 콘테로 지극히 제한된 색상만으로도, 따스한 봄볕과 아이의 풍요로운 정서를 밀도있게 그려냈습니다. 두고 두고 보아도 물리지 않는,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