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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해운대
중고도서

호텔 해운대

오선영 | 창비 | 2021년 12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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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10g | 128*188*16mm
ISBN13 9788936438678
ISBN10 8936438670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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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여름오이   평점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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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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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산 하고 싶다, 인부산.”
민우가 부산시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을 보고 와서 말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살고 있는 민우는 앞으로도 부산에서 쭉 살고 싶어 했다. ‘인서울’ ‘인수도권’을 외치며 다른 지역으로 취업을 꿈꾸는 이도 많았지만 지방에 사는 이십대가 모두 똑같은 희망사항을 지닌 건 아니었다. 민우에게 ‘인서울’은 ‘아웃부산’의 다른 말이었다. 부산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살아온 터전에서 추방됨을 뜻했다.--- p.24 「호텔 해운대」

가만히 있지. 꼭 그렇게 나대는 사람들이 있어요.
콘돔은 필요한 애들이 알아서 사겠지, 그걸 꼭 길에서 나눠줄 필요가 있나.
신여성들이 어디서 서울 애들 하는 걸 보고 따라 했는가배.
이야기를 들은 다른 동기들이 말을 덧붙였다. 적당한 비속어를 섞어가면서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렸다.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언니의 마음과 의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언니에 대해서 함부로 떠드는 것도 듣기 싫었다. 언니를 욕하는 이들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그러다 정문 앞에서 나를 부르던 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언니는 나를 왜 불렀을까. 나를 부르기는 했던 걸까. 언니를 욕하는 동기들과 언니를 외면한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화를 낼 자격이 있는 걸까. 나는 필통만 만지작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p.89 「다시 만난 세계」

그중 가장 중요한 율법은 절대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게 없음을,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공공연하게 떠벌리는 일이었다. 결핍은 벗기고 벗겨도 계속해서 껍질이 나타나는 양파와 같았다. 한겹만 벗기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또다시 얇은 껍질이 나타났다. 두 눈이 새빨갛게 되도록 나의 결핍을 벗기고 나면, 그 자리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양파의 씨앗, 열매 따위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 p.107 「후원명세서」

주의, 밟지 마시오!
나는 안내경고를 무시하고 구멍 위에 섰다. 제자리에서 걸었다. 걷다가 뛰었다. 두 발로 힘껏 뛰었다. 마르지 않은 시멘트 위에 내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생겼다. 구멍이 다 메워진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안전한지 알고 싶었다. 어느 순간, 땅이 푹 꺼지지 않을지, 조금이라도 틈이 남은 건 아닌지 나는 알아야만 했다.
아아아.
뛰다가 구멍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지면 위로 내 목소리가 부딪쳤다 다시 돌아왔다.
아아아.
다시 소리를 질렀다. 동서남북으로 지면이 흔들리면서 다시 땅이 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고 깊은 구멍 속으로 쑥,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장갑차가 지나가도 안전할 정도로 지반이 튼튼하고 단단하기를 바랐다. --- p.149 「지진주의보」

자비출판으로 소설집 천권을 찍어 오백권을 우리 집으로 배달시켰다. 택배 상자를 가져온 기사는 이사 비용을 받아야겠다고 대놓고 화를 냈다. 누런 종이 상자 열개에 든 오백권의 책 무게란, 얼추 소형냉장고 한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상자 하나하나를 실어 나른 택배기사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나 역시 폐품처럼 쌓인 내 책들을 불태우고 싶었으니 말이다. (…)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가족과 출판기념회에 온 문우들 외에 누가 알까. 그 생각을 하니 가슴 한쪽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 p.190~191 「바람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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