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에서 교조 소태산 박중빈과 후계자 정산 송규의 관계는 어땠을까? 일단 수운과 해월의 관계 유형에 부합할 것이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간다면 종교사 전반에서도 그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완벽하고 아름다운 승계라고 할 만하다. 그것은 앞선 교조 쪽에서도 그러하거니와 뒤선 후계자 처지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수운의 후계 구도가 남접과 북접의 대립으로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든가, 이후 교단이 천도교, 시천교, 수운교 등 여러 개의 종파로 분열되었다든가 하는 데 비하면, 소태산의 후계 구도는 온전했고 분열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소태산과 정산의 계승은 교권의 인계인수라는 물리적 주고받기뿐 아니라, 소태산과 정산 상호간의 미진한 부분을 한 팀이 되어 완성하는 상보적 관계가 더 이상 바랄 수 없이 이상적이다. 그리고 정산 쪽에서 보면 이 ‘계승’이 곧 정산의 생애를 설명하는 핵심 열쇳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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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 김대거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좌우보처불은 문수, 보현보살이시다. 우리 소태산 대종사 부처님의 좌우보처불은 정산 종사와 주산 종사이시다.”([교사이야기], 34) 했더란다. ‘대지(大智) 문수보살, 대행(大行) 보현보살’이라 하듯이 문수는 지혜로, 보현은 실행으로 중생제도를 돕는 역할이니, 정산이 문수에 상응하고 주산이 보현에 상응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정산과 주산의 성격과 능력의 차별성을 잘 지적한 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동네 사람들이 정산은 선동(仙童, 신선 세계 산다는 아이)으로 주산은 장수(將帥)로 부르기도 했다 하는 말이나, 사람들이 형을 외유내강에 춘풍화기(春風和氣, 봄날의 따뜻한 바람과 화창한 기운)로, 아우를 외강내유에 추상열일(秋霜烈日, 늦가을의 된서리와 한여름의 불볕)로 평하였다는 말이 근사한 지적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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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40분, 산회하라는 정산의 지시로 대중을 흩어 보냈다. 12시 10분쯤 알부민 주입이 끝나고 정산이 말했다. “종사님께 할 일을 다 못 해드리고, 어머니 앞에서 떠나게 되고, 정전 일과 영모전 일 못 끝내서 미안하다. 종사님은 만고대성이시다.” 첫째는 소태산의 뜻을 받들고 추모하는 사업들을 충분히 진척시키지 못함을 안타까워한 것이요, 둘째는 모친 이운외가 91세로 아직 생존해 있는 터에 먼저 감을 죄송해하는 것이요, 셋째는 『정전』의 수정 편찬과 더불어, 소태산 이하 역대 선령들의 위패를 모시고 추모하는 공간인 영모전(永慕殿) 건립에 미처 힘이 닿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첫째의 구체적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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