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을 그렇게 좋아하시면서도 가난한 주부로서 늘 그 욕구를 절제하셔야 했던 어머니(나는 어머니가 <아네모네>라는 국산 흑백영화를 그렇게 보고 싶어하시면서도 생활에 쪼들려 포기하신 걸 아직도 기억한다)의 한숨을 나는 이제서야 뒤늦게 여운처럼 듣는다. 내가 이 그림을 볼때마다 진하게 다가오는 추억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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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림 보는 법 좀 가르쳐달라' 고 얘기해 오면 나는 으레 보고 싶은 대로, 좋아하는 대로 보라고 말한다. '그림 보는 법'이 따로 없다는 뜻이다. 사실 아름다운 사물을 보고 즐기는 것은 생래적인 일이지 특별히 따로 배워야 할 일은 아니다. 물론 미술이라는 예술 장르를 그 역사적 자취를 따라 이해하는 데는 나름의 학습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비평을 직업으로 하지 않을 바에는 자신의 욕구를 따라 즐기는 것만큼 만족스럽고 보람된 감상법이 없다. 미술을 생활화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향한 자신의 정당한 욕구를 남의 눈을 의식해 억압하는 것이다.
--- p.232
그 여자아이는 나와 동갑인 다섯 살이었다. 서울 변두리의 한 동네, 아직 푸릇푸릇한 잔디가 살아 있는 언덕에 그 여자아이는 서 있었고 나는 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아쉬움을 토하며 뉘엿뉘엿 지는 저녁 해. 그리고 산들 바람. 그 아이의 다소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검은 실루엣으로 그 아이의 모습이 더욱 또렷해질수록, 나는 아름다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그 순간 배웠다.
--- p. 12
<꽃장식 모자를 쓴 소녀>는 로댕의 활동 초기, 구체적으로 1865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유려하고도 우아한 표현이 18세기 로코코풍의 흔적을 드리우고 있다. 그러니까 다이내믹하고 표현적인 로댕의 전형은 아직 뚜렷이 나타나 있지 않은 반면, 오히려 섬세하고 우미한 여성적 감수성이 선명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아직 배움의 과정을 밟고 있던 청년기의 조심스러움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능숙하다. 특히 소녀의 분위기, 그 미묘한 떨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로댕의 손끝을 더듬다 보면, 언젠가 사진으로 본 로댕의 두툼하고 뭉툭한 손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대담한 표현으로 유명한 피카소가 그의 첫 아내 올가 코클로바를 그릴 때 보인, 피카소답지 않게 사려 깊고도 은근한 묘사가 떠오른다. 그만큼 끈끈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 p.14
<꽃장식 모자를 쓴 소녀>는 로댕의 활동 초기, 구체적으로 1865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유려하고도 우아한 표현이 18세기 로코코풍의 흔적을 드리우고 있다. 그러니까 다이내믹하고 표현적인 로댕의 전형은 아직 뚜렷이 나타나 있지 않은 반면, 오히려 섬세하고 우미한 여성적 감수성이 선명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아직 배움의 과정을 밟고 있던 청년기의 조심스러움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능숙하다. 특히 소녀의 분위기, 그 미묘한 떨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로댕의 손끝을 더듬다 보면, 언젠가 사진으로 본 로댕의 두툼하고 뭉툭한 손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대담한 표현으로 유명한 피카소가 그의 첫 아내 올가 코클로바를 그릴 때 보인, 피카소답지 않게 사려 깊고도 은근한 묘사가 떠오른다. 그만큼 끈끈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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