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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삐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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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삐 언니

강정님 저 / 양상용 그림 | 푸른책들 | 2003년 02월 2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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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23쪽 | 330g | 133*195*20mm
ISBN13 9788988578834
ISBN10 898857883X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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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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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무대 위에 나타난 사람은 회색 두루마기 차림에 큰 갓을 쓴 남자였다. 기생들과 달리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남자의 등장에 나는 울고 싶을 만큼 실망이 컸다.
남자는 무대 한가운데 바위처럼 서서 마당 한 쪽 긑에서 다른 쪽 끝까지 주욱 훑어보았다. 푸른빛을 쏘는 듯한 남자의 눈빛에 웅성거리던 장내는 일시에 잠잠해져 버렸다.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남자의 낮고 점잖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침착하고 지혜롭고 사람의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듯한 목소리였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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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나를 이끌어온 길을 믿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건지 모르지만 길은 결코 나를 배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이삐 언니』는 아홉 살 난 여자애 복이가 어느 날 문득 길의 신비에 이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 걸음 내디뎠을 때 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길은 알 수 없는 어떤 힘으로 나를 이끌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지금껏 '한 발짝도 더 나아가 본 적이 없'는 그 길로 복이를 이끈다. 어떤 구체적인 지향점을 정하고자 하는 순간 길은 그 의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신비한 힘으로 점점 더 강하게' 복이를 이끈다.
마침내 복이는 길을 잃는다. 어린 복이가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은 어느 곳에 도달하겠다는 뚜렷한 지향점을 끝내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넙드리'라는 아주 먼 동네로 시집간 '이삐 언니'를 찾아가리라고 막연하게 마음먹지만 그것은 길을 계속 가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40리 밖에 있는 이삐 언니네 집에 안착하지만 복이의 길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셈이다. 어린 복이는 그 동안 자신이 속해 있던 좁디좁은 세상 너머로, 이 세상 한복판으로 한없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낯선 길 위에서 복이는 웬지 모를 설렘과 함께 불현듯 찾아드는 두려움을 지닌 채 많은 것들을 새로이 보고 만난다. 길을 가면서 복이가 보는 것은 단지 새로운 동네와 사람, 낯선 산과 들판만은 아니다. 복이는 또 다른 새로운 길들을 만나고 또 만난다. 그러면서 길은 끊임없이 이어져 있으며 또 다른 길들로 갈라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수많은 갈래의 그 길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는 이야기

표제작 「이삐 언니」를 통해서 길에 대한 사유를 아름답게 펼쳐 보인 이 책에는 그 밖에도 5편의 작품이 더 실려 있다. 일제 말인 1940년대 초와 해방 공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밤나무정이라는 전라도의 시골 마을에 사는 '복이'라는 아홉 살 여자애를 중심으로 일어난 6편의 이야기를 모은 이 작품집은 연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복이는 전편에 걸쳐 등장하지만 매번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주변인물로 물러나기도 하며, 복이의 가족, 친척, 이웃 들까지 숱한 인물들이 얼키고 설켜 풍요롭고도 정겨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 작품은 늦깍이 작가의 오랜 세월에 걸친 연륜과 지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따뜻한 이해가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수많은 갈래의 길 위를 끝없이 가는 일과 다름없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어 분주한 일상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작가 이금이가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고 평한 이 책에서, 독자들은 지친 삶을 끌어안고 보듬어 줄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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