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고유하여 일반화될 수도, 공식화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는 순간 고통은 관념 속에서 무화되어 버린다. 정신과에서 진단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다. 공황장애 환자, 혹은 우울증 환자 같은 것은 없다. 그 사람, 고통받는 그 사람이 있을 뿐이다.
--- p.31 「고통」 중에서
지금 여기에서 흐르는 음이 기억 속의 음과 섞인다. 현재의 연주는 기억과 다르고 기대와 달라서, 오롯하게 떠올랐다가 스러지는 음들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킨다. 곡의 흐름에 대한 기대와 미리 예측하는 감동이 현재 생겨나는 낯선 느낌과 뒤엉켜 다시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을 만든다. 현재가 오로지 현재인 적은 없다. 기억과 기대, 두려움과 설렘, 과거와 미래가 항상 지금 여기에 모여 북적거린다.
--- p.40~41 「기대」 중에서
그 순간 마치 누가 내 이마를 탕 때린 것처럼 머릿속에 “삶이란 내 모든 행동의 정확한 총합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생각을 말하든 속에만 품든, 감정이 일기에 쓸 만큼 중요하든 흘려보내고 나면 평생 기억하지 못하도록 사소하든, 내 모든 생각과 행동과 느낌이 나를 이룬다는 것. 읽고 쓰고 놀고 먹고 자고 싸고 울고 웃는 모든 일들이, 이루고 쌓고 성취하는 모든 것들이, 놓치고 잃고 잊고 실패하고 포기하는 모든 순간이 합류하여 내가 된다는 것.
--- p.49 「깨달음」 중에서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보지 않았다면, 바라던 대로 ‘죽음의 그늘로 감싸인’ 에우리디케와 백년해로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사랑일까? 사랑한다면 걱정되어 돌아보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사랑을 영원히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존재와 마주쳐야 했으리라. 그리하여 옛이야기들은 상실까지가 진짜 삶과 사랑의 완성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p.85 「뒤돌아보기」 중에서
뒷모습은 준비할 수 없고, 조절할 수 없고, 꾸밀 수도 없다.?항상 활짝 열려있어서 얼굴 표정처럼 닫을 수도 없다.?팔다리 휘둘러 방어할 수도 없다. 말이 없기에 침묵의 온도가 느껴지고, 표정이 없기에 온몸이 말하고, 무력하기에 오히려 존재 자체가 오롯이 떠오른다. 우리가 한 사람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이다.
--- p.88~89 「뒷모습」 중에서
진료실 같은 자리에 앉아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두 살배기 어린아이부터 아흔 살 노인까지, 한 명 한 명이 각자 나름의 사연과 고유한 고통을 품고 온다.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모두 공유하는 것은 ‘변화’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달라지고 싶고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 치료자와 바라보는 방향이 어긋날 수는 있지만 변화하고자 하는 욕구는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 p.134 「변화」 중에서
이게 드문 일일까? 억울해서, 두려워서, 서운해서, 불편해서,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을 속인다. 안다고 하고, 모른다고 하고, 기억이 난다고 하고,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너를 위해서라고 하고, 너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믿어버린다. 하지만 정말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 가능할까?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자신의 기억을 속이고 스스로 한 거짓말을 믿는 죄인처럼’ 우리는 속이다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솔직하다가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는다.
--- p.167 「속이다」 중에서
잘 안아주기 위해서는 미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조심하다 보면 너무 멀어지고, 긴장하면 몸이 자연스럽게 맞닿아 포개어지지 않는다. 지나치게 끌어안으면 옥죄이고 아프다. 성적이거나 공격적 충동이 침입하면 뾰족하고 날카로워져서 불안하고 위험해진다. 상대의 미묘한 반응에 나를 맞추며 안음으로써 안기는, 미묘한 균형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 p.185 「안다」 중에서
누군가가 내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내 불안과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마주하고,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에 휩쓸리는 나에게 실망하지 않는 경험은 깊은 안전감을 주고, 거기서 우리 모두는 딛고 일어설 발판을 발견한다.
--- p.239 「좋아하다」 중에서
얼마 전에는?아내 수술 때문에 며칠 입원하느라 아이들을 처가에 맡겼다. 퇴원하는 날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작은 액수를 넣어서 드렸는데, 장인어른께서 수술 받느라 고생했다며 봉투를 하나 손에 쥐어주신다.?돈이 오고 가면서 결국 제로가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여전히 드린 것도 맞고 받은 것도 맞다. 드리는 기쁨과 받는 감사함이 하나도 훼손되지 않고 의미는 그대로 남았다. 계산상으로는 제로인데, 의미는 두 배가 되는 이 당연하지만 신기한 기적이라니.
--- p.243~244 「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