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다리를 가진 포유동물과 인간의 출산 사이에는 놀랄 만한 차이가 있다. 산도가 넓고 약 2분 안에 분만할 수 있는 북극곰이나 원숭이에 비해, 인간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실 인간은 출산할 때 도움이 필요한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 pp.22-23
“출산의 또 다른 현상은 포유동물들의 경우 대체로 진통을 밤중에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오랜 적응의 결과일 수 있다. …… 그러나 2백만 년 전 초원에서 통했던 행동이 현재에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날 출산이 임박한 여성이 한밤중에 병원에 도착할 경우, 그 병원에는 낮보다 적은 숫자의 의료진과 가장 경험이 부족한 수련의가 대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pp.27-28
“진화의 유산과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이 점차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산모의 진통은 원숭이보다 오래 걸리고, 북극곰보다 더 고통스럽지만, 인간의 출산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지구에는 이미 그것을 증명하는 65억 명의 사람들이 있다. 현대의 이 모든 성공에는 잃어버린 연결 고리가 있다. 바로 ‘조산사’다.” --- pp.46-47
“2백 년 전 산파는 지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산파들은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고, 노인을 돌보는 등 실질적으로 신생아부터 노인들까지 가족 내 모든 사람을 보살폈다. 심지어 산모 집에서 기르는 가축을 돌보기도 했다. 산파는 미혼모를 몰래 숨겨 주고, 낙태를 도와주며, 자궁 내에 성수를 넣어서 태아에게 세례를 주기도 했다. 죽은 태아의 장례를 치러 주고, 아기가 돌이 될 때까지 소아과 의사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약초나 민간요법을 이용해 아픈 사람들을 돌보기도 했다.” --- pp.53-54
“소위 마녀 중에 얼마나 많은 산파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일하는 여성들은 마녀와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어서 많은 의심을 받았다. 마녀 사냥꾼들은 혼자 사는 여성, 특히 남편을 잃은 여성은 남자 없이 살기 때문에 더 악마를 찾게 되고, 먹고살려면 사탄의 도움을 더 필요로 할 것이라고 믿었다. 마녀는 자립심이 강하고, 거침없이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산파들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노령의 미망인이어서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았고, 말도 거칠었다. 게다가 산파는 마을의 치료사로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말하자면, 음식이 상하거나, 남자들이 느닷없이 열병에 걸리고, 아이가 기형으로 태어나는 것과 같은)에 관여했다. 일부 산파들의 경우, 태반이나 양막을 묘약이나 부적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더욱 의심을 샀다.” --- pp.63-64
“출산은 한 여성이 엄마가 되는 뜻깊은 일이기도 하지만, 산모가 속한 공동체의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유럽과 초기 미국에서는 산모가 진통을 하면 주변 친척들이나 이웃들이 몰려와 수다를 떨며 이러저런 정보를 교환했는데, 이들을 가리켜 ‘God-sibs’ 또는 ‘sisters-in-God’라고 했다. 이 단어는 영어의 소문, 수다를 뜻하는 가십gossip의 어원이 되었다.” --- pp.99-100
“쥐로 인해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것이 병원에서 산모들이 겪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1883년, 16세의 미혼모인 브리짓 로건은 보스턴해산병원에 입원해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를 포함해 그곳 환자의 50퍼센트가 산욕 패혈증이라고도 불리는 산욕열에 걸렸다. 의사들이 내진 시 손을 씻지 않아서 전파된 감염이었다. …… 산욕열로 사망하면 산모를 부검해야 하는 정부 규제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와 의대생들은 사체에 대한 산부인과 검진을 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의 손톱 밑이나 피부의 주름 사이에 부패된 사체 조각들이 붙게 된다. 의사들은 그 상태로, 태아가 얼마나 내려왔고 자궁경관이 얼마나 확장되었는지 산모들을 내진하기 위해 분만대로 갔다. 악순환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 pp.106-108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과 캐나다에서 지불 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 방식의 보건 의료 체계가 완성되었다. 재원이 마련되면서, 출산 정책과 함께 출산이 이루어져야 할 장소 역시 정해지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병원이었다 …… 네덜란드는 예외에 속하는 경우인데, 전체 출산의 30퍼센트가 여전히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산모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보험을 통해 재정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p.117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돕는 것은 멋진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만실로 급히 실려 온 산모들의 팔과 다리를 커프로 묶고 어깨와 가슴을 쇠로 고정하는 방식을 보고 나서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산모가 ‘준비되는’[여기서 ‘준비’라는 것은 회음부를 면도하고, 관장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_인용자] 대로 분만실로 즉시 옮겨지는 것이 일반적인 시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벌린 자세(절석위)로 8시간 동안 묶여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 p.121
“서구화된 산모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고 해도, 제한된 보험 급여 범위, 문화적인 규범, 출산의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 자신이 어디서 출산할 것인가를 자유롭게 고를 수 없다. 특히 편안함과 정서적 지지, 의학적 개입의 측면에서 어디에서 아기를 낳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에는 늘 장단점이 상충한다. 여성들은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한 후 자신들이 가장 안전하게 느끼는 곳에서 출산하고 싶어 한다. 극소수의 여성을 제외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들이 선택하는 그 장소는, 필요하면 즉각 수술실로 갈 수 있고, 기계에 둘러싸여 있으며, 척추에 직접 마취제를 놓을 도관과[전자태아감시장치EFM를 연결할 수 있는] 전극이 붙어 있는 침대다.” --- p.138
“의사들은 산통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국의 유명한 산과 전문의인 조셉 B. 드리는 산통은 누구에게나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1920년 시카고에서 진료했던 드리는 출산은 마치 갈퀴에 긁히는 느낌이고, 태아에게도 탄생은 머리를 문에 부딪혀 뭉그러지는 것처럼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산모와 태아의 외상 및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해 ‘예방적 겸자술’을 고안했다. 이 시술은 회음절개를 크게 해서 산도 입구를 넓히고, 겸자를 삽입해 태아를 끌어당기는 방법이다. 이 방식으로 미국에서 몇십 년 동안 겸자 사용이 대중화되었고, 다른 어떤 시술보다 산모와 태아에게 더 많은 외상과 통증을 일으켰다.” --- p.150
“태아가 출구를 향해 나오는 순간, 밀어냄이 매우 격렬해져서 이 순간을 “불의 고리”라고도 부른다(혹시라도, 그 느낌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양쪽 입가에 집게손가락을 걸고 별이 보일 때까지 계속 끌어당겨 보면 된다). 겸자는 질이 자연적으로 벌어지는 것보다 더 넓게 질을 벌리고(입이 찢어지고 피가 날 때까지 양쪽 입가를 손가락으로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질 입구가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아기를 잡아당겨 끌어낼 수 있다(빠른 속도로 있는 힘껏 양쪽 입가를 한번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 겸자를 서투르게 사용하면, 산모의 부드러운 조직이 갈가리 찢기고, 태아의 귀와 코가 거칠게 뜯어지며, 두개골이 움푹 파이는 등 태아를 다치게 한다.” --- p.151-152
“문화적 금기로 말미암아, 여성들이 편안한 자세로 분만하는 것을 가로막는 시대도 있었다. 특히 빅토리아시대에는 누워서 분만하는 방법을 권장했다. 이 자세는 여성스럽게 보이지만 분만 원리에는 맞지 않고, 태아의 머리가 엄마의 척추를 누르고 있어 허리 진통이 있는 경우에는 몹시 아플 수도 있다.” --- pp.155
“하나님은 이브에게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이 구절로 말미암아 서구의 여성들은 수백 년 동안 출산 시 통증 완화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여성의 산고를 덜어 주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힘썼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 pp.158-159
“경막외마취는 신이 여성들에게 주는 선물인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경막외마취를 한 산모들에게는 자궁수축을 강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피토신 같은 인공적인 자극이 필요했다. 산모는 혈압이 떨어질 수 있고, 열이 날 수 있으며, 소변을 보기가 어려워 도뇨관을 삽입할 수도 있다. 허리 아래로는 감각이 없어 힘줘서 밀어내기가 어렵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분만할 때 겸자나 진공흡인기가 필요해 더 큰 위험이 따르기도 한다. 경막외마취가 제왕절개 가능성을 높이지 않는다는 연구가 있지만, 이와 관련된 논쟁은 뜨겁다.” --- pp.185-186
“1733년 의사들은 파리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태아가 질식 분만으로 태어날 수 없을 때, 치명적인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 제왕절개술을 시행해 산모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종교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신학자들은 산모와 아기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아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답했다. 아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세례를 받지 못할 경우, 아기의 영혼이 연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 p.198
“최근 수십 년간 선진국에서 종교적인 믿음이 변하고, 피임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부모들은 하나, 둘, 어쩌면 셋 정도의 자녀를 갖는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은 임신과 출산이 매번 완벽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기대는 의료 과실에 대한 의사들의 두려움과 결합되면서, 합병증의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을 경우 제왕절개를 선택하거나, 제왕절개술에 쉽게 동의하게 된다.” --- p.218
“의학적인 필요가 없음에도 여성들이 제왕절개를 요구할 수 있는지는 끊임없는 논쟁거리다. 많은 의사들과 분만 운동가들은 제왕절개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유럽의 한 학회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33퍼센트에 이르는 산부인과 의사들조차, 심지어 위험하지 않은 임신인 경우에도 그들 자신과 배우자가 출산할 때, 제왕절개술을 선택했다고 응답했다.” --- p.229
“한때 반마취(트와일라잇 슬립)가 유행했다가 사라졌다. 또한 겸자 사용이 한동안 유행하더니 다시 사라졌다. 어떤 의사들은 회음절개를 하지만, 어떤 의사들은 회음절개를 하지 않는다. 이처럼 한때는 최신 기술이었던 것이, 그다음 해에는 유행에 뒤떨어져 왜 한때나마 그런 기술이 유행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엉터리 기술을 비웃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 나온 ‘손쉬운’ 출산법에 환호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곧 그것이 초래한 악영향에 기겁한다.” --- p.299
“사실 그동안 출산과 관련해 산과학에서 유행했던 것들은 기술이나 방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도구였다. 수세기에 걸쳐 각 시기별로 유행했던 산과 도구들을 하나씩 나열하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난산,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무지몽매한 시도들, 어리석음 등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 p.301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산과 도구가 점점 더 정교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좀 더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산과 도구들의 모양은 집도의가 좀 더 편하게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변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p.303
“분만을 유도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사용된 또 다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관장이다. 임산부의 항문에 따뜻한 물을 넣는 것은 고대의 전통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관행은 처음에는 관장이 분만 유도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산파들에 의해 널리 알려졌고, 그 후에는 힘을 주는 만출기 동안의 우발적인 배변으로 말미암아 산욕열에 전염된다고 믿는 의사들에 의해 전파되었다.……그러나 1981년 영국에서 행해진 연구에 따르면, 조산사와 임산부를 무작위로 선정해서 관장한 그룹과 관장하지 않은 그룹으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 이들 사이에는 진통 시간 혹은 출산 중 배변 여부에 차이가 없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 pp.324-325
“의사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누워서 분만하는 여성이 드물었다.” --- p.327
“아빠가 임신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조차 아빠는 다른 이유로 출산에서 배제되었다. 무엇보다, 여성의 정숙함은 신성불가침이었다. 남성은 더럽고,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남성이 출산을 지켜보는 것은 부도덕하고, 불쾌하며, 노골적이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 p.360
“20세기 이후 병원 분만이 보편화되면서 남성은 출산 과정에서 더욱 소외되었다. 아내를 병원 입원 수속 창구에 데려다 주고 나면, 남편은 다시 일하러 가거나, 집으로 돌아가 다시 잠을 잤다. 진통으로 말미암아, 아내가 소리를 지르고 저주를 퍼붓는 동안, 남편은 술집에 가거나, 야구를 시청하거나, 잔디를 깎았다. 정 갈 곳이 없으면, 병원 복도를 서성거리며 기다리기도 했다. 마침내 병원 시설이 확대되고 현대화되면서 예비 아빠들은 분만실 근처에 마련된 대기실에 머물게 되었다.” --- p.363
“아기가 태어났다고 출산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자궁은 태반을 배출하고,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기 위해 수축을 계속한다. 그동안 누군가는 탯줄을 자르고, 남은 부분을 소독해야 한다. 태반은 꼼꼼히 살펴본 후에 처리해야 한다. 산모의 입장에서는 휴식이 필요하겠지만, 신생아의 입장에서는 먹어야만 한다.” --- p.389
“대부분의 포유류는 출산 직후에 어미와 새끼가 분리되면, 대체로 어미가 자신의 새끼를 돌보지 않고 거부한다. 물론 대부분의 여성이 출산 후에 아이와 분리되었다고 자신의 아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도 드물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초기에 분리된 상태로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 p.413
“출산 후 약 하루 동안의 엄청난 호르몬 변화는 일부 여성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은 임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출산 후에는 임신 전에는 나타날 수 없는 수치로 급격히 떨어져, 많은 산모들이 출산 후 적어도 몇 주 동안 슬프고, 짜증나고, 침울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일부 여성에서는 ‘산후 우울감’baby blues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산모의 10~20퍼센트는 중증의 산후 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을 겪는다. 산후 우울증을 겪으면 신생아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밥을 먹거나 잠자는 것과 같은 일상의 삶을 거부한다. 1퍼센트의 산모는 산후 정신병postpartum psychosis으로 발전되는데, 환각, 자살이나 살인 충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 p.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