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작은 이들의 덕입니다. 배부르고 만족한 사람들은 희망할 줄 모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작은 이들은 하느님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절망과 고통으로 점철된 고독 가운데 유배를 겪는 광야의 여정에서, 주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해 주는, 평탄한 길로 바꿔 주는 작은 이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이 우리를 가르치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 p.33, 「새롭게 미소 짓다」중에서
여러분은 우리가 희망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일 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 더 이상 믿음을 유지하기 힘들고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 소식을 전하는 이가 한 걸음에 달려와 우리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 줍니다. 하느님께서 뭔가 새로운 것을 이루기 위해, 평화의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오고 계신다는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품을 드러내시고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십니다.
--- p.44, 「우리가 희망하는 이유」중에서
희망은 우리의 여정 중에 언제나 존재하며, 우리로 하여금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합니다.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께서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이 희망은 현재를 위한 원대한 목표, 즉 인류를 위한 구원, 자비하신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는 사람을 위한 지복을 제공해 줍니다.
--- p.55, 「새싹이 움트다」중에서
희망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히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꿈꾸게 합니다. 또한 미래의 빛을 바라보는 가운데 불확실하고 어두운 상태 속에서도 나아가게 해 줍니다. 이 망덕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이 덕은 우리가 인생의 여정에서 굳건히 걸어가게 하는 많은 힘을 전해 줍니다.
--- p.68~69, 「믿음의 아버지」중에서
대림 시기와 성탄 시기는 하느님 백성 안에서 희망을 다시금 일깨우는 전례 시기입니다. 희망은 인간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미래를 희망하는 것, 삶을 믿는 것, 이것은 소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우리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대답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p.97, 「우상에 대한 믿음」중에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결코 하느님께 어떤 조건도 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희망하는 가운데 두려움을 이겨 내야 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은 그분께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은 채, 그분이 마련하신 계획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과 도움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 p.131, 「희망의 언어」중에서
우리는 내가 바라는 일이 일어나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바람입니다. 예컨대 이렇습니다. “내일 날씨가 좋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날씨가 나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이미 이루어진 어떤 것에 대한 기다림을 말합니다. 바로 거기에 문이 있습니다. 저는 바로 그 문에 이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면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문을 향해 걷는 겁니다! 저는 제가 그 문에 이르게 되리라는 걸 확신합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희망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어떤 것을 향해 걷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 데 있습니다.
--- p.148~149, 「기다림의 여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