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
게검스러운 시간이여, 사자의 발톱 무디게 하고
땅으로 하여금 자신의 달콤한 자식들 삼키게 하며
사나운 범의 턱에서 날카로운 이빨 뽑아 버리고
장수한 불사조 산 채로 불살라 버리라.
빠르게 지나갈 때 좋은 절기와 험한 절기 가져오라.
발 빠른 시간이여, 드넓은 세상과 거기서 사라지는
모든 달콤한 것들에 하고 싶은 짓 마음껏 행하라.
그러나 그대에게 가장 끔찍한 죄 하나를 내 금하노니
내 사랑의 아름다운 이마에 그대 시간의 자국 새기지 말고
부디 그대 낡은 철필로 거기에 줄 긋지 말라.
그대 발길에 내 사랑 때 묻지 않게 하라,
후세 사람들에게 미의 표본 되도록.
늙은 시간이여, 한껏 횡포 부려 보라.
그대 해악에도 내 사랑 내 시 가운데 영원히 젊게 남으리.
--- p.27
55번
대리석도, 군주의 도금한 기념비도,
이 막강한 시보다 오래가지 못하리라.
더러운 시간의 때 닦아 내지 않은 묘석보다
그대 이 시 속에서 더 밝게 빛나게 되리라.
파괴의 전쟁이 동상들 쓰러뜨리고
난리로 석공의 작품을 뿌리째 뽑힐 때
마르스의 칼도, 전쟁의 타오르는 불길도
그대 기억한 살아 있는 기억 태우지 못하리니.
--- p.63 중에서
99번
이른 제비꽃을 나 이렇게 나무랐으니,
향기로운 도둑이여, 내 임 입김 아니면
어디서 그 향기 훔쳤을까?
네 부드러운 뺨에 빛깔로 깃든 주홍빛 화려함
내 임의 혈관에서 분명 물들인 것이리.
그대의 손 훔쳤다고 나 백합 비난했고,
그대의 머리채 훔친 박하 꽃봉오리 비난했으니.
장미들 겁에 질려 가시 줄기에 서 있네.
--- p.107 중에서
120번
그대 한때 무정했음이 이제 내게 위안 되어라.
나 그때 겪었던 그 슬픔 때문에
내 잘못 앞에 고개 숙여야 하느니,
나의 삭신 놋쇠나 강철로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그대 때문에 나 그랬듯이, 나의 무정으로
그대 상처 입었기에, 지옥 같은 시간 보냈기에.
그런데도 폭군인 나는 그대의 부정으로
내가 한때 받은 고통 행각할 여유 없었으니
아, 진정한 슬픔 얼마나 가슴 저린 것인지
고통에 찬 우리 이별의 밤이 환기시킬 수만 있다면,
그대 그때 내게 친히 하였듯
그대 상처 입은 가슴에 참회의 고약 발라 드려야 할 것을!
그러나 그대의 부정이 이제 보상이어라,
나의 부정 그대 부정 되갚고, 그대 붖어 나 속죄하므로.
--- p.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