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늘 웃고, 친절하고, 사교성 넘치는 당신, 사실은 늘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사는 게 힘들다고 느낄 때, 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 당신은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가? 혹시 그 고민을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 또 고민하다가 그냥 마음속에 묻어버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가족, 친구, 연인, 학교 선후배, 직장 동료… 이렇게 많은 관계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사소한 고민 하나 마음 놓고 털어놓을 데가 없다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오늘도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며 위로를 삼았다. “그래. 세상에 외로운 건 나 혼자만이 아니니까.” 어제 만난 동료도 위로를 해준답시고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외로운 게 너 하나만은 아니잖아?”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이건 위로가 아니라 절망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외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외로운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는 게 과연 어떤 도움이 될까? 정말로 외로운 게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어설픈 위로로 방바닥만 긁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방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외로움을 이기는 힘」중에서
지금 외롭다고 느끼는가? 이 책이 당신의 외로움에 대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줄 것이다. 정작 본인은 뭔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있으면서 아무도 자신에게 말 걸어주지 않는다고 탓하고 있는가? 삶의 속도를 줄이고 그 줄인 만큼의 시간을 이 책을 읽는 데 잠시 쓰시길 권한다. 세상이 너무 혼잡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당신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 혼자 있고 싶은가? 그 시간을 보낸 다음 문을 열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려 할 때 이 책을 챙기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이토록 처절한 외로움의 시대를 건너기로 결심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든든한 동반자가 되기를. 때때로 믿고 의지할 만한 지도와 나침반이 되기를 진심 바란다. 이제 항해를 시작하도록 하자.
목적지는 ‘사람’이다. ---「외로움을 이기는 힘」중에서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신이 길을 걷고 있을 때 장문정이 다가가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며 전단지를 건넨다. 당신은 경기를 일으키듯 손사래를 치며 종종걸음을 내뺄 것이다. 이번엔 같은 장문정이 다시 다가가 “실례지만 길 좀 여쭐게요. 강남역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에 당신은 걸음을 멈추고 친절하게 안내해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제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라. 직장에서 일 때문에 만나고, 공부나 취업 정보를 얻기 위해 만나고, 자기계발을 위해 만나고, 같이 운동할 사람이 필요해서 만난다. 우리는 길에서 도를 묻는 사람을 피하지만 정작 실제로는 도를 묻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누군가를 찾고 있다. 내가 무언가를 주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찾고 있다. 그러니 이웃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많던 이웃은 다 어디로 갔을까?」중에서
“쉬어라”, “내려놓아라”라고 외치는 서점에 깔린 수많은 힐링 책들엔 재미난 공통점이 있다. 겉으로는 휴식이나 휴休테크를 가르치지만 정작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쉬어라”, “내려놓아라”, “자신을 사랑해라…” 그것도 강요다. 말랑말랑한 포장지 속에 감춰진 강요에 의한 휴식은 그저 더 많은 노동을 위해서 잠시 쉬는 시간일 뿐이다. 내게는 이런 풍경이 거짓된 꿈과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라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는 결과적으로 전진하라는 말이니까. 한국이 왜 ‘피로사회’인지 나는 여기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한국은 쉴 때조차도 죄책감을 느끼는 나라다. 직장인들은 주어진 정당한 휴가를 제대로 다 쓰지도 못한다. 나를 억지로라도 쉬게 해주는 건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감기 몸살과 집안 경조사뿐이다. ---「공회전하고 있는 삶의 시동을 꺼라」중에서
사회는 결코 자족하는 마음을 권하지 않는다. ‘독해지라’는 말이 해독이 안 될 만큼 체내에 독으로 쌓이고 있다. 나도 지난 20여 년간 대기업에서 근무했지만 기업은 늘 ‘전진하라’, ‘더 높이 오르라’는 독려밖에 모르더라. 언젠가 모 대기업의 연수원에 갔다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글귀가 크게 나붙은 걸 보았다. ‘백 척이나 높은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말로, 자신의 한계에서 더 발전하라는 뜻이다. 지금 생각하니 뭐래? 떨어져 죽으라구? 이겨내라는 독려의 말이 당신의 여유를 착취하고 그 보상으로 외로움과 우울을 선사하고 있다. 한계를 넘어서라는 응원의 말이 당신을 탈진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넌 할 수 있어!” 그래서 난 피곤해! ---「“넌 할 수 있어!” 그래서 난 피곤해」중에서
외로움에 관한 설문 조사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답변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나에게 친구란 경조사 용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친구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밟고 올라가는 잠시 ‘빌린 사다리’에 불과하다. 목표에 도달한 다음에는 사다리를 빌려줬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도 못할 게 분명하다.
당신도 혹시 겉으로는 친구라 부르지만 속으로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라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 어쩌면 당신이 친구라고 믿어왔던 사람에게 이해관계자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계산적 만남, 목적 있는 만남, 당위성에 사로잡힌 만남, 이유 있는 만남, 만나야 하기 위한 만남이 판을 치고 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해서’ 만나라」중에서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해요.”
세상에 이 말처럼 함축적인 표현이 있을까? 밥 먹자는 말은 친해지자, 또 만나자, 깊이 있게 대화하자, 교류하자, 속 이야기 나누자, 벗이 되자 등등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는 ‘꼴로까시옹colocation’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본래 뜻은 집을 나누어 사용한다는 것인데, 그 목적은 집을 가진 노인이 무상으로 젊은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함께 사는 데에서 출발한다. 단, 필수 조건으로 주 5일 저녁 식사를 같이해야 한다.
밥을 같이 먹고 싶어서 집까지 제공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신은 다른 사람과 밥을 함께 먹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가? 밥을 함께 먹는 것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동시에 건강과 원기를 회복시키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무엇보다도 저마다 외따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개개인을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혼자 밥 먹지 말자. 하다못해 깻잎무침 집어먹을 때 들러붙는 깻잎을 젓가락으로 잡아주는 고마운 손길이 얼마나 따뜻한지 기억한다면 말이다.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합시다!」중에서
우리는 그동안 너무 외롭게 살아왔다. 이 책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외로움의 골방을 박차고 나오기를 바란다. 이 책은 다만, 당신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덜 외로울 수 있도록 이 처절한 외로움의 시대를 함께 건너자고 내미는 만남의 손길이다. 사탕발림 같은 위로와 허황된 성공 방정식이 판치는 말들에 휘둘리지 말고 자존감을 되찾자. 누군가 손 내밀어주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자. 그게 시작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하나의 의미가 될 것이다.
---「서로 내민 손을 잡고 함께 가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