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고통스럽고 불쾌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불안이 공기처럼 스며 있기 때문에 불안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다. 불안은 인간이 관계적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은 물론 타자, 세계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다. 그 관계 맺음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바로 불안이다.
---「들어가며」중에서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여러 요인에 의해 형성되며, 개인마다 편차가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질병을 실체화하면서 이런 관점을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캉길렘에 따르면 질병은 고정된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으로 만들어지며, 정상 개념도 평균 개념에 가깝다. 정상 개념은 객관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어떤 실체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병리적인 것 역시 정상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상을 개체 자체에 내재한 속성이 아니라 환경과 개체의 관계 속에서 연속적으로 변하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개체 간의 차이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캉길렘은 정상이나 비정상 상태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에서 비롯되기에, 사회 환경이 바뀌면 비정상 상태가 정상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명 속의 고통」중에서
불안에는 환경이나 상황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기질이나 상황을 해석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더 크게 작용한다. 또 두려움이나 스트레스보다 불안은 범위가 더 포괄적이고, 여러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불안을 인과관계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질병으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공동체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불안장애는 지금의 코로나 상황처럼 어떤 불확실성uncertainity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 방어 심리·성향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불확실성이나 위험 상황은 객관적 지표라기보다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상태다. 불안은 상황에 대한 각자의 심리적 대응이고, 방어 심리도 공격성이나 파괴성의 발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꼭 특정 상황에서만 불안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불안은 복합적이며 환경과 주체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실존적 정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일상 속에 있는 불안」중에서
불안은 오히려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이자 실존적 존재인 인간이 지닌 고유성의 증표다. 실존적 존재라는 것은 개별자라는 뜻이고, 우린 개별자로서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나 자신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지닌다. ‘나다움’ 혹은 ‘고유성의 실현’이 중요한데, 자신도 모르게 세속에 물들면서 자신의 본질을 잃어갈 때 불안은 경종을 울린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나의 고유한 실존이 대상화되거나 물화될 때, 우리는 위기 징후로서 불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대상화나 물화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쉽게 빠지는 길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타인의 삶과 세상이 만든 기준이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수동적 삶에 처하기 쉽기 때문이다.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부터 사회적으로 동경하는 멘토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영향을 받고 이들을 모방하고자 하는가?
---「불안의 긍정성」중에서
타자는 내게 욕망을 가르쳐주는 모델 역할을 하지만, 사회에 자원이 한정된 탓에 경쟁이 발생하면 타자를 미워하며 집단폭력을 행사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지라르에 따르면 모방적 욕망은 상호 폭력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러한 폭력성이 개인에게서 개인으로 전파되면서 집단 갈등을 부른다. 이런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인간은 필연적으로 희생양을 찾는다. 모방에서 비롯되는 폭력은 ‘희생적 폭력’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이나 기득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이대남 현상도 모방적 욕망의 충돌을 완화시킨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혐오나 공격은 욕망의 좌절에서 비롯된다. 그런 부정 에너지가 내부로 향하면 우울감과 불안이 생기며, 심해지면 자기나 상대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개인이 고갈되는 사회」중에서
불안을 ‘자기치료’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공동체 관계 속에서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관계 맺는 존재고, 타자와 함께 살면서 영향을받아 본질이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페르하에허에 따르면 정체성에서 타자와 외부세계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타자에게서 어떤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 닮으려고 하며 동시에 타자와 우리를 구분하기 위해 분리 노력을 하는 데 정체성은 이런 과정의 산물이다.* 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내면에 더 깊이 들어와 있으며, 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불안에 대한 이해와 행복의 실현」중에서
불안은 애도의 부재에 대한 경종으로, 우리가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욕망에 필요한 결여가 메워지면서 내 존재의 틈이 없어질 때 느끼는 정서가 바로 불안이기 때문이다. 불안은 인간이 타자와 관계 혹은 나의 진정한 욕망을 찾고 그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나침반이다.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윤리는 자신의 욕망에 철저한 것이다. 나의 욕망을 알고, 그것에 충실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우리의 정신도 건강해질 수 있다.
---「애도mourning를 통한 욕망의 발견」중에서
욕망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갈망이자 삶의 의지다. 내 욕망을 찾기 위한 성찰, 멈춤, 대화, 탐색 등 모든 과정 자체가 곧 치유다. 그 치유의 중심에는 나와 나의 관계, 나와 타자의 관계, 나와 세계의 관계가 있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게 촘촘하게 작동하는 사회 그물망으로 얽혀 있다. 심해지는 불안은 이런 그물망이 억압하는 자신을 살피라는 무의식이 보내는 경고다.
---「불안은 파르마콘과 같은 것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