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라는 존재가 겪는 어려움은 여러 방면으로 존재하지만 늘 새로운 문명을 가지고 올라오는 세대와 최전선에서 만난다는 것도 큰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는 새로운 문명과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온 새로운 변화를 온몸으로 겪는 최초의 사회적 존재가 교사입니다. --- p.21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와 지하세계를 전전하며 사는 첫 세대. 이들이 생각하고 경험하고 상상하는 생태계는 정말 다릅니다.
예전에 사회로부터 요구받던 학교의 역할이 현실 속에서 변화하고 있고, 그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고, 교실에 모여 있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필요로 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무엇일까요? (...)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와 다르다는 것을 듣고, 나눈 뒤에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차이가 전과는 달리 엄청나게 큽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함께 꿈꾸고 기획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점도 많고 또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점도 많습니다. 이런 변화 가운데서 학교가 할 일, 교실에서 일어나야 할 일, 이를 지도하기 위해 교사가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아이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 pp.26~27
바쁜 부모, 바쁜 선생님, 나에 관해서는 관심 없고 내 성적에만 관심이 있는 어른들과의 관계 속에 결핍상태에 처한 아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활동은 ‘만남’입니다. 마르틴 부버가 말한 그런 성스런 만남이 아니더라도 그저 ‘살고 있고, 살아가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만남을 아이들은 필요로 합니다. 시시하지만 너와 나를 접착시키는 ‘그냥 사는 것에 관한 궁금함과 그냥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건네받는 만남 말입니다. --- p.43
교실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들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이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교과 과정’에 해당한다. 교사들은 대개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들은 교사가 가르치지 않은 것에서도 배운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은 교사가 가르치지 않은 것에서 더 많이 배운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 p.60
배우러 온 아이들은 교사를 존중하지만 놀러 온 아이들에겐 교사가 중요하지 않다. 싸우러 온 아이들은 싸우다 걸렸을 때 규칙을 적용하는 사람이 교사이기 때문에 교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처럼 어떤 이유로 학교에 왔는지에 따라서 아이가 교사나 다른 아이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 달라진다. 학교에 와서 선생님을 피해 다니는 아이가 있고 오로지 선생님만 바라보는 아이도 있다. 아이가 학교에 나오는 힘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교실에서 그 아이의 관계나 활동을 파악하는 기초 자료이자 아이의 행동을 예측하는 기본 정보가 된다. --- pp.73~74
한 반에는 게임을 같이 하는 아이들,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아이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비행에 관심 있는 아이들,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 같은 학교 출신인 아이들이 각각 그룹을 형성해서 저희끼리 역동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사회의 축소판 같은 이 서브 그룹들의 역동이 교실에 큰 영향을 미친다. --- p.81
부모나 교사가 줄줄이 설명한 다음에 ‘자, 명심해’라고 말하면 ADHD 아이들은 ‘무엇을’ 명심해야 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명심하라’는 말만 기억한다. (...) 요즘은 초등학교 수학 문제도 질문이 긴 경우가 많아 문제를 읽다가 앞의 내용을 까먹기도 한다. 또 호기심이 많고 지루한 것을 못 참는다. 가끔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뭔가에 빠지면 다른 건 다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이 정도로 중독 성향이 강한 아이들은 ADHD일 가능성이 높다. ADHD 증상을 어렸을 때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성장하면 더 악화되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 배려받으면서 자라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 --- pp.142~143
교사로 사는 일이 재미없어지고 지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안에 없는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정의를 모르는데 정의를 얘기해야 할 때, 수학적 정리를 모르는데 문제만 풀 때 교사는 소진된다. 이것이 바로 파커 파머가 내린 소진의 정의이다. 가르치는 자, 배움을 나누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꽉 차 있어야 한다. 내 안이 가득 차 있어야 남에게 줄 수 있다. 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매번 수업에 들어가는 행위를 반복해야 한다면 교사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교실 안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교사는 자신에게 난 화를 쉽게 아이들에게 돌리게 된다. --- p.220
많이 준비한 일이 실패했을 때 교사는 아이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성공하는 학급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성공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 교실이 실패의 무덤에서 성공의 축제장으로 변하려면 교사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 p.244
현재까지 돌봄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합의된 것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OECD보고서에 따르면 학교를 다닐 시기에 교욱을 중단하는 것은 평생의 위기이며, 특히 빈곤 가정일 경우 빈곤을 대물림하는 핵심적인 위기가 된다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학교생활은 아이들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 p.284
교사는 아이들에게 빛이 어디서 비추는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교사, 선생님, 스승에 대한 비유는 흔히 등불이기도 하였다. 이 시대 속에서, 앞으로도 그렇게 되려면, 교실로부터 출발하여 사회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어디로 어떻게 향해야 하는지를 함께 토의해야 한다. 오늘날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회적 어젠다로 제시하며 여럿이 함께 사회의 준비를 촉구해야 한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또한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은 일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실 안에서의 제도를 바꾸는 것은 사회의 제도를 바꾸는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말한 대로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인식이 현실감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을 시작할 수 있다.
--- p.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