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에 어찌어찌 취직을 했지만 회사와의 계약기간이 끝나갈 무렵, 유럽에 있을 친구들 생각이 문뜩 들었다. 꼭 다시 보자며 약속했던 그때가 언제였던가. 이제 보니 벌써 4년이 지나있었다. 많이도 미뤘다. 이제는 진짜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젊은 20대, 가장 파란만장한 시기에 만났던 친구들이 지금은 어찌 살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난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2018년 11월 12일,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의 젊은 20대를 위해, 4년 전 친구들과의 약속을 위해, 11시간의 비행을 시작으로 59일간의 나의 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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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노래 덕에 이름만 알고 있던 룩셈부르크는 수도와 국가 이름이 같을 만큼 작은 도시 국가였다. 이 작고 볼 거 없는 나라에 온 이유는 한 가지, 룩셈부르크 은행에서 일하는 프랑스 귀요미 맥심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많이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내가 온 걸 너무나 반겨줘서 안 갈 수 없었다. 유럽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호주 친구라 왠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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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와플, 감자튀김, 오줌싸개 동상 등등 벨기에를 상징하는 것들은 꽤 많다. 그러나 나에게 벨기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첫 벨기에 친구이자 첫 룸메이트 중 한 명이었던 라우라다. 4인 1실을 2개월 넘게 나눠 쓰며 살았던 가족과도 같은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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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캐리는 프랑스어로 3단어만 말할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샤넬, 샤넬, 샤넬!”
나 역시 프랑스어 3단어를 준비해 갔다.
“멕시, 실부쁠레, 올랄라(감사합니다, 부탁해요, 세상에나).”
특히 올랄라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단어다. ‘어머나, 아이쿠, 맛있다, 대단하다, 이럴 수가’ 심지어 ‘저는 불어를 못해요(?)’까지. 우리나라의 ‘거시기 그 저 거시기하다’ 정도 되는 듯싶다.
단어 3개만으로 나의 파리 여행은 막힘없이 흘러갔다.
--- p.32
바다가 주변을 돌다가 맥심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바닷가에 뜬금없이 세로 철봉을 발견했다. 내가 올 초부터 처음으로 배워보기 시작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바로 폴댄스! 폴 댄스 좀 한다는 사람들의 로망이 해외여행 중 해변 앞에서 폴을 타는 것이다. 내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외투를 벗고 조심스레 폴에 올라타려는데 별안간에 웬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내가 폴 타는 걸 니글니글 웃으며 구경하더니 내 번호를 물어봤다. 수염마저 하얀 이 할아버지께서는 두 번째 아내를 찾고 있다고 하셨다. 포르닉이라는 도시 이름에 딱 맞는 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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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내가 알고 있던 또르띠아는 멕시칸 또르띠아였다! 스페인에서 말하는 또르띠아는 감자 오믈렛을 말하는 것 이었다. 아니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른데? 튀긴 감자가 고소하게 씹히는 푸근한 또르띠아였지만 먹는 내내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유럽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 p.68
큐브 덕분에 로렌조라는 이탈리아 훈남과 얘기를 텄다. 밀란까지 가는 기차 안이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로렌조는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왔다. 나는 한국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갑자기 옆자리에서 “어? 한국인이세요? 저도 한국 사람이에요. 나도 큐브 할줄 아는데!” 흥을 깨는 한국 남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고개를 돌려보니 로렌조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뒤로 “역시 동양인들은 수학을 잘해~!”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만 오고 갔다. 하아 이게 아닌데!
로렌조에게 한국을 큐브쟁이들의 나라로 만든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 p.100
지미는 사실 호주도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만난 친구다. 시드니에서 사귀었던 일본 친구를 보러 교토에 갔다가 호스텔에서 만났다. 딱 하루 본 사이지만 지미는 워낙 착하고 웃음이 많아 금세 친해졌다. 그 지미를 오늘, 베를린에서 다시 만난다! 내가 베를린 공항에 내린다고 하자 공항까지 나를 데리러 친히 나와 줬다.
네덜란드인답게 키가 190이 넘는 지미는 공항에서 한 마리 기린처럼 거닐고 있었다.
‘지미, 여기야 여기! 네 무릎 근처!’
--- p.116
파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에펠탑이었다. 낮에 본 에펠탑이 무뚝뚝한 아저씨였다면, 밤의 에펠탑은 무대에선 디바처럼 화려하게 빛났다. 유럽 여행 중 가장 좋은 기억이 남은 이곳 파리, 그리고 그곳의 얼굴 에펠탑!
“안녕!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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