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후지이는 고향 집을 떠나와 도쿄의 한 공장에서 기계설계 일을 하며 혼자 살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한테서 ‘북’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는다. 북은 재수 시절 내내 함께 붙어 지낸 귀여운 개로, 도서관에서 주웠다 해서 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요시미는 북 얘기를 듣고 오토바이를 타고 북을 만나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나의 그녀 요시미와는 친구의 소개로 만나 사귀어온 여자친구이다.
나는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자전거보관소에 처박아둔 오토바이를 끌어내 손보기 시작한다. 카뷰레터를 분해해 세정하던 중 나는 갑자기 그녀에게 청혼을 하고 그녀는 순순히 청혼을 받아들인다. 청혼하고 나서 하룻밤이 지나고 둘이 함께 맞는 아침, 그녀와 함께 토스트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양치질을 하면서 나는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본다. 더 이상 좋아질 것 없이, 그대로 곧장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수리가 끝난 오토바이를 타고 나는 북을 만나러 간다. 귀가 멀어버린 북은 더 이상 엔진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잠들어 있지만, 털을 쓰다듬는 내 손바닥의 익숙하고 그리운 감촉만은 그대로였다.
도쿄로 돌아온 나와 그녀는 결혼 연습 삼아 함께 살아보기로 한다. 그녀의 공간을 마련하고 공동으로 쓸 통장을 마련하는 등 ‘그녀가 내 집으로 시집오는 날’을 위한 준비는 착착 진행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베란다에서 쌀알을 뿌리고 케이크를 먹고 그녀가 혼수로 가져왔다는 머그컵에다 홍차도 끓여 마신다. 밤에는 시처럼 아름다운 결혼맹세 글을 읽으며 둘만의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둘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수많은 계획을 세우는 사이 둘은 취향까지 자연스럽게 비슷해진다.
십이월 초 어느 날 그녀가 감기에 걸리는가 싶더니, 나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하면서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회사를 잠시 쉬기로 하고 치바의 부모님 댁으로 내려간다. 그녀가 없는 낯선 일상을 묵묵히 보내고 있는 내게 그녀가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녀를 만나러 치바로 내려가는 동안 오로지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만 생각하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도 의연한 그녀를 생각하면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입원, 수술, 그녀는 진행3기 난소명세포성선암을 진단받았다. 힘겹게 병마와 싸우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석 달 선고를 받았고, 정말 석 달 후에 그녀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술만 마셔댄다. 그녀와의 지난날을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백 일 동안 매일 취하도록 마시고 눈물을 흘린다. 그녀를 위해 울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물 같은 술을 마시고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죽은 지 백일이 지나갈 무렵 그제야 나는 그녀가 부탁했던 열리지 않는 상자를 만든다. 그리고 그녀의 물건들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없는 삶을 살겠다면서.
그녀가 죽은 지 이 년이 흐르고 나의 생활은 달리진 듯하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는 상자는 탁자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어느 휴일 아침 북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간다. 그리고 둘이 가던 강 둔치에 묻어주려고 오토바이를 달린다. 그녀가 오토바이에 감아준 시계를 북과 함께 묻고 나서, 북을 위해 되살려낸 오토바이도 폐차하기로 한다.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으며 나는 그녀를 향해 외친다.
“괜찮지……. 괜찮지……. 이제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