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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속 고전 (큰글자도서)

내 서재 속 고전 (큰글자도서)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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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속 고전
[도서] 내 서재 속 고전
서경식 저/한승동 역 나무연필
10% 12,600
내 서재 속 고전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189*273*20mm
ISBN13 9791187890348
ISBN10 118789034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원래 어떤 책도 짧은 문장으로 그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순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책에 접근하려 할 때 내가 활용하는 내 나름의 방식의 ‘단면’을 제시한 것이고, 나와 ‘고전’ 간의 대화에 관한 기록이다. ‘단면’이 같은 모양새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기 나름의 ‘단면’으로 자신만의 ‘고전’을 찾아내고 그것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과정이야말로 형식화한 지식이 아니라 진정한 지적 태도로서의 교양이며, 인간을 단편화하려는 힘에 맞서는 저항이다.---「머리말」중에서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르상티망(원한)을 토로하진 않는다. ‘신’이나 ‘운명’ 같은 초월적인 관념을 만들어내서 분노나 슬픔을 터뜨리거나 거기에서 위로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자기 자신도 용서 없이 까발린다. 그는 다만 깊은 절망의 양상들을 과학자와 같은 솜씨로 해부한다. 냉혹하기조차 한 분석과 기술이 어디까지나 지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레비가 인생 마지막에 이 책을 남긴 것은 타인에게 사실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증언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증언을 그 사람들을 향해 말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그는 이 증언을 써서 남겼다. 개인의 생물학적 생명 이상의 가치(일단 ‘진실’이라고 해둘 수밖에 없다)를 위해. 그리하여 레비는 설사 아무리 절망적인 것일지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의,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진정한 지적 즐거움’도 우리에게 준다. ---「살아남은 인간의 수치, 그럼에도 희망은 있는가: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중에서

그는 죽음을 앞두고 집필한 『오리엔탈리즘』 신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내가 의도한 것을 ‘인문주의(휴머니즘)’라 불러왔다. 이 말을 세련된 포스트모던 비평가들은 바보 취급을 하며 물리쳤지만, 나는 완고하게 계속 써왔다.”
구미 지식인들 다수가 이미 잃어버렸든지 포기해버린, 이 완고해 보이기조차 한 ‘인문주의’ 정신에서 나는 ‘최후의 승리의 필연성’ 따위를 설파하는 어떤 연설보다도 더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최후의 승리의 필연성’ 따위를 입에 올릴 수 없게 된 시대에 그래도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사이드라는 존재는 큰 격려였다. ---「현대의 지식인들이여, 아마추어로 돌아가라: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의 표상』」중에서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여행의 즐거움은 문자 그대로 불안과 동요의 증거라는 것을. 그러나 이 불안과 동요는 모두 우리 인간의 중요한, 그리고 지배적인 특질이다. (……) 그밖에 무엇 하나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 없더라도 다양성을 포착할 수만 있다면 나는 만족한다.”
여행의 대선배가 내린 지언(至言)이다. 자기 속에 좁게 틀어박혀 자족하기보다 설사 불안과 동요가 있더라도 타자와의 만남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을 포착할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 그렇다. ‘관용’이란 자기만족적인, 높은 곳에 서서 타자를 연민하는 태도가 아니라 생기발랄한 인간적 관심으로 ‘다양성’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16세기 인문주의자가 21세기라는 불관용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다.---「관용은 연민이 아니라 생기발랄한 관심이다: 미셸 드 몽테뉴의 『몽테뉴 여행 일기』」중에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벗이나 지인 들에게 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면 재빨리 화제를 바꿔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칫하면 불쌍히 여기거나 위로해주기까지 하는 통에 오히려 내가 당혹하게 된다. 죽음의 관념을 더 길고 넓은 문맥 속에서 다시 살펴보는 것은 인간이 정신적으로 자립한 존재로서 인생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게 금기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삶에 대한 사고를 스스로 방기하는 것과 같다.---「죽음을 금기시한다는 건 삶을 방기하는 것: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중에서

만사를 금전적 가치나 사회적 지위라는 척도로 재단하고 서열을 매겨야만 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그런 척도에 맞지 않는 인간, 그런 척도와는 다른 가치를 신봉하는 인간은 고립당하고 고뇌할 수밖에 없다. 고흐의 서간이 오래 계속해서 읽히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믿는 바로는, 자본주의 시대 인간의 ‘고뇌의 원형’이 특이할 정도로 면밀하게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 ‘고뇌의 원형’은 글자 그대로 혼신을 다해 고투를 벌여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고뇌가 계속되는 한 고흐 서간집의 고전적 가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어느 때 자본주의가 과거의 것이 된 시대가 온다면, 고흐의 편지는 과거 인간들의 고뇌와 고투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 그 고뇌의 원형: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서간 전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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