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유롭다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현실에 무심해지는 것이고, 조금은 뻔뻔해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하니까. 후회도 미련도 없어야 한다. 선택했다면 어떤 결과가 펼쳐지든 운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 p.19
그녀의 말처럼 사람들은 유머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다. 모두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고,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가르치려 들거나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공격하려 한다.
그래도 나는 재밌게 살고 싶다. 아무리 세상이 별로여도 유머를 잃지 않고 살고 싶다. 무라카미 류가 소설 『식스티 나인』 마지막 장에 썼듯이, 즐겁게 사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라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 p.30
하루도 빠짐없이 요가를 하고 혼자서 다리 찢기를 한다. 이 시간은 내가 가장 집중하는 시간이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시간이다. 내가 다리 찢기에 열광하는 건, 지금까지 머리나 마음을 쓰는 일만 했지 내 비루한 몸으로 뭔가를 이뤄본 적이 없어서다. 그래서 내게 다리 찢기는, 단순히 다리를 일자로 벌려 척추를 바로 세우고 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늘여 건강하고 바른 몸을 가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리 찢기 그 자체는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 정신적인 만족감을 준다.
사람들은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 했다. 요가 선생님도 무리하면 오히려 몸의 균형을 해칠 수 있다고 조언했지만, 내 목표는 누가 뭐라 해도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완벽하게 다리를 찢는 것이다. --- p.45
비록 지금 우리는 이렇게 초라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모두 우리가 선택한 것이니까
후회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렇게 잘 살고 싶다. --- p.41
모리씨와 오로라는 잘 지내고 있다. 여전히 바보짓을 많이 하긴 하지만. 모두 널 그리워하는 것 같다. 아무리 제멋대로 다녀도 너의 자리였던 의자와 네가 좋아하는 방석은 건들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걸 보면 말이다.
케루악, 넌 좋은 고양이였다.
날 사랑해줬고,
날 기다려줬고,
무엇보다 넌 항상 나를 바라봐줬으니.
안녕, 나의 케루악(2014년 2월~2017년 1월) --- p.67
내가 솔직하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야.
예전에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되는대로 행동했지만, 지금은 내 안에서 부유하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솔직할 수 있어.
만약 예전처럼 내가 순간의 감정 속에 살았다면 나는 널 만나지 못했을 거야. --- p.87
내게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이다.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좋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나 자신이 좀 더 정리되고 풍부해진 기분이 든다. 더 먼 곳으로 갈수록, 더 길게 갈수록 내가 느끼는 그런 감정들도 더 크고 강해진다. 그렇게 돌아와 나의 집 현관문, 그리고 내 방문을 열었을 때 밀려오는 익숙함을 나는 진정 사랑한다. 모든 것이 내가 돌아오길 기다려준 듯한 기분이다. --- p.95
문득 오랜 옛날, 아직 우리가 사람이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워 모음만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때, 밤하늘의 별이 뭔지 아무도 모를 때, 우리 조상들은 어떤 마음으로 저 별들을 올려다봤을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나처럼 고독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무리에서 슬며시 떨어져 나와 하늘이 잘 보이는 언덕에 올라 별들을 올려다봤을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무게를 가슴으로 느끼며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에게 첫 고독이 찾아왔을 것이다. 손에 닿을 듯 낮게 뜬 채 반짝이는 별빛 아래서 말이다. --- p.100
그리고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외롭고 긴 밤을 혼자서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뭐든 배워야 했다. 실수와 사건, 그리고 경험을 통해.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꾸역꾸역 배울 수밖에 없었다. --- p.257
나는 매일매일 시간과 이별하는 중이다. 그건 그리 지독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은 잘 모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늦게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내게 지나간 시간은 아름답게 채색되고 아쉬움에 후회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나는 지나간 시간에 관대하고 언제나 좋게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참 좋았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래서 나는 정말 별로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면 분명 지금보다 지난 시간이 더 많이 쌓일 테니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그리고 안도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에. --- p.263
나의 세계에서는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었다. 세상은 유독 내게만 엄격하고 거칠었다. 아니면 단지 내가 이 세계에 살기에는 너무 약한지도 모른다.
나는 사는 게 서툴렀다. 살다 보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아무리 배우고 경험하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늘 실수의 연속이었고 후회의 나날이었다. 그렇지만 살다 보니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당신도 비슷하다는 걸. 이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걸. --- p.267
나는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고 싶다. 그는 혹독한 이별의 아픔을 이미 경험했다. 나까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리세이(Morrissey)보다 오래 살고 싶다. 그의 노래를 더 많이 들어보고 싶다. 나는 오로라와 모리씨보다 오래 살고 싶다. 그들은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 나는 정말 완벽한 문장을 써보고 싶다. 길지 않아도, 어렵고 심오한 단어로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 단 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써서 남기고 싶다. --- p.269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애매하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은 명확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그래도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게 있다.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새로운 문제가 이전의 문제를 덮을 뿐이라는 것 .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냥 안고 살아갈 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란다.
조금 더 세상이 나를 받아들여주기를 바란다.
조금 더 세상이 살기 쉬운 곳이 되기를 바란다.
--- p.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