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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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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2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89쪽 | 375g | 172*225*30mm
ISBN13 9788987787404
ISBN10 8987787400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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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 라는 속담이 있다. 삶에 대한 질기디 질긴 애착이 잘 드러나는 속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삶에 끈끈한 애착을 갖게 된 데에는 근세 100년간, 억압과 혼란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 보자고 버텨온 세월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악착 같은 삶이란 무엇인가.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던져버리고 자기 앞에 놓인 먹을 것은 무조건 챙기고 보는 범부의 삶인가. 이제는 그윽한 향기가 묻어 나오는 삶, 지조를 지킬 줄 아는 인품에 대해 얘기해야할 때이다.

저자는 '새 천년에 걸맞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새로운 문화란 바로 품위 있고 인간 답게 사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문화를 우리 나라 명문가에서 발견한다. 부도덕한 졸부의 문화가 아닌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진정한 의미에서의 명문가.

저자는 선조 또는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전국의 명문가를 방문하여 그 집안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시인 조지훈 종택부터 경주의 최부잣집, 추사 김정희 고택, 강릉 선교장까지. '상류 사회'하면 눈을 치켜 뜨고 금새 비판적인 자세가 되는 요즘, 진짜 상류 사회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끔 하는 책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경북 영양의 시인 조지훈 종택
지조 있는 인간을 보고 싶다!

경주 최 부잣집
조선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무엇인가

전남 광주 기세훈 고택
전통은 든든한 뒷심이다

경남 거창 정온종택
때를 기다린다

안국동 해위 윤보선 고택
덕을 쌓아야 인물 낸다

남원 몽심재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한다

대구 문씨
돈이 아닌 지혜를 물려주라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내 뜻에 맞게 산다

충남 아산 외암마을 예산 이씨 종가
정신의 귀족을 지향한다

전남 진도 양천 허씨 운림산방
우물을 파려거든 하나만 파라

안동 의성 김씨 내앞종택
도리를 굽혀 살지 말라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가슴에 우주를 품는다

전북 익산의 표옹 송영구 고택
사람 보는 눈이 다르다

경북 안동의 학봉종택
자존심이 곧 목숨이거늘

강릉 선교장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현재 이 집을 관리하고 있는 조동길씨를 만났다. 객지에서 공무원 생활하다가 정년퇴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종택을 관리하고 있다. 말년을 의미 있게 회향하고 있는 것이다. 신미생이라고 하니까 올해 칠십의 연세이다. 꽉 다문 입과 약간 매서운 눈매, 그리고 깔끔한 차림새로 보아서 오행 중 금 체질에 속하는 관상이다. 대개 금 체질들은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한 사무라이 기질이 많아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앞뒤가 분명하고 요점만 이야기하는 장점이 있다. 서론이 짧고 뼈대만 이야기하므로 인터뷰 상대로는 최적이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길래 "전라도에서 왔다"고 하니까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호은종택에는 370년 동안 내려온 가훈이 있습니다. 바로 삼불차라는 것이죠."
- 삼불차가 무슨 뜻입니까?

"세 가지를 불차한다. 즉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죠. 첫째는 재불차로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서 빌리지 않고, 둘째는 인불차로 사람을 빌리지 않고, 셋째는 문불차로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말이죠. 이 삼불차가 호은 할아버지 때부터 현재까지 계속 지켜져왔습니다."
--- pp. 20~21
자처초연(自處超然) :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대인애연(對人靄然) :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에는 맑게 지내며,
유사감연(有事敢然) :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고,
득의담연(得意淡然) : 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며,
실의태연(失意泰然) : 실의에 빠졌을 때에는 태연하게 행동하라.
--- p.128
안국동 8번지 고택. 원래 이 집은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쯤인 구한말에 민씨성을 가진 대감이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인품이 훌륭해서 '민 부처'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장안의 유명한 도편수를 동원해서 99칸이 넘는 거대한 규모의 저택을 짓는다는 소문이 당시 임금인 고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고종이 민 부처를 소환하여 "네가 대궐 만큼이나 큰 집을 짓는다고 하는데 반역할 의사가 있느냐"고 추궁했다. 이때 민부처의 답변이 걸작이다. "이 집은 부처가 살 집입니다."

부처가 살 집이라는 것은 불교 사찰을 의미하고 사찰이라면 당연히 크게 지을 수 있다는 말이다. 동시에 자신의 별명이 부처이니 자기가 살 집이라는 뜻도 된다. 이 재치 있는 임기응변에 고종도 파안대소하고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그후 일본에 망명했다가 귀국한 박영효 대감이 적당한 거처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고종이 민 부처에게 박영효에게 집을 넘겨주라는 명령을 내려서 박영효가 얼마간 살았다고 한다.

담장 하나 사이로 바로 옆집은 '열하일기'와 '허생전'의 저자 연암 박지원과 연암의 손자로 개화파의 수장격이던 박규수가 살던 집인데, 우라 나라에 몇 그루밖에 없는 백송이 아직 그 터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헌법 재판소로 바뀌었다.

개화기 역사를 보면 박영효는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실패하자 1차 일본에 망명한 적이 있고, 그후 김홍집 내각의 대신으로 있으면서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하여 또다시 일본에 망명했다가 1907년에 귀국하여 용서를 받았다. 두번의 일본 망명과 귀국 등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박영효가 이 집에 살기 시작한 시기는 아마도 1차 망명에서 돌아온 1880년대 후반쯤이 아닐까 싶다. 김옥균이 박영효씨에게 써준 편액이 이 집에 남아 있으니 두 번째 망명 이후는 아닐 것 같다.

이후로 잠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가 1910년대에 윤씨 집에서 이 집을 구입하였다 그 이후로 윤씨 집안이 계속 여기에 살아왔으며 현재까지 종가로 유지되고 있다.
--- pp. 121~122
부불삼대, 곧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란 말이 있다. 최근 들어 우르르 무너지는 재벌들을 보면서 옛 어른들이 남긴 이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100년은 유지될 줄 알았던 한국의 재벌들이 허망하게 넘어지고 부도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부자가 3대를 넘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세간사의 이치를 깨닫고 있다. 이루는 것도 빠르지만 망하는 것도 신속하다. 삼천리를 내려가는 백두대간의 유장한 산줄기처럼 3대를 넘어 오래가는 부자가 어디 없단 말인가! 그 유장한 부자를 보고 싶다.

최 부잣집을 찾은 것은 그 유장한 부자, 졸부가 아닌 명부를 눈으로 보고 싶어서이다. 3대를 넘어가는 명부가를 보면서 길게 가는 삶의 경륜을 배우고 싶다. 한국에 명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도 명부가 있다. 그 집이 바로 경주에 있는 최 부잣집이다.

최 부잣집은 9대 동안 진사를 지내고 12대 동안 만석을 한 집안으로 조선 팔도에 널리 알려진 집이다. 9대 진사, 12대 만석꾼의 집. 만석꾼이야 찾아보면 많지만 12대를 연이어 만석을 한 집안은 아마도 조선 팔도에 이 집뿐일 것이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좀처럼 깨기 어려운 전무후무한 기록일 성싶다. 3대도 어려운 건데 어떻게 12대를 이어갔단 말인가. 12대를 이어갈 수 있게 한 경륜과 철학이 반드시 있었을 텐데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나는 경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 p. 42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1. 왜 명문가인가?

전국의 명문가 15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각 명문가의 역사와 정신,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가 출간됐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왜 '새삼스럽게' 명문가 이야기인가? 이 책의 저자인 조용헌 교수는 "새 천년에 걸맞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여기서 새로운 문화란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지난 세월, 살아남느라 먹고사느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을 이제는 이야기해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삶의 질'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삶의 질은 경제력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경제력만 있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고민하고, 이 책에서 밝히고자 했던 문제도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고, 품위 있고, 질 높은 삶인가? 이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으며, 살고 있을까?

2. 존경받는 상류문화 형성을 위해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책이 이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다. 여기서 저자가 생각하는 명문가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고,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상류층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

이제 한국 사회에도 상류사회 또는 상류문화가 형성되어가고 있다. 어느 나라이든지 간에 상류사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상류사회가 존재할수록 그 사회는 안정된 사회이고, 아울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 저자는 이제 한국 사회도 부도덕한 졸부의 시대가 가고 제대로 된 상류층이 나와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존경받는 상류문화 형성에 이 책이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문화가 진정한 상류문화인가? 어떻게 살아야 명문가가 될 수 있는가? 명문가를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 그 집 선조 또는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How to live)'라고 말한다. 돈이 많다고, 벼슬이 높다고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진선미(眞善美)에 부합하는 삶을 대대로 이어온 집안이 명문가라는 것이다.

3. 고대 로마인과 조선 선비의 공통점 '노블레스 오블리제'

이 대목에서 저자가 들고 나오는 중요한 개념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천 년을 지탱해준 철학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조용헌 교수는 우리 나라 명문가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 또한 이것이라고 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번역하면 '혜택 받은 자들의 책임' 또는 '특권 계층의 솔선수범'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최전선에 나가 피를 흘리고, 공중을 위해 자기의 금쪽 같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귀족은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책임지는 것이 귀족이고, 노예나 평민은 그 책임이 없거나 약했다. 여기서 로마를 이끌어간 리더십이 나왔다.
이것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그것을 행하는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들의 삶의 질을 더 높이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시오노의 주장이자, 조용헌 교수의 주장이다.

4. 네가 살아야 나도 사는 상생(相生)의 원리
바로 이 부분, 도덕적 의무를 통해 자신의 삶의 질을 높였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이 땅의 명문가 사람들이 지향한 삶의 원칙은 단순한 도덕적 실천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와 보람을 찾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는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우리의 전통적인 믿음과도 일맥상통한다. 나보다 못하고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집안은 주변 사람들의 신망을 받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알게 모르게 주변의 도움으로 경사가 생길 가능성도 많을 것 아닌가. 따라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상생(相生)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도 그 집안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를 후원했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도 위대하지만, 자그만치 12대 3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만석꾼을 지내면서 적선을 해온 경주의 최 부잣집도 그에 못지 않은 철학과 신념을 갖춘 집안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5. 고택을 유지해야 명문가다

그렇다면 그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파악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가장 실질적인 자료는 고택이다. 저자는 우선 현재까지 전통 고택을 유지하고 있는 집이어야 명문가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서구화와 산업화의 거센 비바람을 맞으면서 지금까지 이러한 고택들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 토대를 갖춘 명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러한 고택들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이라면 당연히 역사성을 깊이 의식하고 있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의식하는 사람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의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집안의 역사와 사회적 기여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집안이 400~500년의 세월 동안 고택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광주의 고봉 기대승(1527~1572) 집안, 안동의 학봉 김성일(1538~1593) 종택, 해남의 고산 윤선도(1587~1671) 집안이 이러한 고택을 유지하고 있다.

6. 인물을 배출해야 명문가다

명문 고택을 유지하는 집안들 가운데는 과거와 현재에 걸쳐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곳이 많다. 특히 그 집안을 일으킨 중시조들은 당대에 이름을 날린 인물들이다. 그 후손들은 현재에도 사회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사들이 많다. 서울 안국동의 윤보선 집안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집안 윤씨들은 한국인명사전에 무려 50명 가까운 사람이 등재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진도의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1808~1893) 이래로 5대째 계속해서 화가를 배출하고 있는 집안이고, 남원 몽심재의 죽산 박씨들은 원불교 성직자를 40명이나 배출했다. 자고로 인물이 나와야 고택을 유지할 수 있다.

7. 명문가를 지탱하는 바람과 물의 원리

이상의 세 가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조건이다. 저자는 여기에 바람과 물의 원리를 덧붙인다. 전국의 명문 고택들을 두루 현장답사한 저자는 한국의 명문 고택들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풍수의 핵심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에 있다고 설명한다. 명문 고택들은 되도록 땅의 기운인 '지령(地靈)'을 훼손하지 않고 집을 지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면 천문·지리·인사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동양의 삼재(三才)사상을 바탕으로 지은 집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택으로 꼽히는 강릉 선교장, 충남 외암마을의 예안 이씨 종가, 전북 익산 왕궁의 망모당, 경남 거창의 동계고택,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등이 그렇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1. 경북 영양의 시인 조지훈 종택/지조 있는 인간을 보고 싶다!
재물과 사람과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三不借)'.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은 이 원칙을 370년 간 지켜왔다. 조지훈도 삼불차 집안의 훈도를 받으면서 자라났기 때문에 〈지조론〉을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록 유달리 혹독한 근대화 시기를 거친 우리지만, 그 숱한 변절과 기만을 단순히 시대 탓으로 돌리기엔 내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에 이 집안의 지조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2. 경주 최 부잣집/조선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무엇인가
경주 최 부잣집에 내려오는 400년 전통의 가훈이다. 부불삼대(富不三代)라지만, 최 부잣집은 9대 동안 진사를 지내고 12대 동안 만석을 한 집안으로 조선 팔도에 널리 알려진 명부(名富)의 대명사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와 덕망을 이어온 집안은 아마도 조선 팔도에 이 집뿐일 것이다. 3대도 어렵다는 명부의 길을 12대 동안 이어온 최 부잣집의 경륜과 철학은 무엇일까.

3. 전남 광주 기세훈 고택/전통은 든든한 뒷심이다
전남 광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성씨를 꼽는 '기(奇) 고(高) 박(朴)'이라는 말이 있다. 이 세 집안이 명문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 집안들이 배출한 인물들 때문이다. 광주 지역에서 기씨 집안이 명문으로 부상한 계기는 고봉 기대승이라는 걸출한 인물 때문이다. 300년 역사를 지닌 고택에서 배어 나오는 전통과 풍류의 정취, 그리고 죽으면 화장해서 가족 납골당에 들어갈 거라는 명문가 종손의 결단.

4. 경남 거창 정온종택/때를 기다린다
금색 원숭이의 정기가 뭉쳐 있다'는 뜻의 금원산을 배경으로 한 동계고택은 그 강강한 기세가 무림 고수가 살기에 적당한 집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바로 이 집에서 조선 후기 최대의 반란 사건 주도자인 정희량이 배출되었다는 것을 우연한 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지리(地理)와 인사(人事)의 연관관계를 파고들어가보면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고, 뜻을 크게 품었던 탓에 충신과 역신 사이를 오가야 했던 정씨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만나게 된다.

5. 안국동 해위 윤보선 고택/덕을 쌓아야 인물 낸다
풍수적 기운이 짱짱한 화강암 지반의 서울 종로구 일대. 특히 안국동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 명당 터이다. 그중에서도 '안국동 8번지' 윤보선 고택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명택이다. 한국 정치의 산실이라고도 불리는 이 고택을 처음으로 낱낱이 밝혔다. 윤보선 전 대통령 집안은 대통령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서 활약한 이 집안 윤씨들이 한국인명사전에 무려 50여 명이나 들어가 있다.

6. 남원 몽심재/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한다
몽심재가 남원 인근 지역에서 회자된 이유는 과객 대접을 잘했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후하게 대접하기로 유명했던 몽심재는 조선 후기 지리산 로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스캠프였다. 또 몽심재는 우백호보다 좌청룡이 훨씬 길고 튼튼해 풍수상 도인(道人)이 많이 나오는 조건을 갖췄다. 이 때문인지 몽심재의 죽산 박씨 가운데서 원불교 교무가 40여 명이나 나왔고, 이중 여자 교무의 수가 압도적이어서 "호음실에서는 사위 구경하기 힘들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이 집안은 특히 수백 년 간 힘없는 사람들을 남달리 배려하고 돕는 가풍을 이어왔다.

7. 대구의 남평 문씨 세거지/돈이 아닌 지혜를 물려주라
독서를 많이 하면 나쁜 팔자를 좋은 팔자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믿음이었다. 특히 유가에서 독서를 중시했다. 대구 인흥리에 세거하는 남평 문씨 집안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갖고 있는 집안으로 꼽힌다. 남평 문씨들의 문중문고인 '인수문고'는 8천500책(2만 권 분량)을 수장, 민간으로서는 고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8.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내 뜻에 맞게 산다
1만 평의 집터에 50만 평에 달하는 장원(莊園)을 가진 윤선도 고택. 이곳에서는 호방함과 소요유(逍遙遊)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저자는 이곳을 '녹색의 장원'이라 부른다. 청룡·백호·주작·현무라는 '유교적 만다라'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고산고택은 천문과 지리에 해박한 옛 사람들의 지혜도 전해준다.

9. 충남 아산 외암마을 예산 이씨 종가/정신의 귀족을 지향한다
충청도 아산의 예안 이씨 문정공파 종가에서 만난 '정신의 귀족' 이득선 씨. 이득선 씨가 체득한 내공이 바로 '3년시묘(三年侍墓)'이다. 일생 동안 한학자로 살았던 부친이 돌아가시자 묘 옆에다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년 동안 생활하며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염을 간직했던 것이다.

10. 전남 진도 양천 허씨 운림산방/우물을 파려거든 하나만 파라
"진도의 양천 허씨들은 빗자락 몽둥이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 이 대단한 소문의 근원지인 운림산방. 내리 5대째 유명 화가를 배출한 이 산방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11. 안동 의성 김씨 내앞종택/도리를 굽혀 살지 말라
경상북도 안동에 위치한 의성 김씨 종택은 권력의 부조리를 정면에서 고발하는 기백과 목숨을 내건 의리로 인해 조선시대에 금부도사가 세 번이나 체포영장을 들고 오는 수난을 겪었다. 또 비범한 인물들을 배출한 내앞종택의 산실(産室)은 이문열의 소설 소재로 등장할 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12.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가슴에 우주를 품는다
19세기 동양 삼국을 풍미한 조선 제일의 명필 추사 김정희. 추사가 살던 고택은 무기(武氣) 서린 바위산이 보이지 않는 대신 솜이불처럼 포근한 야트막한 둔덕이 에워싸고 있다. 주변 사방에 살기가 보이지 않는 이러한 산세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가장 선호하던 산세다. 바로 이런 곳에서 문기(文氣)가 무르녹은 문자의 향기〔文字香〕와 서권의 기〔書卷氣〕가 발산한다.

13. 전북 익산의 표옹 송영구 고택/사람 보는 눈이 다르다
명나라 때 대문장가인 주지번과 국경을 초월하여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표옹 송영구. 그의 고택은 내룡(來龍), 안산(案山), 득수(得水) 삼박자가 훌륭한 풍수 명당이자 고밀도 기에너지를 갖춘 '마당바위'로 눈길을 끈다.

14. 경북 안동의 학봉종택/자존심이 곧 목숨이거늘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맞아 장렬히 싸우다 순국한 학봉 김성일 집안. 이 집안의 애국정신은 그 직계 후손들과 정신적 자식인 제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전해진다. 학봉의 퇴계학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제자이자, 학봉의 11대 종손인 김흥락은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해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제자만 60명이나 배출했고, 학봉의 직계 후손들 중에서도 11명이 훈장을 받았다.

15. 강릉 선교장/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건물 10동에 총 120여 칸의 규모를 자랑하는 선교장. 민간 주택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선정된 고택이다. 한국의 선풍(仙風)과 풍수사상이 집안 곳곳에 깊숙이 배어 있는 선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장원으로서 손색이 없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자는 옷도 대충 입고, 먹는 것도 되는 대로 먹을 순 있지만, 사는 집만큼은 푸른 소나무 숲이 있는 아름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소나무 숲과 연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선교장은 한국인이 가장 선망하는 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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